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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선감학원 진실규명 결정까지…피해자들 따라다닌 ‘불명예 꼬리표’

선감학원 피해자 안모씨 인터뷰, 삼형제가 함께 입소해 생활
단체 기합·강제노동·유해 묻기 등 갖가지 인권침해 실상 전해
퇴원 후 혈혈단신 맨몸으로 사회 나와…“닥치는 대로 일했다”
사회적 인식 안 좋아 피해자라고 말 못해…“국가도 사과해야”

 

‘선감학원’ 소년들이 머리가 희끗해질 때쯤 한(恨)을 풀었다. 선감학원 폐원 후 무려 40년의 세월이 흘러서다. 지난 20일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 결정으로 가해자인 경기도는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이례적인 공식 사과에 피해자들은 벅찬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연신 눈물만 흘렸다. 이들의 눈물은 무엇을 의미할까. 경기신문은 선감학원 설립부터 폐원 후 진실규명 결정까지 80년 세월 속 과정들을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선감학원 사건 진실규명 결정까지…‘경기도 역할론’
② 선감학원 사건 진실규명 결정까지…상처 입은 ‘피해자들’
<계속>

 

“선감도로 들어가는 길목이 ‘지옥문’이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던 거죠.”

 

지금으로부터 57년 전 이맘때쯤 선감학원 아동인권침해 사건의 피해자 안모(68)씨는 11살이던 무렵 대부도에서 나룻배를 타고 안개가 자욱하게 낀 선감 선착장에 도착했다. 

 

안 씨는 “나루터에 내려 바다를 바라보는데 안개가 뿌옇게 껴있는 게 너무 무서웠다”고 회상했다. 그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머리 부분을 몽둥이로 맞아 찢어지면서 피를 흘렸다. 선감학원에 입소하기도 전에 당한 첫 폭력의 기억이다. 

 

안 씨가 선감학원에 오기 1년 전, 안 씨의 둘째 형이 먼저 들어왔다. 인천이 고향이었던 안 씨 형제들은 거리에서 놀다 야경꾼들에게 붙잡혀 이곳으로 오게 됐다. 돌아오지 않는 막내 동생 안 씨를 찾으러 나간 큰 형마저 붙들려오면서 안 씨 삼형제는 이곳에서 비극적인 소년 시절을 보낸다.

 

 

안 씨는 입소 첫 날 단체복을 착용함과 동시에 논밭, 염전 등 선감도 일대 어느 곳이든 가리지 않고 강제노동을 해야 했다. 경기도지사가 헬기를 타고 종종 시찰 올 때면 깨끗한 옷에 좋은 음식 등이 ‘잠시’ 마련됐고 지사 앞에선 ‘잘 지내고 있다’는 말만 반복해야 했다.

 

경기도 공무원이었던 지도원 선생님들의 폭력은 일상이었다. 안 씨는 “‘한강철교’라는 벌이 있었다. 엎드려서 뒷사람 어깨에 발을 올리고 다리처럼 쭉 엮어서 만들면 선생님들이 그 위를 짓밟고 지나가는 것인데 아이들이 힘이 없어서 푹 주저앉으면 마구 짓밟았다”고 증언했다. 

 

안 씨는 고된 삶을 견디다 못해 탈출했다가 암매장된 친구를 직접 선감묘역에 묻었던 경험도 털어놨다. 안 씨는 “내 평생 이름을 잊지 못하는데 ‘여명구’라는 친구가 있었다. 도망가려다 익사해서 떠내려 와 가마니로 그대로 말아서 선감묘역에 묻어주고 선감학원가를 불러줬다”고 했다. 

 

 

◇ 퇴원 후에도 ‘불명예·트라우마’ 등 평생 고통…“국가도 사과해야”

 

안 씨는 선감학원에서 8년가량을 지내고 퇴소할 때까지 임금은커녕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나와야했다. 두 형을 찾아주겠다던 선생님은 인천으로 데리고 가더니 어느 순간 사라졌다. 먼저 퇴소한 안 씨의 두 형들이 ‘머슴살이’로 팔려갔다는 것은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혈혈단신 맨몸으로 사회에 던져진 그는 자전거 배달, 택시·화물차 운전 등 어느 것이든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했다. 안 씨는 가족을 꾸리면서도 자신이 선감학원 피해자라는 것은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했다.

 

당시 선감학원은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이 가는 곳’이라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었다. 안 씨가 경기신문과 이번 인터뷰를 진행할 때 실명을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것도 이러한 영향 때문이었다. 

 

 

안 씨는 선감학원의 폭력 흔적이 나이가 들면서 트라우마로 발병하고 있다는 것도 체감했다.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트라우마 관련 설문조사를 한 결과 51%가 자살시도를 했다. 수면장애 증상 등에 대한 설문에선 ▲불면증 35% ▲악몽 30% ▲신체적 통증 21% 등 86%가 고통을 호소했다.

 

안 씨는 인천 출신 원생 30여 명과 비정기친목회로 만나다가 피해 사실을 밝히기로 결심했다. 그는 “억울함을 세상에 알릴 엄두도 못 냈는데 과거사 청산 이야기가 언론에 나오면서 용기를 냈다. 회비와 찬조금을 조금씩 모아 우리의 일을 세상에 알리려 결심했다”고 말했다.

 

안 씨를 비롯한 선감학원 피해자들은 2018년 ‘선감학원 아동피해대책협의회’라는 단체를 출범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이들은 장장 13년 동안 직접 국회의원, 시민단체, 변호사 등과 함께 선감학원 피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2019년 1월 이재명 지사가 처음으로 선감학원 피해자들과 공식 면담하고, 도를 대표해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공식 사과를 건네면서 피해자들의 그간의 노력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2020년 12월 10일 안 씨는 김영배 선감학원 아동피해대책협의회 회장을 비롯한 160여 명의 동료들과 이재강 전 도 평화부지사와 함께 ‘진실규명 결정 신청서’를 제출했다. 안 씨는 “가슴이 벅찼다”고 당시의 소회를 전했다. 

 

지난달 26일 안산시 선감동 37-1 선감묘역에서 진실화해위의 유해 시굴 작업이 이뤄지는 현장에서 안 씨는 말없이 현장을 지켜보기만 했다. 이후 지난 20일 이뤄진 진실규명 결정 당일 김동연 지사가 사과하면서 비로소 안 씨는 벅찬 심정으로 통탄의 눈물을 흘렸다. 

 

진실규명 결정 후, 안 씨는 경기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역경의 세월 속에서 살아남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당시 억울하게 묻히고 떠난 동료들이 이 모습을 보지 못해 가슴이 아프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어 “김 지사가 사과를 표하고 적극 조치를 취하겠다는 말을 들으니 40여 년 억울함과 한이 풀어지는 것 같다”며 “국가도 함께 사과해야 한다. 선감학원을 떠난 후에도 불명예 꼬리표로 인해 힘든 세월을 겪었다. 뒤틀린 인생을 국가가 책임 있는 자세로 보상해 달라”고 당부했다. 
 

[ 경기신문 = 김혜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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