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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이 가을의 건강권

 

가을은 시골 선비와 같이 왔다 사랑방 손님처럼 떠난다.

 

숯불고기 집의 불판같이 뜨거웠던 여름이었다. A4용지 1매 공간에서 헐떡이는 닭이나 땀구멍이 없는 돼지는 흙탕물에 몸을 굴리면서 더위를 식혀가며 견뎌낸다. 그런데 흙도 물도 없는 콘크리트 벽 안에서 열 받으며 목숨 걸고 살아냈던 이 땅의 여름이었다. 그래서인지 ‘반도 강산’이요. ‘한반도’라고 부르는 조국의 땅에서 살고 있는 대한민국 사람들은 인내 할 줄 아는 의지와 고운 마음결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반도 강산!’하면 도산 안창호 선생이 생각난다. 대한민국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그의 호를 ‘반도강산(半島江山)에서 도자와 산자를 빌려 도산(島山)이라고 하였겠는가. 반도 강산은 삼면이 바다로써 장단점이 있다. 하지만 장점이 더 많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반도 강산에는 사계절이 분명해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일 년을 사는 동안 봄여름을 겪으며 씨 뿌려 가꾼다. 가을겨울을 지내면서는 자연과 인생에 의한 결실의 계절을 경험하게 된다. 흰 눈이 하염없이 내리는 겨울의 맑은 풍경 속에서는 마음 빨래를 하며 영혼을 새롭게 한다. 매운 계절 뒤에 오는 봄의 새 희망을 임신하면서-. 만약 1년 내내 빙벽 안에서 살아야 하거나 더운 여름 같이 끓는 환경 속에서 맨발로 헐떡거리며 평생 열 받고 살아야 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인생살이가 되겠는가. 하늘이 내린 내 강토, 산과 바다. 그 안에서 시조와 풍년가와 판소리와 각설이타령과 함께 조정래의 '아리랑'과 박경리의 '토지'와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태동하지 않았겠는가. 그냥 금수강산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금수강산도, 그 안에 살고 있는 어른들도 옛 같지 않다는 생각이다. ‘천사가 이 땅에 올 때마다 세상은 한층 일그러져 있고 균형을 잃었다.’고 했다는 어느 시인의 시가 그럴듯하다는 생각이다. 나는 태어나 철들면서부터, 이 땅에 돈 벌러 온 것 아니고 유명한 사람이 될 생각도 전혀 없었다. 굳이 밝힌다면 ‘읽고 익히며 된 사람’으로서 자신을 지키며 사람다운 사람이고자 했다. 그리하여 더욱 문해력(文解力)이 필요하다는 마음의 태도를 고집했다.

 

지난해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초중등 학생들의 진로 현황 조사를 실시한 결과이다. 1 위가 운동선수. 2위가 의사다. 다음은 교사 온라인 창작자(크리에이터) 순이다. 그런데 예전의 3 4위권에 있었던 과학자는 2018년 이후부터 초등학생 장래 희망 10위권 밖에 있다. 우리나라의 정치 법치 그리고 재물을 최고로 보는 사회 가치가 어린 학생들에게 이러한 희망을 선택하도록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슴 답답하고 안타깝다.

 

내 인생, 가을 부채가 된 지 오래다. 사회적 활동 영역에서 밀려나 홀로 외로움을 극복해 내는 의지와 자기애가 필요한 때다. 그래서일까 때때로 우리는 ‘죽음을 업은 삶’인가 싶다. 사랑했던 사람들의 죽음을 둘러업고서 그들의 삶을 수시로 기억하며 저마다의 걸음을 옮기는 일, 그것이 노후의 길 같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우리나라는 누가 뭐래도 금수강산이요. 동방예의지국이었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거기에는 선비정신이 하늘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보면 어디서나 아기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고, 청년들의 희망가도 들을 수 없다. 이것이 금수강산 흙 위에 새겨진 시요 말줄임표인가 싶어 안타깝다.

 

어느 평론가는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는 능력과 리더십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성격과 성정’이라고 했다. 고위공직자나 금배지 대접받는 이들의 언행을 청소년들이 본받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깊이 성찰하는 가을이길 기대한다.

 

가을에는 눈보다 귀를 열어 ‘듣는 귀’의 장점을 살려야 한다. 그리고 금수강산에 한들거리는 들꽃을 보고 곤충들의 우는 소리를 들으며 보이지 않는 작은 존재들의 언어에 귀 기울여 보았으면 싶다. 지나간 모든 것 잊어버리고 대한민국 청년들이 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제발 그들의 건강권과 행복권이 충분히 지켜지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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