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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수의 관규추지(管窺錐指))] 꼭 선택해야 하는가

 

 

 

한국 은둔형 외톨이 부모회란 단체에서 강연 요청을 받았다. 예전에 부모와 자녀 관계에 대한 책을 한 권 썼는데, 그 책 내용을 가지고 비대면 화상 강의를 부탁한다는 말씀이었다. 우리나라 19세~39세 연령대에서만  37만 명이 있을 것으로 추산되는 은둔형 외톨이는 본인과 가족에게만 맡겨둘 수 없는 사회적 문제가 됐다. 빨리 전문가 상담을 지원해서 그분들이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도록 돕는 게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분들의 아픔과 자활 방법을 따로 공부한 것도 아니고, 본인과 가족의 고통에 대해 무엇을 아는가 싶어서 여러 번 고사했다. 그러다 강연을 수락한 것은 ‘선택하지 않는 선택’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였다.

 

트롤리 딜레마란 사고 실험이 있다. 지금 전차가 달려오고 있는데, 다섯 명이 선로에 묶여 있다. 그냥 두면 다섯 명 모두 희생될 것이다. 비상 레버를 당기면 열차는 선로를 변경하고, 다섯 명 대신 한 명만 죽는다. 당신은 레버를 당길 것인가, 아니면 당기지 않을 것인가. 어떤 선택이 윤리적으로 올바른가. 이 실험은 숱한 변종을 낳았고, 다양한 사례가 보고되었다. 대체로 70%가 넘는 대다수가 레버를 당겨 한 명을 희생시킨다를 선택한다고 한다. 얼른 생각하면 여러 명보다 한 사람이 희생되는 게 낫지 않은가 싶지만, 그 한 명이 바로 내 자식이라면? 반대로 가문의 원수라면? 조건을 어떻게 놓느냐에 따라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다른 선택도 있다. 이 상황에 개입하지 않고 그냥 떠나는 것이다. 다수를 살리든, 소수를 살리든, 내가 끼어드는 순간, 나는 법률적으로 과실치사죄를 벗을 방법이 없다. 아무 선택도 하지 않고 그냥 자리를 떠난다면 딜레마는 끝난다. 애초에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고, 응답자는 다수냐, 소수냐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는 문제지만, 그런 전제를 무시하고 나는 선택하지 않겠다는 선택도 있고, 어쩌면 그 선택이 가장 ‘현실적’일 수 있다.

 

은둔형 외톨이는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는 전제를 포기했거나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거부는 본인이 선택했다기보다는 타의에 의해 강제되었고, 우리가 옳다고 믿는 사회적 규범과 합의에서 밀려났기 때문일 것이다. 노령과 질병, 빈곤 때문에 사회활동을 하지 못하는 분들을 구해야 하는 것처럼, 이들에게도 제도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 내 판단으로는 우리는 사회 성원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고, 그 선택은 공동체 구성원이라면 당연히 이러저러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도덕주의가 깔려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가오는 추석 명절에 자연스럽게 결혼은 언제 하니? 라든가, 그러니까 학생 때 공부 좀 열심히 하지! 따위 폭력적인 말을 죄책감 없이 던지는 것이다.

 

다수냐, 소수냐. 누굴 구할 것인지 선택하라는 질문은 지나치게 강퍅하다. 선악으로 인간을 재단하고, 선택에 따라 네 편과 내 편을 가르는 시대는 지났다. 선택하지 않는, 아니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까지 모두 함께 보듬는 세상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미래라고 믿는다. 그러니 은둔형 외톨이들은 제도적 지원을 받고, 그들의 부모는 내가 잘못해서 아이가 이렇게 됐다는 자책에서 벗어나시길. 애초에 누구 잘못 때문에 이렇게 된 일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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