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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의 온고지신] 제폭구민(除暴救民)

 

'제폭구민'(除暴救民)과 '보국안민'(輔國安民)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궁극적 목표였다. 민비와 그 척족이 권력을 쥐고 농단하는 동안, 나라는 늘 풍전등화였고, 조선을 집어삼키려고 싸우던 외세(청나라와 일본)는 그 존재자체가 생존의 위협이었다. 

 

전봉준은 그 일체의 학정과 위협을 사즉생과 임전무퇴의 정신으로써 대항해야 할 폭력으로 인식했다. 그것이 동학농민혁명의 동기다. 그 폭력을 제거해야만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백성을 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것이 나라를 돕는 일이며, 그 때 비로소 씨알들의 삶이 편안해진다는 것이 동학군의 신념이었다.

 

전봉준과 농민군은 고부에서 시작하여 전주까지 파죽지세로 달려갔다. 관군에게 압승을 거둔 농민군은 혁명전사로 변했다. 그 마음으로 우금치까지 폭풍 진격했다. 아쉽게도 거기까지였다. 겨우 200명의 일본군과 3000명의 관군이 연합하여 2만명의 동학군을 전멸한 것이다. 대포와 최신형 기관총으로 공격하는 일본군에게 화승총과 죽창으로 대항한 '아군'의 패배는 예정된 것이었다.

 

130년 전, 그 조상들이 당했던 폭력은 치명적이었다. 안팎으로, 무능하고 악마적인 왕조와 외세(청나라와 일본)는 잔인무도한 폭력집단이었다. 그래서 덤비려면 모두가 목숨을 걸어야 했다. 토끼 한 마리가 각각 다른 방향에서 달려드는 세 마리의 늑대들을 상대해야 하는 싸움이었다. 나라를 위하여 죽기를 결심하고 뒤를 보지 않는 이들은 역사가 된다.

 

동학군의 반봉건, 반외세의 혁명정신은 19세기말 시대사조에 부합하는 근대정신의 핵심가치였다. '우금치 전투'는 승패를 넘어서는 품격의 역사다. 그 정신은 3.1, 4.19, 5.18, 6.29에 이어 촛불혁명에까지 연면히 이어졌다. 우리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死卽生 DNA'다.

 

다나까 쇼조(1841-1913)는 일본의 지도자였다. "전봉준은 풍행방정하고, 공명정대하며, 종교를 통하여 근본적인 개혁을 하려고 했다.일본 군대가 이를 알지 못하고 동학을 유린한 것은 개탄스럽다." 그가 '조선잡기'에 쓴 글이다. 큰 인물답다.

 

요즘 대통령 선거판은 참으로 기가 막힌다. 주류언론은 이제 본연의 더러운 장사치 직분조차 팽개쳤다. 여권은 처삼촌 뫼 벌초하듯 한다. 한쪽 지지자들은 광포한 군중이 되었다. 지금 이 나라는 '막가파'들이 판치는 '연성 폭력'(soft violence)의 현장이다. 몽둥이와 각종 흉기들 대신, 거짓말, 저주, 억지, 모략, 파렴치의 야비한 난장!

 

2022년 3월 9일!

 

나의 후보가 전봉준의 꿈 '제폭구민 보국안민'의 깃발을 이순신에게 남은 13척 전함의 돛에 달고 330척 적함(敵艦)을 섬멸하기 바란다. 그가 두 장군의 가르침으로, 100년 전과 다름없이 중미러일에 둘러싸인 조국을 지키고 마침내 비약시키기를, 그리하여 국운상승의 리더가 되기를 하늘에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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