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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나이 드는 재미

 

산길은 사람의 발에 밟힌 낙엽이 으깨져 흙이 되어가고 있었다. 모든 생명은 왔던 그 길이나 그곳으로 가는 것인가! 내 나이 적지 않은데 나의 갈 곳은 어디며 언제쯤일까. 12월의 가슴은 무겁고 축축하다. 청주에 사는 수필가에게서 수필집을 보내왔다. 꽤 오랜 인연 속에 한 번도 인사를 거르지 않은 작가다. 그와의 인연은 J신문사 신춘문예 심사를 내가 맡았을 때 그의 작품이 당선작으로 뽑힌 결과로써 시작되었다. 그런 그가 내게 금년을 마무리하는 결실의 의미로 보낸 선물 같았다.

 

존경했던 고하 선생님은 얼마 전 고인이 되었다. 생전의 선생님은 누가 책을 보내오면 꼭 편지나 우편엽서로 ‘잘 받았다’는 인사를 대신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연말연시의 인사나 덕담을 편지로 주고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휴대폰 문자 때문에 우체국에서도 경조카드 자체를 없앴다. 을유문화사에서 낸 『동국세시기』 12월을 보면, 종묘와 사직에 제사를 지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그믐날 밤(除夕)에는 2품 이상의 벼슬아치들이 대궐에 들어가 묵은해 문안을 드렸다고 적혀 있다.

 

사춘기를 벗어난 성인으로서 나이 들어가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이 드는 것을 체감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해한다지만 쓸쓸하고 저리다. 그래서인지 작은 일에도 서운해지며 우울하다. 한 눈 팔지 않고 열심히 착하게 살아온 결과가 이거냐 싶다. ‘마음의 지게’를 한 번도 내려놓지 못하고 살아온 그 세월이 얼마인데- 수많은 날 공들여 잡은 물고기들을 상에 떼에게 물어 뜯겨버린 『노인과 바다』에서의 노인 생각이 날 때도 많다.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인지 그릇된 편견인지- 가끔은 인류를 ‘털 없는 원숭이’라고 한 데즈먼드 모리스의 책이 생각난다.

 

12월도 가운데 토막이 지나간다. 크리스마스 성탄절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내와 근사한 외식 한 번 제대로 못했어도 그녀는 한 번도 불평한 일이 없었다. 아이들 또한 착하게 성장해 주었다. 앞으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기도하는 마음을 잊지 않아야겠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친 아우 같은 오 선생에게 전화가 걸려와 그의 차로 편백 숲 영화촬영지를 거쳐 가마솥에서 담백한 점심을 먹었다. 이어서 차를 한잔 마시며, 그는 내가 형님에게 우리 손자 지온이가 과학고에 들어갔다고 자랑했으니 오늘은 손주 자랑 턱으로 잘 모시겠다고 했다. 이성계가 개국 전 기도하고자 다녀갔다는 상이암(上耳庵) 이 있는 산을 올라갔다. 암자 곁에는 ‘커피 한잔 어떻소!’라는 간판을 건 나무집의 무인 카페도 있었다.

 

하산하는 길에서의 생각이다 홀로 되어야 가족의 가치를 발견한다고, 가족과 아이들에게 너무 교육적으로만 건조하게 대했다는 후회가 가슴을 저리게 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당당하게 노년을 보내라고 한다. 로마 최고의 정치가요 문인이기도 했던 키케로는 ‘무엇이 노인을 명예스럽게 하는가.’에서 말했다. ‘노년을 스스로 지켜가면서 자신의 권리를 유지해 나간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것들을 다스려 나간다면, 노년은 매우 영예로운 인생의 한 시기라네.’라고. 명예로운 권위! 그것은 젊은이의 쾌락보다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이며 마음먹는다고 되는 일인가. 그러면서도 이 생각 저런 일들이 나이 드는 재미요 나이 값인가 하는 생각으로 갈아들면 하늘을 쳐다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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