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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칼럼] 쉐임 온 유!(Shame on You!)

 

사람이나 사회나 품격이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없는 것이 바로 그 품격이다. 사람들은 스스로의 존엄성을 헌신짝처럼 취급한다. 기이한 것은 배운 사람들일수록 그런 행태가 더 하다는 것이다. 서울대를 나왔든 미국 어디서 유학 생활을 했든 그래서 국내에 돌아와 KDI(한국개발연구원)같은 유수의 기관에서 몸을 담았든 오히려 품격 제로의 현상을 보인다. 그저 자기네들이 옳으니 너희들은 따라오기만 해라, 라는 식이다. 안하무인도 이런 안하무인이 없으며 악다구니도 이런 악다구니가 없다.

 

한국사회를 가로지르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노자(勞資) 모순이 아니다. 半봉건적 양반-상놈의 대물림의 신분, 계급의식도 아니다. 오로지 당신이 엘리트냐 그렇지 않으냐(서울대를 나왔느냐, 미국 유학을 다녀왔느냐, 판검사나 의사, 교수, 조중동같은 언론사에 다니느냐) 하는 엘리트주의이다. 그야말로 품격 없는, 천박한 선민의식이다. 이 ‘나 잘난 주의’가 한국사회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모든 장점, 모든 미덕을 가로지른다. 열심히 일한 사람들의 공로를 가로챈다.

 

넷플릭스의 6부작 드라마 ‘더 체어’는 미국 동부에 있는 명문 대학 펨브로크를 배경으로 한다. 미국 전체 8개 아이비리그 중 가장 작은 학교이고 전통적으로 공학부가 강세라는 설정이다. 드라마는 영문학부 교수들의 얘기인데 공대가 중심인 학교에서 당연히 늘 총장의 눈밖에 있는, 인원 감축대상의 학과이다. 사실상 매년 학생 수가 30% 이상씩 줄어들고 있는 상태여서(누가 요즘 문학을 공부하려 하겠는가.) 새로 학과장으로 부임한 한국계 미국인 지윤 킴(산드라 오)은 첫날부터 총장(데이빗 모스)에게서 연봉만 많고 수강생은 거의 없는 ‘늙다리’ 교수 세명을 ‘명퇴’ 시키라는 압력을 받는다.

 

지윤 앞에는 세 가지의 중층 모순-해결해야 할 일들이 쌓여 있는데 첫째 늙은 교수들을 내몰지 않고 그들의 품위를 유지시켜 주는 것, 동시에 학생 수를 늘리고 학과의 운영과 경영을 정상화시켜야 하는 것, 거기에 영어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한국인 아버지(나중에 유창한 영어를 구사해 깜짝 놀라게 한다.)와 조숙해서 일찍 사춘기를 맞고 있는 입양 딸을 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내를 잃고 딸아이마저 멀리 보낸 후 실의에 빠져 사는 ‘또라이’ 남자 동료교수 빌과의 우정과 로맨스도 어찌어찌 지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윤은 이 모든 난관의 약한 고리를 찾으려 애쓴다. 그 과정이 때론 눈물겹고 때론 좌충우돌 웃음을 만들어 낸다. 첫 장면부터 다소 웃기고 상징적인데 학과장실에 호기롭게 들어와 학과장 자리에 앉자마자 낡고 오래된 의자가 부서져 지윤은 옆으로 나자빠지고 만다. 학과장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허울뿐인 자리라는 걸 보여 준다.

 

이 드라마가 사람들 사이에서 요즘 강하게 회자(膾炙)되고 있는 건 내용이 갖고 있는 휴머니즘, 脫엘리트주의, 품격 우선주의 등등 여러 가지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한국 시청자들을 더 놀라게 하는 건 미국 드라마의 주인공이 그것도 명문 대학교의 학과장 역이(세탁소 주인 역이거나 편의점 주인, 안마시술소 여급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정확한 한국 이름을 가진. 그녀의 아버지가 구사하는 한국어도 완벽한 한국어이다. 한국 사람이 미국 사회에서 이제 완전히 주류사회로 편입됐음을 알려 준다. 심지어 이 드라마에서는 한국식 돌잔치와 돌잡이 장면까지 나온다. 한국이 그 정도가 됐다. 2,30년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국가의 품격이 올라간 것이다.

 

탈레반으로부터 400명 가까운 아프간 ‘친구’들을 극적으로 구조해 낸 ‘미라클 작전’도 국가의 품격이 어느 정도까지 올라온 것인가를 보여 주는 사례다. 이건 단순히 군사적 작전만이 아니다. 이번 작전에 많은 사람들의 헌신이 뒤따랐다. 이건 내가 해야 할 일뿐이야 라는 묵묵한 자기 겸양의 노력이 이어진 결과다. 모든 사람은 같다는 수평적 관점의 인류애가 이번 작전의 핵심이다. 한국 사회와 한국 기층 민중들의 수준이 그 정도가 됐다. 현재 한국이라는 나라의 국가적 품격은 대중과 낱알의 민중들이 한켠 한켠 쌓아온 것이다.

 

어떻게 정치인만 되면 저 모양들이 되는지 미스터리다. 영화 소재 감이다. 자신도 투기용으로 집 네 채를 갖고 있으면 누가 시세차익을 노리고 집을 사고팔았다 해서 나서서까지 비난하지는 못한다. 염치 때문이다. 더더군다나 SH공사 사장 자리를 달라고는 못한다. 사람의 얼굴은 두껍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가 땅을 3000평 정도 사놓은 게 있고 그 와중에 나는 집을 옮겨 다니느라 잠시 전세와 월세를 살고 있지만 사실은 어딘 가에 집을 소유하고 있으면 나는 임차인이다 라는 말은 하지 못한다. 해석에 따라 현재 임차인으로 살고 있으니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해도 사실은 그러면 안된다. 사람은 양심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그게 좀 이상하고, 거짓말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염치는 영어에 쉐임(shame)이 들어 간다. ‘쉐임 온 유(Shame on You)!’ 하면 창피한 줄 좀 알라는 뜻이다. 윤희숙, 김현아, 차정인 씨 등에게 하고 싶은 얘기다. 각각 누군지는 찾아보시기들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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