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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의대를 준비하는 세상

 

새 학기가 되어서 반 아이들과 친해지려고 쉬는 시간에 열심히 말을 거는 중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무얼하는지, 좋아하는 취미가 어떤 건지 슬쩍슬쩍 묻는데 아이들끼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A는 나중에 의사가 되고 싶어서 학원에 갔다가 매일 밤 9시에 집에 들어간다고 했다. 함께 대화하던 B도 의사가 꿈이라고 했다. A가 B에게 의사가 되려면 지금부터 엄청나게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핀잔을 줬다.

 

A가 쓴 자기소개서를 다시 살펴보니 이렇게 쓰여 있었다. 과학고에 입학했다가 의대를 가서 의사가 되는 꿈이 생겨서 열심히 공부 중입니다. 사실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의 장래희망이 확실해서 매일 밤까지 공부를 하는 건 기특한 일이다. 대체로 많은 학생이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는 게 요즘 교실의 분위기니까.

 

약간의 문제라면 의대에 가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는 거다. 10년 전에는 ‘저의 꿈은 의사입니다’라고 말하는 친구가 반에 한, 둘 정도 있었다면, 지금은 그 숫자가 확실히 늘어났다. 구체적으로 ‘의대 준비반’ 타이틀이 붙은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일반 학원의 최상위권 반 이름이 의대반으로 바뀌었다는 기사를 봤는데, 아이들이 그 반에 들어가고 싶어하며 장래희망에 영향을 받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의대 준비반에서 과학자를 꿈꾸기엔 아무래도 머쓱할 테니까.

 

초등학교 때부터 특정 대학 특정 과를 준비하는 분위기는 미래 세대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우린 이미 그 답과 마주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가 자녀 세대에게 주입한 가치 있는 직업과 가치 없는 직업의 차이 강조, 공부 못하면 인생이 망한다는 식의 조언들. 학교 다니는 내내 지금 공부 안 하면 한여름에 밖에서 땀 흘리며 노동해야 하는데, 그러고 싶냐는 말은 지금 2030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던 잔소리일 거다.

 

대기업, 전문직을 갖지 않으면 인생이 망한다고 배워왔는데 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의 수가 작아도 너무 작았다. 덕분에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경쟁적인 나라가 되었으며, 대체로 불행한 어른들이 많아졌다. 2023년 4분기 출생률 숫자가 0.65명까지 떨어진 데 다채로운 이유가 작동했겠지만, 이런 경쟁적인 사회에서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젊은이들의 의지 표현도 들어가 있다.

 

잘파 세대가 성장하는 2024년 현재는 공부 못하면 인생이 망한다고 입 밖으로 직접 내뱉진 않는다. 대신에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분위기가 예전보다 더 각박해졌다. 이젠 웬만한 직업으로도 충족되지 않고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어야 만족할 수 있게 됐다. 상위 1% 성적을 받아야 합격하는 메디컬 계열로 학생들의 장래희망이 쏠리고, 각종 전문직 자격증을 따기 위해 뛰어드는 어른들이 늘어났다. 이미 경쟁적인 사회였는데 그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하이퍼 경쟁시대가 나타나는 듯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건 없다. 누군가는 더운 날 몸으로 하는 일을 해야 하고, 모두가 의사가 될 순 없다. 십여년 뒤, 지금보다 더 우울하고 아이를 덜 낳는 세대가 찾아올 것만 같은 안타까운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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