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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수의 관규추지(管窺錐指)] 2023년 우리는

 

 

 

윤석열 정부가 노동, 연금, 교육 부문을 개혁하겠다고 공언했다. 말이 좋아 개혁이지, 적자 핑계로 공공부문 민영화, 법인세는 내리겠지만 복지는 축소할 것이며, 노동 시간은 주당 69시간까지 늘리겠다는 거다. 교육 자치도 폐지해서 교육감 선거는 지자체장과 러닝메이트 식으로 뽑겠다고 한다. 야당이 입법부를 장악하고 있으니만큼 최악은 막아주길 바라지만, 이재명 보위가 최대 과제가 된 민주당을 보면 기대난망이다. 게다가 세계 경제는 악화일로라 하고, 금리는 치솟을 것이니, 서민 살림살이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이제 며칠 지나면 새해인데, 도무지 희망을 찾아보기 어렵다. 우울한 세밑이다.

 

작년 6월 조국이 쓴 책이 무려 10만 권이나 나갔다는 뉴스를 접하고, 정권은 넘어갔구나 싶었다. 조국 가족이 가혹한 처벌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조국으로 상징되는 586들의 체제 안주와 또 다른 기득권 되기,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이 피폐해지는 대신 우리 월급이 늘어나는 것에 안도하기, 집도 결혼도 취직도 포기한 젊은이들에게 노력을 하라고 다그친 우리가 아니었나. 정권은 문재인 대통령 집권 5년 내내 넘어가 있었다. 우리가 증오했던 수구 기득권 세력은 아직 그대로인데, 그 증오를 우리가 받고 있다. 심지어 극우만도 아니다. 수많은 젊은이와 영세 자영업자 역시 문재인 정권과 우리를 저주하고 있다.

 

많은 식자가 지적한 대로, 군사독재를 타도하고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자는 요구에서 비롯한 87 체제는 이미 종언을 고했다. 그때 짱돌을 던지고, 감옥에 가고, 고문당하면서 민주주의를 외쳤던 자들이 '당연히' 정권을 잡아야 하는 세상은 지나가 버렸다. 한때 정의 편에 서 있었다고 자부하던 우리에게 남은 것은 통렬한 자기비판뿐이다. 그 비판과 성찰에 무엇이 담겨야 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뜻을 모으고, 어떻게 실망한 중도층을 설득해야 할지는 내가 다룰 수 없는 주제지만, 시골 한의사에 불과한 자라도 하나는 알겠다. 우리는 깊이 반성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희망이 보일 것이다.

 

산다는 건 언제나 칼날 위에 얹은 무명실처럼 위태로웠다. 술 한잔 먹고 대통령 욕을 하다 간첩으로 잡혀가 두들겨 맞기도 했고, 시위 한 번 나가려면 멸문지화를 각오해야 했던 시절이 길었다. 정치만 그랬나, 경제도 늘 어려웠다. 필자가 수련의 과정을 마치고 개업하던 1992년만 해도 은행 이자 13%면 감지덕지했다. 2%대 이자 내다, 내년부터 8% 이자 내려면 등골이 휘겠지만, 영차영차 가다 보면 어떻게든 살길이 보이지 않겠는가. 설령 희망도 비전도 아스라이 가뭇하대도, 살아온 대로 서로 기대고 부추겨주며 가다 보면 좋은 날 오지 않겠는가.

 

장개석이 보내주던 원조도 끊기고, 조선 반도나 하와이 송금도 기대할 수 없던 1940년대 초, 상해독립정부 요인들은 콩 반쪽을 나누며 말했다고 한다. 객지에서 얼어 죽은 외톨이는 되지 말자. 아무리 어려워도 설마 독립운동하시던 분들만큼 어려울까 보냐. 2023년 우리는 제대로 반성하고, 서로 총질하지 말고, 영차영차 힘내서 가자. 가다 보면 길이 열릴 것이다. 열리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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