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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년만에 구속제도 바뀌나…영장단계 조건부 석방 추진

보증금 걸고 석방…방어권 보장·불구속 수사 원칙
검찰, '유전석방·무전구금' 반대…수사 난항도 우려

대법원이 구속영장 단계서 조건부 석방 제도 도입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이후 67년간 이어지던 구속제도가 개편될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사법행정자문회의는 지난 3월부터 영장 단계서 조건부 석방제도 도입을 위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대법원은 사법행정자문회의에서 제도 도입으로 결론 내면 바로 형사소송법 개정을 위한 입법 절차에 들어가기로 했다.

 

◇ 구속영장 발부 이후 보증금·출석보증서 등 조건 걸고 석방

 

영장 단계서 조건부 석방제는 판사가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보증금 납부나 주거제한, 제3자 출석보증서, 전자장치 부착, 피해자 접근 금지 등 일정한 조건을 붙여 피의자를 석방하는 제도다.

 

일단 구속된 피의자를 풀어주는 보석 제도를 구속영장 발부 단계에서 도입해 구속 없이 바로 석방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현행 제도에서는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판사는 구속영장 발부와 기각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판사 입장에서는 도주 우려에 대한 판단이 모호할 때 대부분 구속영장을 발부하곤 한다.

 

하지만 이 제도가 도입되면 영장을 발부한 뒤 일정한 조건으로 구속을 대체할 수 있어 무죄 추정의 원칙이나 불구속 수사 원칙을 지킬 수 있다.

 

구속영장 발부와 기각이라는 '일도양단'식 결정에서 벗어나 피의자의 범죄 혐의나 상황 등에 맞게 비례성 심사를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법조계에서는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사법행정자문회의 재판제도분과위가 지난 5월에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법관의 81.8%, 변호사의 94.4%가 조건부 석방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해외에도 이와 비슷한 제도가 있다. 미국은 피의자를 체포했을 때 바로 법원에 넘기게 되고, 첫 출석기일에 서약서나 보석금 등 조건을 정해 석방하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독일은 구속영장을 심사하는 판사가 구속영장 발부와 동시에 담보 제공이나 주거지 이탈 금지 등의 처분으로 구속집행을 유예하고 있다. 프랑스나 오스트리아 등에서도 구속 대체수단을 부과해 피의자를 석방,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두고 있다.

 

◇ 2006년 정부안으로 입법 추진…검찰 반대로 무산

 

우리나라도 그동안 여러 차례 영장 단계서 조건부 석방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1997년 구속영장실질심사제도 도입 후 1999년 사법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에서 영장 단계 보석제도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2006년에는 사개추위가 영장 단계 조건부 석방제를 본격 추진하면서 정부안으로 국회에 법안이 제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이 반대하면서 무산됐다.

 

2010년·2017년에도 도입 논의가 있었고, 2018년과 2019년에는 몇몇 국회의원이 관련 법안을 제출했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처럼 여러 차례 영장 단계 조건부 석방제 도입을 위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무산된 가장 큰 원인은 검찰의 반대 때문이다.

 

검찰은 이처럼 조건부 석방제가 도입되면 결국 보석금을 조건으로 석방되는 경우가 많아 이른바 '유전석방 무전구금'(돈 있으면 석방·돈 없으면 구금) 현상이 심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주거가 일정하고 도주의 우려가 없는 부유층 인사는 보석금 납부나 출석보증서 제출 등 각종 조건을 쉽게 충족시킬 수 있지만, 서민들에게는 이런 조건 하나하나가 난제여서 부유층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판사의 재량권이 지금보다 커져 자의적으로 운영될 수 있고, 오히려 영장을 기각해야 할 사건에서 조건부 석방을 명하는 변형적 형태로 운영될 우려도 있다.

 

무엇보다 수사의 어려움이 커질 것으로 걱정한다. 일단 구속한 후 수사하는 것과 보석 등으로 석방된 상태에서 수사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한 부장급 검사는 "조건부라고 해도 결국 석방은 석방"이라며 "불구속되는 경우가 늘어나 검찰 수사는 그만큼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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