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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적지 공작원 장이호와 독수리 작전

 

홍범도 장군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범도'를 탈고한 다음 나는 대한독립전쟁에 참전했던 병사들의 이야기를 쓰기로 작정했다. 역사를 바꾼 것은 세상을 바꾸려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꿈이고, 그 꿈을 위해 행동했던 사람들이 만든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는 사실을 ‘범도’를 쓰면서 더욱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역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남긴 자취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자료를 찾기가 정말 어려웠는데,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인물 한 명을 발견했다. 한국광복군 공작원 장이호다.

 

장이호는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출신이다. 그가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간 해가 1936년이었다. 그의 나이 스물이었다. 조선 동포들이 많은 서주에 정착한 그는 평양냉면을 파는 ‘통일면옥’을 열었다. 성실하고 재간이 좋은 그의 냉면집은 장사가 잘되었다. 비밀활동을 하는 ‘전지공작대’와 ‘청년공작대’ 대원들이 자주 드나들면서 ‘통일면옥’은 독립운동의 비밀아지트가 되었고, ‘통일면옥’의 수익금은 독립자금으로 넘어갔다. 어느새 공작원이 된 장이호가 아예 정식으로 한국광복군 제3지대 제1구대 대원으로 입대한 것은 1944년이었다.

 

1944년은 일제가 연합국의 공세에 맞서 최후의 발악을 하던 시기였다. 부족한 병력을 채우기 위해 ‘학도특별지원병’이라는 명목으로 조선 청년들을 강제 징집해 중국과 태평양 전선에 총알받이로 내몰았다. 국내에서는 친일파 군인 신태영과 이응준이 자신들의 꿈이 ‘야스쿠니 신사’라고 떠들며 조선청년들에게 일본천황의 ‘고굉(팔과 다리)’이 되어 영광스럽게 죽으라고 독려했다. 그렇게 끌려간 조선인 ‘학병’이 가장 많이 배치된 곳이 중국전선이었다.

 

수완이 뛰어난 장이호는 서주지역의 일본군 적진에 뛰어들어 친일파들이 내몬 조선 청년들을 광복군으로 탈출시키는 공작을 벌였다. 장이호를 비롯한 공작원들의 목숨을 건 활약으로 3백여 명의 학병들이 광복군으로 넘어왔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미국의 첩보부대 OSS와 함께 국내침투작전 ‘독수리 작전(Eagle Project)’를 수립하고 이들을 주축으로 정예요원을 선발했다. 엄선된 1기생 50명 중에 게릴라전과 첩보, 통신, 심리전 과목을 모두 통과한 38명이었다. 이들의 임무는 산동성 해안에서 미군 잠수함을 타고 국내로 잠입해 일본군 주요 기지를 파괴, 점령하는 것이었다. 작전 개시일은 1945년 8월 9일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일본은 미국에 무조건 항복을 통보했고, 독수리작전은 중지되었다.

 

일본은 항복을 했고, 미군은 국내 진공작전을 애타게 기다리던 대한광복군의 입국을 불허했다. 장이호와 같은 대한광복군 대원들이 분루를 삼키며 중국에서 발을 구르는 사이 일본천황이 항복을 공식발표하는 그 순간까지 일제에 충성을 다 바친 친일파 군인들이 미군정에 들어가 국군의 창설을 주도했고, 현충원에 있는 그들의 비문에는 ‘국군의 아버지’라고 적혀 있다. 장이호는 오늘도 그 친일파 장군들의 발아래 동지들과 나란히 누워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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