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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일본 군국주의의 시작, 검심이 향한 그곳

㉔ 바람의 검심 최종장 : 더 파이널 - 오오토모 케이시

 

이번 주 소개 영화는 미안하게도 OTT에 걸려 있는 작품이다. 일본영화 ‘바람의 검심 최종장 : 더 파이널’이다. 제목만으로는 시리즈의 맨 마지막 회 같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진짜 최종회는 ‘바람의 검심 최종장 : 더 비기닝’이라고 해서 프리퀄이 하나 남아 있다. 이 시리즈는 총 5회이다.

 

자 그러니 일각에서는, 앞의 세 편을 다시 다 찾아봐야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들린다. 대답은 그래도 되고,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에피소드는 비교적 독립적인데다 과거의 이야기를 할 경우 그 핵심적인 내용은 플래시 백 기법을 써서 그 연결 지점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번 4편 ‘바람의 검심 최종장 : 더 파이널’도 그 이전의 회차들과 기본 줄거리 면에서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역날검의 명수이자 최고의 검객 소리를 듣는 주인공 히무라 켄신(사토 타케루)이 도쿄 인근에서 연인 카오루(타케이 에미)가 운영하는 무예도장에 은둔해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데, 그런 켄신에게 악의 세력들이 그의 목숨을 노리고 대형 사건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악의 세력들 모두, 흔하게 얘기해서 간단치 않은 무공과 칼 솜씨를 지닌 무사 출신들이다. 일명 밧토우사이(발도제, 抜刀斎 / 발도술, 拔刀術 혹은 발검술, 拔劍術의 달인이라는 의미로 칼집에서 칼을 빼는 속도, 정확성 등이 타인의 추종을 불허하는 무사를 말한다)라 불리는 켄신은 언제나 그렇듯, 거의 혈혈단신으로 이들과 맞서 자신에 대한 복수극을 정리하고 대참사를 방지한다…고 얘기하면 이거 무슨 만화 같은 얘기냐고 할 것이다. 맞다. 이야기 구조만 봐서는 매우 만화적이다. 실제로 출판만화가 원작이기도 하고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 영화의 실체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두 가지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으면 좋다. 신선조(新選組)라는 무사 그룹, 그리고 메이지 유신이 그것이다.

 

메이지 유신은 19세기 들어 일본이 급격한 중앙집권을 꾀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전국의 정치사회구조를 개조한 일종의 위로부터의 혁명이었다. 대략 1860년대부터 그 조짐이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이 메이지 유신은 일본의 자본주의화를 앞당겼음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일본사회가 군국주의로 가는 길목을 열었다.

 

천황 중심의 강력한 중앙권력을 위해서는 일본식 봉건제인 막부 체제(당시는 에도 막부)의 조속한 해체가 필요했으며 또 그러기 위해서는 막부의 맨 앞에 서 있는, 호위무사이자 무장병력인 사무라이들을 무력화시킬 필요가 대두됐다. 신선조는 이에 반발한 사무라이들이 자위(自慰)를 위하여 스스로들을 무력화한 일종의 무장단체다.

 

‘바람의 검심’ 시리즈는 앞서 이들 신선조의 검객들을 대거 제거한 청부살인업자가 있었다는 설정이고 그게 주인공 히무라 켄신인데, 그는 처음엔 시대가 변화를 요구하는 한 자신이 그 악역을 떠맡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식이다.

 

“나의 더럽혀진 피 묻은 칼과 / 희생된 목숨들의 건너편에 / 누구나 안심하고 살 수 있는 / 새로운 시대가 있다면 / 나는 하늘을 대신하여 / 사람을 벨 것이다.”

 

 

그런데 그가 생각한 새로운 시대, 곧 메이지 유신 역시 특정 권력을 위한 눈속임일 뿐이라는 깨달음이 온다. 그래서 그는 살육의 현장을 떠난다. 히무라 켄신은 이후 자신의 검을 개조해 역날검을 만든다. 역날검으로는 사람을 죽이지 못한다. 그는 다시는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 한다. 신선조 출신의 검객들은 켄신이 죽인 사람들의 복수를 위하여, 혹은 당대 최고의 검객 소리를 듣기 위하여, 그것도 아니면 권력의 한 부분을 차지하기 위하여 켄신에게 끊임없는 도전과 위협을 가하기 시작한다.

 

켄신은 더 이상 죽이고 싶지 않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믿음도 잃었다.(이건 극 중 이토오 히로부미를 대하는 켄신의 태도나, 신선조 출신이었다가 특무경찰로 변신한 후지타와 협력도 대립도 안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중립을 지키며 사랑하는 여인과 새로 사귄 친구들과 조용히 살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혼돈의 시대는 그를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

 

영화 ‘바람의 검심’ 시리즈는 주인공 켄신의 그러한 심리적 갈등과 적(예전에는 동지)과의 대대적인 물리적 충돌을 오가며 서스펜스 액션의 감도를 극대화 시킨다. 일본 현대영화의 테크놀로지가 꽤나 선진화됐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온갖 현란한 카메라 워크와 스턴트, 특수효과, CG를 선보인다. 칼싸움 장면은 스턴트의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이를 어떻게 잘게 분할하느냐 통으로 길게 찍느냐, 그 리듬을 어떻게 구성해 내느냐에 승패가 달려 있다. 이 영화의 칼싸움 씬은 마치 리얼액션을 보는 듯하다.

 

 

영화 속 켄신이 고민하는 것은 자신이 선택한 ‘쪽’이 절대 권력화되고 그게 결국 군국주의라는 야만의 시대를 연 것이 아니냐는 지점에 서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前근대적인 시스템이 사람들의 삶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었다. 막부시대에도 특정 영주가 권력을 독점했고 민중의 고혈을 짜냈다. 켄신은 그것을 바꿔야 한다고 믿었었다.

 

‘바람의 검심 최종장 : 더 파이널’은 시대의 변화 한 가운데에 끼어 있는 지식인의 처참한 고민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시리즈가 지닌 철학성을 전면적으로 드러낸다. 세상사에 중립지대라는 것이 존재나 하는 것이냐고 묻고 있다.

 

중간은 없다. 선택만 있다. 세상사의 이치는 그렇다. 그 선택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자는 한 명도 없다. 다만 얼마나 공정하고, 얼마나 인간적일 수 있느냐에 그 올바름의 영역이 확장된다. ‘바람의 검심’ 시리즈는 지금의 일본사회가 왜 이렇게 흉물스러워졌는지, 군국주의의 원류는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를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만화 원작의 영화에서 그러한 것을 읽어내는 게 투 머치(too much)일 수 있다. 거기에 동의하느냐 동의하지 않느냐는 순전히 보는 사람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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