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공리공론이 아닌 실용적 지식을 추구한 개혁적·실천적 학풍 실학. 민생에 실제적인 도움이 되는 방안을 강구하고 옛것을 배우되 잘 변용해 새로운 것을 만들고자 했던 실학 정신은 21세기 지금도 유효하다.
전라남도 강진은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 선생(1762~1836)이 순조 원년(1801년)부터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한 곳이다. 유배 당시 사회의 피폐상을 직접 확인하면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목민심서’등 정치·경제·사회·문화·사상을 포괄하는 600여 권의 저술서를 남겼다.
정약용은 사학(邪學, 천주교)을 접했다는 이유로 유배길에 오른다. 정조(1752~1800)가 죽고 벼슬살이를 그만 뒀지만 사학을 접하고 형 정약종과 형수(문화 유씨), 매형(이승훈)과 조카들(정철상·정정혜), 조카사위(황사영)등 일가족이 몰살당한다.
강진에 도착한 정약용을 받아주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들른 주막에서 가까스로 밥과 거처를 제공받은 정약용은 ‘베푸는 학문’을 하기로 마음먹고 이 방을 ‘사의재(四宜齎)’로 이름 지은 후 4년간 기거했다.
‘생각은 담백하고 맑아야 하며, 외모는 마땅히 장엄하고, 말은 적당해야 하며 움직임은 무거워야 한다’는 뜻을 가진 사의재는 강진에 도착한 정약용이 심신을 추스르고 다산 실학을 태동시킨 곳이다. 현재 고증을 거쳐 우물과 집터가 복원돼 있다.
강진만을 내려다보는 만덕산 기슭엔 정약용이 제자들과 학문을 하며 저술서를 집필한 다산초당이 있다. 강진 유배 18년 중 10년 동안 생활했으며, 동암, 서암이 복원돼 있다. 정조대왕과 유배 중인 형 정약전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기린 천일각(天一閣)도 명소로 꼽힌다.
다산초당에서 만덕산 중턱에 위치한 백련사로 이어지는 800여 미터 길에는 야생차 군락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백 숲이 펼쳐져 있다. 차가 많이 나 다산(茶山)이라고 불렸던 만덕산은 유배생활 동안 벗이자 스승, 제자였던 혜장선사와 정약용을 이어주던 길이었다.
다산 정약용의 실학사상은 21세기 강연과 토론, 창업 프로젝트로 다시 태어났다. ‘신경세유표-다산에게 다산을 묻다’라는 주제로 강진순례 청년교류단이 21세기의 개혁방안을 모색했다. 동시대 사회문제를 실학적 해법을 모색하는 라운드테이블도 진행됐다.
주철환 프로듀서는 ‘K-컬쳐와 실학’ 강연에서 실학이란 현실이나 진실, 성실, 사실, 이상을 뜻하고 컬쳐는 문화를 뜻한다며 문화의 씨앗을 제때 좋은 밭에 뿌리면 반드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고 설명했다. 희망을 주는 리더십, 소통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김광현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 가치창출단장은 ‘실학정신과 지역창업’ 기조강연을 통해 실학과 창업의 공통점은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해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정답을 제시하고 이를 실행하는 능력을 갖는 것이라며 어플리케이션 등 혁신이 세상을 바꾼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백선영 문화공복합공간 카페 낭만지구 대표가 ‘지역-공동체를 잇는 창업’, 오승희 그레잇테이블 대표가 ‘문화기업가 정신, City to farm’강연을 진행했다. 강지만 스윗발란스 대표는 스윗발란스를 소개하며 실학을 스타트업으로 재해석하기도 했다.
강의 이후엔 경기문화재단과 강진군문화관광재단의 MOU체결식을 통해 정약용 선생의 실학 정신을 이어갔다.
김태희 전 실학박물관장은 “실학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학문이고 현재 있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고민하는 것이 창업”이라면서 “실학자의 직무는 이런 실학을 실질적으로 어떻게 뒷받침할 것인가 하는 실천”이라고 말했다.
한편, 다산박물관에서는 실학박물관·다산박물관 공동기획전시 ‘동백꽃은 지고 봄은 오고’를 통해 정약용의 유배 생활과 유물들을 선보였으며 강진 마을 주민이 주축이 된 ‘다산의 꿈’ 공연을 통해 정약용의 생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 경기신문 = 고륜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