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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프랑스예술기행] 모파쌍과 페깡

 

불멸의 작가 기 드 모파쌍(Guy de Maupassant). 그 역시 천재적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신의 부르심은 너무도 빨랐다. 그가 생을 마감한 건 서른일곱 살 청춘. 하지만 100년을 살다 간 사람을 무색게 할 정도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첫 성공작 ‘비곗덩어리’부터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여자의 일생’, 그리고 파리의 불쌍하고 추잡함을 고발하는 ‘롱돌 자매’ 등 주옥같은 소설을 300편 넘게 썼다. 이 작품들을 통해 그는 다양한 인간군상과 그들의 대화, 시선을 섬세하고 애잔하게 표현했다.

 

이런 모파쌍의 탄생지는 특이하다. 그는 미로메닐 성(Château de Miromesnil)에서 태어났다. 노르망디 페깡(Fécamp)에 있는 이 성은 18세기 프랑스 법무재상이었던 미로메닐 공작의 소유였다. 백성을 사랑한 미로메닐 공작은 죽으면서 이 성을 지역주민들에게 개방했다. 모파쌍의 부모는 그들에게 호의적이었던 페깡시장과 주임신부에게 부탁해 이 성을 빌렸고 거기서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어린 모파쌍은 지극히 평범했다. 말이 없고 페깡의 바다와 항구, 선원들을 무척 좋아했다. 스포츠광에 자유를 만끽한 행복한 아이였다. 그가 페깡을 떠난 건 스무 살 때. 파리 해양부장관실 공무원이 되면서였다. 이때 플로베르로부터 본격적인 문학수업을 받았다. 플로베르는 문학에 심취한 어머니의 친구였고 어머니는 플로베르의 대모였다. 플로베르는 모파쌍에게 위스망스와 도데, 졸라를 소개시켜줬고 이 유망한 청년들은 피나는 노력을 통해 훗날 손꼽히는 작가가 됐다.

 

모파상은 농부, 간교한 사람, 부르주아, 바보, 불우한 사람들의 삶 속을 파고들거나 외관을 그리는 데 열중했다. 그는 특히 노르망디 농부들의 사투리를 재치 있게 표현했고 그들의 삶을 설득력 있게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이런 그의 문학적 원천은 고향 페깡이었다. 이곳은 노르망디 공작의 저택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공작들의 궁궐이 많고, 아주 빼어난 생트 트리니티 사원까지 어우러져 있어 기품이 넘친다. 어디 이뿐인가. 기괴한 베네딕틴 궁과 맛과 색깔이 신비한 페깡의 위스키인 리큐르 베네딕틴은 매력적이다. 거기에 온갖 식물이 뿜어내는 향기와 향료들의 풋풋한 냄새. 코를 찌른다.

 

 

페깡에서 에트르타로 넘어가는 알바트로 해안의 하얀 절벽과 모파쌍이 사랑했던 이뽀르(Yport)에 펼쳐진 특이한 여름별장들, 바람의 언덕에서 바라본 마을과 바다, 갈리아 요새, 대서양의 장벽까지. 이보다 더 아름다운 장면은 찾을 수 없다. 오죽했으면 프랑스 사람들이 죽기 전에 걸어봐야 할 코스로 이곳을 선정했을까. 올 여름 페깡의 자갈해변에서 강렬한 태양을 즐기고, 바람의 언덕으로 옮겨 리큐르 베네딕틴을 마시며 아름다운 절벽과 에메랄드빛 바다를 유유자적 바라본다면 어떠할까.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녹아내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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