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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모가디슈에서 류승완의 귀환, 그 의미

 

류승완이 이번에는 외곽을 친다. 그런데 그 수법이 꽤나 노련하다. 신작 ‘모가디슈’에서 류승완은 1990년 소말리아의 쿠데타 사건을 다룬다. 소말리아는 이후 내전에 휩싸이고 미국과 다국적군은 군사적으로 개입하지만 오히려 처참하게 실패한 후 군대를 뺀다.(리들리 스콧의 ‘블랙 호크 다운’에 잘 나와 있다) 그 와중에 빌 클린튼은 모니카 르윈스키와 백악관에서 지퍼를 내렸다.(일명 ‘지퍼 게이트’)

 

영화 ‘모가디슈’는 소말리아 내전의 불길하고 폭력적인 전조(前兆)를 다룬다. 그런데 그게 외곽을 때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소말리아 내전에 휩싸인 사람들의 얘기를 그리는 척, 사실은 그때 당시의 한국 정치 상황, 분단의 현실, 더 나아가 지금에 이르러서도 우리가 분단과 통일의 문제를 어떻게 지향해야 할 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1990년의 소말리아가 아니라 2021년 한반도 문제를 성찰하게 만든다. 그렇게 외곽을 노련하게 때린다.

 

그런데 그 정치적 시선이 매우 올바르고 따뜻하다. 류승완이 정신적으로, 사회과학적으로 크게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가 과하고 모자람이 없다. 균형미가 좋다. 극 전체를 이끌어 가는 톤앤매너의 균질감이 뛰어나다. 액션, 특히 자동차 추격 액션은 전 세계 관객들이 입을 딱 벌릴 정도로 잘 찍었다.

 

 

탈출의 에피소드는 벤 에플릭의 ‘아르고’ 만큼 풍부하고 긴장감이 넘친다. 총격 씬은, 내가 보건대, 마이클 만이 ‘히트’와 ‘마이애미 바이스’를 만든 이후, 격발의 반동이 가장 격렬하게 느껴질 만큼 리얼하게 연출했다. 영화의 기술적 완성도는 실사와 VFX(특수효과)의 융합이 최고조를 이뤘다고 할 만큼 높다. 일명 밀리터리 액션형(型) 작품으로서 영화적 쾌감이 거의 극의 수준이다.

 

이 영화는 1990년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의 혼란스러운 정정(政情)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남북한 대사관의 대사와 직원들 얘기다. 남한의 한신성 대사(김윤석)는 남한의 UN가입 문제로 사사건건 대립하던 북한의 림용수 대사(허준호)를 돕게 되고, 그(들)와 함께 이탈리아 대사관을 향해 극적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그 과정이 박진감이 철철 넘친다. 게다가 눈물이 날 만큼 구석구석 넘치는 인간미를 향해 영화가 달려간다.

 

‘모가디슈’가 뛰어난, 진정한 이유는 영화가 갖는 힘의 원천인 스토리와 그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정신적 기반, 무엇보다 정치적 시선이 올바르고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한신성은 림용수를 향해 그의 대사관 보위부 직원 태준기(구교환), 그리고 자신의 안기부 직원 강대진(조인성)에게 말한다. “뭐.. 남북통일하자고 모인 것도 아니고 살아남자고 하는 거니까…” 림용수는 북한 대사관을 빠져나와 폭도와 반란군이 넘치는 모가디슈의 뒷골목에서 자신의 가족과 직원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이제부터 우리의 투쟁 목표는 생존이야. 다들 알가써!”

 

한신성과 림용수는 바깥의 총격 소리를 들으면서 둘이서 이런 대화를 나눈다. “살다 보니까 진실이 두 개더라구요.” 두 사람은 천신만고 끝에 케냐로 탈출한 후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의도적으로’ 갈라선다. 그 헤어짐의 과정이 이 영화의 최고봉이다. 이념이나 주의 따위는 다 개나 줘 버리자는 심정이 된다. 세상은 매우 구체적인 과정으로 바뀌고 개혁되며, 수사(修辭)의 자구(字句)에 갇히는 것이 아님을 류승완은 이번 ‘모가디슈’에서 갈파한다. 림용수와 강대진의 마지막 악수는 실로 뜨겁게 느껴진다. 그 구체성의 변증법을 구사하는 류승완의 놀라운 식견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모가디슈’를 보기 전에 소말리아 역사를 살짝 알고 보면 좋다. 소말리아는 소위 ‘아프리카의 뿔’로 불리는 나라다. 이 나라는 홍해 맞은편에 있는데 홍해로 들어가는 좁은 해협(아덴만)의 길목에 있다 보니 해적 활동을 하기에 딱 좋은 지형의 국가이다. 2009년에는 조그만 배에 탄 해적들이 미국의 거대한 유조선을 납치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톰 행크스 주연의 ‘캡틴 필립스’) 한때는 해적이 창궐해서 우리나라 선적이 납치되기도 했는데, 당시 해군은 ‘아덴만 작전’을 펼쳐 선장 석해균 씨를 구출해 냈다.

 

 

소말리아 내전의 근원을 따지면 19세기 말 이탈리아와 영국이 소말리아를 분할 식민지로 삼았던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때문에 국가 내부의 부족 간에 심각한 분열이 생기게 됐다. 이후 독립해 정부가 들어섰지만 60년대에 바레 장군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장기 집권을 이어갔으며, 이에 대한 반정부 시위가 결국 내전으로 이어진 것이다.

 

반정부 단체였던 USC(United Somali Congress 통일소말리아의회)가 사회주의 독재 정권이었던 바레 정부(영화에서 북한 대사관이 이들과 왜 가까워 보이는지 알게 된다)를 몰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내부의 마흐디 대통령과 아이디드 의장 간 권력다툼이 오래고 긴 내전 상황으로 나라를 몰아간 셈이다.

 

 

영화 ‘모가디슈’는 그 혼란의 와중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한 사람들의 휴먼 드라마다. 류승완은 이번 영화를 인간주의로 시작해 살짝 남북한 간 이념의 대결, 남한과 북한 각자의 체제가 갖는 경직성/독재적 시스템의 문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통일의 문제라는 어젠다를 지나가게 한다.

 

그리고 다시 휴머니즘으로 복귀시킨다. 그 일련의 스토리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우리 남북이 어떻게 다시 결합(통일 말고)할 수 있는지, 결합을 하든 안 하든, 우리 각자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 성숙한 사고와 사유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키 포인트이다.

 

허준호의 연기가 명불허전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번 영화 ‘모가디슈’의 주인공은 류승완 감독 그 자신이다. 그의 귀환을 열렬히 환영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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