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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행 칼럼] 우리안의 돼지

 

 

뉴스가 무엇을 말하는지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촘촘하게 제시된 팩트 앞에서 사실과 정반대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적잖이 있다. 기성 미디어에 SNS에 기반한 1인 미디어의 가세로 그 어느 때보다 뉴스가 풍부해졌지만 뉴스 문맹률은 오히려 높아진 것 같다.

 

가짜뉴스의 범람을 이유로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그러나 기성 언론의 가짜뉴스는 언제나 상수였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일테면 군사정권 시절 한국 언론은 정권의 보도 자료에 아첨이라는 양념을 더해 시청자·독자 앞에 뉴스랍시고 내놓곤 했다. 거기에 사실 여부를 가리기 위한 치열한 뉴스 정신이 들어있을 리 없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휴지조각으로 만든 윤석열 사태에서 보았듯이 이른바 언론의 받아쓰기는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팩트 왜곡과 조작 등 전통적인 수법이 더욱 교묘해지고 있는 이즈음이다.

 

그렇다고 그게 다는 아니다. 육하원칙에 입각한 사실 전달이 뉴스의 속성이자 생명이기 때문이다. 모든 언론은 운명적으로 사실을 전달할 수밖에 없다. 그다음은 독자의 몫이다. 일차적으로 제시된 사실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여기서 필요한 덕목은 판단 유보일 것이다. 헷갈리면 거부하거나 받아들이기보다 판단을 미루는 게 현명하다. 정확하게 아는 게 중요하므로.

 

뉴스 읽는 방법을 언급한 것은 그만큼 문해력 부족이 아닌 섣부른 판단이 많아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뉴스를 속단하는 걸까? 다양성의 사회에서 박물관에 전시돼 있어야 할 이데올로기인 진영논리에 갇힌 게 가장 큰 요인이 아닌가 한다. 진영논리라는 맹목에 사로잡히면 팩트는 더 이상 팩트가 아니다. 내가 지지하는 진영에 유리하면 팩트지만 그렇지 않으면 팩트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놀라운 현상이 아닌가? 가짜뉴스는 언론만이 아니라 시청자·독자들도 만들고 있으니.

 

대장동 부동산 게이트를 보자. 이 게이트는 민간업자가 부당하게 1조 8000억 원의 이익을 가져갔다고 경실련이 추정했을 정도로 일찍이 보지 못한 대사기 사건이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언론의 숱한 팩트 앞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것은 취하고 불리한 것은 간단하게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일테면 국민의힘당 소속 국회의원이었던 곽상도 씨 관련 팩트는 철석같이 믿는 반면 대장동 사건 행동대장 격인 유동규 씨 윗선에 관한 팩트는 애써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진영논리 속에서 맹목적으로 팩트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소름 돋는 모습은 무엇을 뜻할까? 진영논리로 이익을 보는 정치집단이나 그 주변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런 이익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진영논리로 먹고사는 정치꾼들의 이익에 따라 부화뇌동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

 

근대 서양 철학의 문제 제기였던 주인과 노예를 여전히 들먹여야 하는 상황이다. 제 아무리 압제에 맞서 싸웠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뉴스조차 있는 그대로 읽지를 못하니. 궁극적으로 정치적 판단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자유롭지 못한데. 누군가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정신의 빈곤은 함석헌이 일제시대 때 피를 토하며 외친 '우리안의 돼지'가 아니고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