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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36세 여자가 12세 소년과 불륜의 사랑에 빠져 24년을 살다

147. 메이 디셈버- 토드 헤인즈

 

영화는 종종 도덕의 수많은 회색 지대를 탐색한다. 그래서 영화는 종종 불편하다. 심지어 불온하기까지 하다. 섹스와 성의 얘기가 정치적 선택의 영역까지 확대되기도 한다. 금기의 선을 넘는 것, 그 금기의 선을 만든 사람과 제도, 시스템에 의문을 표시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제96회 아카데미상 각본상 후보에 올랐고 지난해 5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경쟁작이었던 토드 헤인즈 감독의 ‘메이 디셈버’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을 수 있)는 작품이다.

 

제목인 메이 디셈버는 ‘메이 디셈버 어페어(May December Affair)’의 준말이다. 원래는 늙은 남자와 어린 여자와의 섹스 스캔들, 일종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식의 로리타 스캔들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영화 ‘메이 디셈버’는 성 관계가 바뀌었다. 나이 든 여자와 어린 소년의 섹스 스캔들을 다루기 때문이다.

 

 

그레이스(줄이앤 무어)와 조 유(찰스 멜튼) 부부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부부다. 아내는 59세이고 남자는 36이다. 24년째 살고 있는 부부이다. 이들은 여자가 36살이고 남자가 중1 때인 13살 때 만났다. 두 사람은 여자가 일하던 펫 숍 창고에서 섹스 행각을 벌이다 발각돼 세간에서 엄청난 비난을 샀다. 그레이스는 투옥됐고 감옥 안에서 남자아이의 아이를 낳았다.

 

현재는 딸과 쌍둥이 남매 등, 3남매를 키우고 살며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도 아이들이 있다. 현재의 젊은 남편 조 유는 한국계이다.(실제 배우인 찰스 맨튼도 어머니가 한국인인 코리안 아메리칸이다.) 그레이스의 증언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그는 조숙했다고 한다. 그레이스는 진심으로 조 유에게 빠졌다고 주장해 왔다.

 

둘은 극 중에서 말다툼을 벌이는데 그레이스는 조에게 “그때 (우리의 관계를) 리드했던 게 누구야? 누구였어?”라고 따진다. 조와 그레이스는 안 그런 척, 과거가 누르는 무게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며 살아 간다.

 

 

영화 ‘메이 디셈버’가 특이한 것은 이중의 액자 구성처럼 돼있다는 것이다. 토드 헤인즈 감독은 늙은 여자와 젊은 남자의 애정행각을 직접 다루기보다는 그 앞에 캐릭터를 한 명 배치한다. 이 둘을 관찰하는 여배우 엘리자베스(나탈리 포트만)인데 그녀는 얼마 전 둘의 이야기를 다룰 예정인 영화에서 그레이스 역으로 캐스팅됐다.

 

여배우는 자신의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이 부부의 집을 방문해 그들을 탐색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영화 속 영화를 찍기 위한 한 여배우의 사전 리허설 같은 맥락으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영화는 실제 사건을 다루고(메리 케이 레트루노 스캔들이 모티프가 됐다.) 그 과정에서 관객들은 한 번 걸러지는 시선 처리를 경험하는 셈이 된다.

 

관객들은 영화 속 여배우의 생각으로 둘의 관계를 지켜보게 되는데 그게 결국 자신의 생각과 동일하게 될지는 모를 일이다. 토드 헤인즈는 그 부분에 대해 관객들이 스스로 선택하게 만든다. 이건 과거 그가 만든 ‘캐롤’이라는 레즈비언 영화에서도 썼던 방식이다.

 

 

여배우 엘리자베스는 TV 시리즈로 꽤나 유명해진 스타인만큼 그레이스–조 부부의 집인 조지아주 서배너까지 온 김에 부부의 고등학생 딸의 학교에 가서 특강 아닌 특강 초청을 수락하기도 한다.

 

한 남학생은, 남자 애 답게, 다소 천박한 질문을 던진다. 선생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섹스 연기는 어떤 가요?”라고 묻고 엘리자베스는 이렇게 답한다. “오랜 시간 벌거벗고 서로를 비비고 껴안고 있으면 사람들이 지켜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쾌감을 느끼는 척 연기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내가 쾌감을 느끼지 않는 척 연기를 하고 있는지 구별이 안될 때가 많다.”

 

완벽한 메소드 연기의 본질에 대한 설명이다. 학생들 대부분은 이해를 못 하지만 그레이스의 고등학생 딸은 나중에 엘리자베스가 연기할 자기 엄마의 모습이 어떻게 그려질지 상상하게 되고 불쾌감을 느낀다.

 

 

영화가 다루는 세상의 진실은 진실인 척하는 건지, 진실이 아닌 척하는 건지 구분하기 힘들다. 토드 헤인즈 감독과 감독을 대신하는 주연배우 나탈리 포트만은 그레이스란 여자가 도덕적인 척하는 건지, 아니면 도덕적이지 않은 척을 하는 건지, 더 나아가 자신들의 영화가 도덕을 옹호하는 건지 그 같은 도덕의 선을 만든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건지 애매모호할 뿐이다.

 

그레이스의 고등학생 딸처럼 불쾌하고 기분 나빠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도덕의 무한한 회색 지대’가 주는 철학과 통찰, 삶이 지혜를 구하려 할지는 보는 사람들의 선택의 문제일 수 있다.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보수 성향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이 영화의 내용에 대해 질타할 수도 있다. 30대 성인 여자는 10대 초반의 미성년 남자와 성관계를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이 거의 전 세계에서 공인하고 있는 불문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고, 시각을 조금 달리하면, 나이 많은 노인 남자가 어리고 젊은, 심지어 소녀를 취하고 유린하는 것에 대해 오랜 역사와 시간 동안 묵과해 왔으며 그걸 범죄로 규정한 것은 현대에 이르러서 였을 뿐이다.

 

아직도 일부에서는 노인이 젊은 여성을 취하는 것에 대해 ‘회춘’ 운운하며 관행적으로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성년의 여성과 미성년의 남자아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혹독한 징벌을 내리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라고 이 영화는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면에서 영화 ‘메이 디셈버’는 꽤나 여성주의적 시선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이야기의 액자 형 구성답게 영화는 중간중간 카메라 트래킹(카메라가 피사체를 죽 따라가며 찍는 것)으로 관객들을 영화 안으로 이동시킨다. "자 이제부터 당신은 영화 안으로 들어갑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스의 집으로 찾아 들어갈 때 엘리자베스의 시점 샷으로 관객들을 그레이스의 집으로 인도한다. 엘리자베스가 30대의 그레이스와 어린 조가 섹스를 하다 들켰다는 펫 숍의 창고로 들어가는 장면도 같은 방식으로 찍었다.

 

그레이스는 그 좁은 창고 안으로 들어서면서 그레이스가(로 빙의) 돼 소년을 안는 자신을 느껴 보려 한다. 토드 헤인즈 감독은 관객들에게 엘리자베스의 느낌을, 그때의 그레이스의 느낌을 당신들도 가져 보라고 권한다. 욕정일까, 사랑의 욕망일까. 토드 헤인즈는 극중 인물의 감정을 관객들에게 전이시키는 데 있어 섬세하면서도 천재적인 연출력을 갖춘 감독이다. 뛰어 나다.

 

 

미셸 르그랑과 마르셀로 자르보스가 만들어 낸 음악은 영화가 대사 없이 음악만으로도 내면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매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영화음악 때문에라도 인간의 삶은 매우 복잡한 내면을 지녔음을 느끼게 해 준다.

 

그건 엘리자베스의 엄마가 대학교수로서 인식론적 상대주의에 대해 가르쳤고 그레이스의 엄마는 블루베리 파이 레시피를 남긴 평범한 여자였지만 엘리자베스와 그레이스는 결국 서로의 안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할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얘기이다.

 

인생의 복잡성을 이해하면 상대에 대해 관용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는 이 장면을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두 여자의 투 샷으로 보여준다. 그 처리의 연출 방식이 기가 막히다. 두 여배우의 연기도 기가 막히다. 불꽃이 튀긴다.

 

 

이 영화 ‘메이 디셈버’는 따라서 그냥 흘려보낼 그럴 영화가 아니다. 그럼에도 소재 탓인지 한국 극장가는 홍보를 주저하고 있다.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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