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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행 칼럼] 폭력적 토론 문화

 

 

정치·사회적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서로 다른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 사회 분열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고인들의 이름을 모 인터넷 매체가 공개했는데 이를 두고도 극한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쪽에서는 공개를, 다른 한쪽에서는 비공개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상대의 말을 경청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자신과 다른 주장을 하는 상대에게 논점하고는 아무런 상관없는 말을 함으로써 토론 자체를 무력화 시킨다. A가 논점인데 B라는 논점으로 이동하면 토론은 더 이상 불가능해진다. 토론이 가능하려면 A 범주 안에 있어야만 한다. A1, A2, A3 등 중학교 수학시간에 배우는 인수분해 동류항 A를 벗어나면 식이 성립되지 않거나 다른 차원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는 토론뿐만 아니라 짧은 글이든, 시든, 소설이든 동류항 묶기에서 벗어나면 실패작으로 본다. 논점이 일관되지 않는 것을 어떻게 글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토론이나 글쓰기는 영화 ‘주유소 습격 사건’의 명대사인 "한 놈만 패라"가 철저하게 지켜져야만 하는 것이다.

 

논점이탈은 십중팔구 상대를 비난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 풍경은 우리가 주변에서 숱하게 보아온 게 아닌가? A와 B가 길거리에서 자동차 접촉사고로 말다툼을 한다. 시시비비를 가리다가 A가 B에게 다짜고짜 "너, 몇 살 먹었어?"하고 나이를 들이댄다. 그것으로 토론은 끝이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오히려 조장한다. '메시지에 자신 없으면 메신저를 공격하라'는 말이 하나의 철칙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상대를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정치는 고도의 토론행위임을 부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과정을 통해 논점 A는 휘발되고 만다. 정치 프레임이 자연스레 들어선다. 이태원 참사 고인들의 이름 공개 여부에 대한 논점이 '사고를 은폐하려는 정권의 음모'와 '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막으려는 시도' 등 프레임으로 이동했음을 우리는 지켜보았다. 여당과 야당의 프레임 전쟁이 되고 만 것이다.

 

명단 공개 여부 논쟁은 우리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스 비극인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가 문제 제기한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현재적 시점에서 새롭게 고찰할 수 있는 등 실로 많은 것을 숙의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하지만 토론 문화의 부재와 정치 프레임화해서 이득을 보려는 정치 세력들 때문에 사장된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쯤이면 우리 사회의 분열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우리 사회에 갈등을 관리하는 토론 문화가 빈곤해서 빚어지고 있다는 게 입증되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라면 당연히 갈등이 존재한다. 갈등은 변수가 아닌 상수인 셈이다. 이제부터라도 논점 A만 말하는 것을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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