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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사랑은 변하는 것, 그러나 돌아오는 것

㉛ 레미니센스 - 리사 조이

 

지난 25일 개봉된 새영화 ‘레미니센스’는 호오가 엇갈린다. 평단에서는 그다지 점수가 높지 않다. 동의하지 않는다. ‘레미니센스’는 이야기 구조와 설정, 무엇보다 그것을 끌어 가는 연출의 솜씨가 만만치 않은 작품이다.

 

이른바 웰 메이드(well-made) 영화이다. 게다가 러브 스토리다. 이런 영화를 마다할 필요는 없다. 제목 ‘레미니센스’의 정확한 발음은 레머니슨스(reminiscence)이다. 기억보다는 추억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긴 에피소드의 추억이 아니라 메모리급의 단편적인 회상을 말할 때 레머니슨스라고 한다. 원래는 심리학 용어이다.

 

영화의 남자 주인공 닉(휴 잭맨)은 기억을 재생시켜 주는 사람이다. 일종의 전문 최면술사이자 정신과 의사인 셈이다. 다만 요즘보다 훨씬 업그레이드 된 초 첨단 장비를 이용하는 것이 다르다. 그런 장치가 개발돼 있다. 그러나 장치는 장치일뿐, 사람을 기억으로 인도하는 방식은 지금의 정신과 의사와 비슷하다. 근데 이런 직업의 사람이 주변에 있을까? 있다. 지금은 없지만 가까운 미래세계에는 있다.

 

 

이 영화 ‘레미니센스’는 근미래의 생활상을 담은 SF멜로영화이다. 세계는, 할리우드 입장에서 보면 그 세계가 미국이지만, 어쨌든 영화 속 세계는 물에 잠겼다. 해수면이 높아진 건데 그 얼마 전에 큰 전쟁이 두 번 있었다는 설정이다. 해수면이 그렇게 된 데에는 전쟁이 원인이 됐다는 식이다.

 

구체적인 배경이 되는 마이애미 그리고 뉴올리언스는 일종의 수상도시가 됐다. 지금의 베니스를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엄연한 재해 상황이다. 수면이 더 이상 높아지는 걸 막고 있는 건 거대한 댐이다. 이 댐 안에는 작은 규모의 땅이 있고 부자들은 여기에 모여 산다. 미래세계의 초 재난 상황 역시 지금처럼 영락없이 계급적이다. 이 영화의 모든 사건도 부의 잘못된 대물림이 원인이 된다. 그러니 영화의 기본 배경은 어느 정도 정치사회적 맥락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댐 역시 언제 붕괴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러니 도시는 사실상 세기말 분위기이다. 사람들은 낮에 일을 안한다. 밤에만 일을 하는 일상으로 변모한지 오래다. 세상이 밤이 됐다는 것은 사람들이 별다른 희망이나 비전을 갖고 살지 않는다는 얘기다. 사람들의 거의 유일한 낙은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대한 기억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이다. 레머니슨스를 하는 것, 자신의 좋은 추억을 다시 꺼내 즐기며 지내는 것, 그것이 마치 마약처럼 그리고 유행처럼 번져 있는 시대의 얘기가 영화 ‘레미니센스’의 기둥 줄거리이다.

 

주인공 닉은 바로 그 기술을 팔아서 먹고 사는 전문 테크니션이다. 과거에는 군인이었다. 자세히 보면 발을 살짝 전다. 그에게는 오랜 사업 파트너가 있다. 에밀리(탠디 뉴튼)이다. 군 복무 시절 만난 특등사수 출신의 여성이다.

 

 

어느 날 이 둘 앞에 한 여성이 나타난다. 싸구려 바의 무대 가수 메이(레베카 퍼거슨)다. 닉은 메이가 부르는 노래의 자태때문…보다는 그녀가 부르는 노래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된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중요한 노래이다. 당연히 닉은 메이에게 단박에 빠지게 된다. 처음엔 여자도 남자에게 전적으로 매달리고 사랑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가 사라진다. 마치 목적을 달성하고 도망간 것처럼 느껴진다.

 

여자는 남자에게서 무엇인가를 빼돌리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닉은 그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닉은 이유를 알고 싶어 한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메이를 찾아 나선다. 그러던 와중에 경찰 수사를 도와 어느 범죄자의 기억을 꺼내는 과정에서 닉은 남자의 두뇌에서 재생되는 메이의 모습을 보고 경악하게 된다. 오랜 동료 에밀리의 계속되는 지적대로 메이가 의도를 갖고 자신에게 접근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때부터 영화 ‘레미니센스’의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지기 시작한다. 거대한 탐욕의 음모가 하나하나 드러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의 힌트는 두 사람의 바로 이런 대화에서 주어진다. 눈치 빠른 관객은 그 대목을 좀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닉은 메이에게 말한다. “당신은 아주 좋은 목소리를 가졌군요.” 메이가 대답한다. “그런 얘기 해 주는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에요.” 근데 가수가 그런 소리를 처음 듣는다고?

 

 

영화는 멜로이고 러브 스토리이지만 미스터리 스릴러의 기법을 쓰고 있고, 기본적으로는 누아르(noir)의 분위기이다. 다크하고 디스토피아적이며 비관적이고 비극적이다. 그래서 매우 매력적이다. 여러 영화들의 레퍼런스가 담겨져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기억을 재생하는 방법, 장치 같은 것은 1995년 캐서린 비글로우가 만든 저주받은 걸작 ‘스트레인지 데이즈’를 닮았다. 현실과 가상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상상력은 웬지 크리스토퍼 놀란 표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아니나 다를까 제작자 중 한 명이 조나단 놀란, 곧 크리스토퍼 놀란의 동생이고 감독인 리사 조이의 남편이다.

 

영화의 배경이나 누아르적인 분위기는 칼 프랭클린의 영화들을 닮았다. 프랭클린이 2003년에 만든 ‘아웃 오브 타임’이나 1995년에 만든 ‘블루 데블’을 비교해 보면 좋다. 모두 팜므 파탈이 나오는 하드 보일드급 영화들이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1974년에 만든 ‘차이나 타운’이 자꾸 떠올려진다. 자본의 탐욕이 개인의 삶과 일상을 어떻게 파괴하는 가, 그렇다면 개인은 그것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 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영화 ‘레미니센스’, 레머니슨스는 이런 엉망인 세상과 시대에 지고지순한 사랑이 과연 있느냐고 묻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배신하지 않는 사랑이 있느냐는 질문을 함께 던진다. 갑자기 류승완의 영화 ‘베를린’이 떠오른다. 거기서 류승범이 말한다. “인간은 배신을 해!” 맞다. 사람은 배신을 한다. 사랑도 배신을 한다. 허진호의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도 말한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변한다. 사랑은 원래 변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과 사랑이 배신‘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회와 시대에서는 사랑을 도저히 시작할 수 없게 된다. 사랑이 만들어 내는 궁극의 선한 세상을 꿈꿀 수가 없게 된다. 사랑이 불임인 세상은 죽음의 공간이다. 사랑, 약속, 신의, 헌신, 희생 등등 그 순수의 영원함이 지켜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세상이 좋아진다. 사람과 사랑은 배신을 하기 마련이지만 다시 돌아올 때가 많다는 것 역시 믿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미래를 도모할 수 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해야 할 것, 지켜야 할 것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나중에 닉의 선택이 그래서 중요하다. 메이의 선택은 더할 나위가 없다. 그 결말이 눈물겹다. 그리고 아름답다.

 

그렇다면 결론은 영화에서 여자는 남자를, 남자는 여자를 배신한다는 얘기일까.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분명한 건 비교적 지고지순한 러브 스토리라는 것, 순애보의 영화라는 것이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극장에서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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