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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후기] 죽음마저 첫눈에 반한 아름다운 황후 ‘엘리자벳’

실존인물인 19세기 오스트리아 황후 ‘엘리자벳’의 삶 다뤄
한국 초연 10주년…이번 공연 끝으로 연출·무대 등 대대적 변화
옥주현·이지혜·신성록·김준수·이지훈·강태을 등 출연
11월 13일까지, 서울 블루스퀘어

 

‘난 나를 지켜나갈 거야/ 난 자유를 원해/ 새장 속 새처럼 살아갈 수는 없어/ 난 이제 내 삶을 원하는 대로 살래/ 나의 주인은 나야/ 난 자유를 원해/ 자유’ (곡 ‘나는 나만의 것’ 중에서)

 

아름다운 미모로 만인의 사랑을 받았지만, 답답한 궁정 생활을 벗어나길 갈망하고 언제나 ‘죽음(토드)’의 유혹 속에 살았던 황후 ‘엘리자벳’. 그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한 죽음은, 자신만이 진정한 자유를 줄 수 있다며 평생 그의 곁을 맴돈다.

 

뮤지컬 ‘엘리자벳’이 한국 초연 10주년 기념 공연으로 돌아왔다. 황후 엘리자벳의 생애에 죽음 그 자체를 의인화한 인물 죽음을 등장시키며, 역사적 사실에 동화적 요소를 더한 이야기로 세계적 흥행을 일으켰다.

 

1992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초연 후 독일, 이탈리아, 헝가리, 스웨덴, 일본, 한국 등 세계 12개 국가에서 공연을 올리며 11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사로잡았다.

 

작품은 실존 인물인 19세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황실의 황후 ‘엘리자벳 폰 비텔스바흐(Elisabeth von Wittelsbach, 1837~1898)’의 삶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극작가 미하엘 쿤체(Michael Kunze)가 70년간 스위스 정부의 기밀문서로 보관됐던 엘리자벳의 일기장과 ‘엘리자벳이 합스부르크 왕궁에 죽음을 데려왔다’는 오스트리아 민담에서 영감을 받아 이야기를 완성했다.

 

 

막이 오르면 어두컴컴한 무대 위 한 남자가 있고, 그는 누군가에게 엄중한 목소리로 심문을 받고 있다. “루케니, 도대체 왜? 황후 엘리자벳을 죽였습니까?” 황후 엘리자벳을 암살한 혐의로 100년 동안 목이 매달려 재판을 받고 있는 ‘루케니’. 그는 판사에게 엘리자벳 스스로가 죽음을 원했으며, 일생 동안 ‘죽음’을 사랑했다고 항변한다.

 

시간은 1853년, 엘리자벳이 자유분방했던 16살로 되돌아간다. 따분한 가족 모임에서 엘리자벳은 외줄타기를 하고 놀다가 떨어지고, 이때 신비롭고 초월적인 존재인 죽음과 처음 마주한다. 엘리자벳의 아름다움에 반한 죽음은 그를 살려두고, 마치 그림자처럼 주위를 맴돈다.

 

하지만 엘리자벳에게 반한 건 죽음뿐만이 아니었다. 엘리자벳의 친언니 ‘헬레나’와 결혼 예정이었던 오스트리아의 황제 ‘요제프’ 역시 그를 본 순간 사랑에 빠졌다. 요제프는 어머니인 소피 대공비의 반대를 무릅쓰고 엘리자벳과 결혼한다.

 

그렇게 “작은 새는 새장으로 날아들었고, 새장 문은 닫혔어”라는 루케니의 의미심장한 대사가 이어진다.

 

 

◇ 왕관의 무게를 견디는 ‘엘리자벳’ 이지혜

 

개막 전 배역 논란으로 곤혹을 치뤘던 ‘엘리자벳’. 그 중심에 있던 이지혜는 말괄량이 10대 소녀부터 자식을 잃고 슬픔에 빠진 어머니까지 다채로운 연기 층을 뽐내며 작품의 흡인력을 높인다.

 

가족 모임에 가기 싫어하며 “꿈꾸고, 시를 쓰면서, 말을 타고, 아빠처럼 자유롭게”를 외치는 소녀 엘리자벳을 연기할 때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순수한 느낌을 준다.

 

새장 같은 황실 생활에 지쳐 남편에게 자신을 저버리지 말라며 서글프게 얘기해 보고, 자유를 찾겠다며 강인하게 노래를 이어가기도 한다.

 

아들을 잃은 뒤에는 흰머리가 듬성듬성 나있는 노쇠한 모습으로 “죽음이여 나를 데려가. 이 고통 속에서 제발, 제발 날 구해줘”라고 애원한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자신의 아이와의 동행을 조건으로 요제프와 외교활동에 나섰을 때이다. 엘리자벳은 네모난 틀 속에 갇혀 마리오네트처럼 영혼이 없는 채로 나타난다.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움직임에 말과 표정에는 감정이 있을 리가. 황실 생활 속 단 한 순간도 자유롭지 못했던 엘리자벳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또한, 요제프 역에 새롭게 합류한 길병민도 기존 배우들보다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라는 주변의 우려를 싹 씻어낸다. 중후한 목소리와 탄탄한 발성으로 황제라는 역할에 이질감이 없다.

 

 

◇ 믿고 보는 배우, 김준수·이지훈

 

이미 ‘엘리자벳’으로 여러 차례 무대에 오른 김준수와 이지훈의 활약은 믿고 볼만하다.

 

죽음은 극의 진행 중간중간 등장해 곡을 부르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김준수는 이때마다 무대를 순식간에 장악한다. 물론 가창력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모두가 파티를 즐기는 성대한 결혼식 장면에서조차 모든 시선을 빼앗는다. 자신의 손을 잡지 않고 결혼을 택한 엘리자벳을 보내며, 쓸쓸함과 질투가 섞인 마음을 표현해낸다.

 

“인정해. 넌 황제보다 나를 더 원하고 있어.” 엘리자벳을 향한 끊임없는 구애가 집착이 아닌 사랑으로 보이는 건, 김준수의 매혹적인 목소리와 표정 덕분이다.

 

어린 루돌프에게 접근할 때에는 따뜻하고 다정한 손길로 죽음이 아닌 천사가 온 듯하다. 루돌프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함께 있어달라고 생각할 만하다.

 

 

루케니 역의 이지훈은 ‘엘리자벳’ 내에서 가장 바쁜 배역 중 하나다. 해설자가 돼 극 전체를 이끌어간다. 집사, 카페 종업원, 민중을 이끄는 선봉장, 기념품 판매원 등 다양한 모습으로 무대와 객석을 누빈다.

 

특히, 2막 시작 부분 객석에 등장해 중간 휴식으로 끊어진 관객들의 집중력을 확 끌어 올린다. 그가 뿌리는 엽서를 받으며 관객들은 자연스레 웃음을 머금고 박수를 치게 된다.

 

 

◇ 초연 제작(프로덕션)으로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뮤지컬 ‘엘리자벳’은 2012년 국내 초연 당시 15만 관객을 동원하고, 제6회 더 뮤지컬 어워즈 역대 최다 8개 부문 수상, 제18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 남녀주연상 동시 수상을 거머쥐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인정받았다.

 

특히, 이번 공연은 ‘엘리자벳’ 초연 제작을 만나볼 수 있는 마지막 무대로 팬들의 아쉬움을 더한다.

 

제작사 EMK뮤지컬 측은 이번 공연을 기점으로 연출, 무대, 안무, 의상, 조명, 영상 등 대대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엘리자벳’의 상징으로 불렸던 이중 회전 무대와 3개의 승강기(리프트), 죽음이 등장하는 약 11m의 다리 등 화려한 무대 세트와 유럽 왕실의 고풍스러운 의상들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셈이다.

 

‘엘리자벳’은 오는 11월 13일까지 서울 블루스퀘어에서 공연된다. 엘리자벳 역 옥주현과 이지혜, 죽음 역 신성록, 김준수, 노민우, 이해준, 루이지 루케니 역 이지훈, 강태을, 박은태 등이 출연한다.

 

[ 경기신문 = 정경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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