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최고의 취재원이다. 말 한마디 손짓 하나가 뉴스다. 지난주는 한미 양국 최고의 뉴스 이벤트가 있었다. 미국은 다음 4년을 이끌 대통령이 선출됐고,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를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대국민 사과와 각종 의혹에 대한 기자회견을 했다. 언론은 수없는 기사를 쏟아냈다. 많은 기사량만큼 문제도 많았다.
미국 대선은 트럼프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함께 치러진 상원의원 선거(100석 중 34석)와 하원의원 선거까지 공화당이 휩쓸어 레드 스윕(red sweep) 달성 가능성이 높아졌다(하원 최종 개표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트럼프는 1892년 클리브랜드 대통령 이후 132년 만에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한 뒤 4년 후 재집권에 성공한 두 번째 대통령이 됐다.
미국 대선을 전하는 한국 언론보도는 4년, 8년 전과 비교해 한치의 개선도 없었다. 선거일 전까지는 초박빙 선거라며 경마식 보도로 일관했다. 한겨레신문은 ‘신뢰도 1위 뉴욕타임스(NYT) 마지막 조사결과 민주당 해리스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우위에 있다’고 선거 이틀 전인 11월 3일 보도했다. 다른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여성 유권자들이 해리스에게 투표할 수도 있다며 ‘샤이 해리스’, ‘히든 해리스’라는 용어를 남용했다.
선거가 끝나자 CNN, ABC, NBC, CBS 4사 공동 출구조사 결과를 인용, ‘경제가 승부를 갈랐다’거나 ‘유권자 58%가 바이든 정권 심판했다’고 했다. 몇일만에 표변, ‘히든 해리스는 없었다’고 해설했다. 미국은 국제뉴스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4년마다 반복되는 미국 대선보도는 여전히 미국언론을 번역해 쓰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선거 결과에 짜맞추기식 승패분석이나 ‘샤이 트럼프는 여전히 강했다’ 같은 면피성 보도도 여전했다.
조선일보는 7일자에 ’박빙이라더니···진보 매체들 여론조사, 세 번 연속(2016,2020,2024) 빗나갔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뉴욕타임스 보도를 하루가 멀다 인용 보도하던 신문이 난데없이 진보언론만 문제인 것처럼 보도하는 건 낯 뜨거웠다.
윤석열 대통령 기자회견은 언론이 어떻게 의제를 프레이밍해 여론을 이끌어가는지를 보여준 장이었다. 대통령이 출연한 생방송을 지켜본 수용자는 신문이나 방송이 뉴스라는 이름으로 편집 가공해 뉴스 꼭지를 만들어 내는지를 봤다. 김 여사 문제를 정점으로 총체적 국정 난맥상이 드러나면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10%대로 곤두박질했다. 대국민 사과와 기자회견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다음 날 아침 조선일보는 윤 대통령의 회견 내용을 대통령의 발언 그대로 인용한 “저와 아내 처신 올바르지 못해 사과드린다”고 보도했다. 따옴표 제목은 취재원의 말을 빌어 보도한 언론사의 의도가 담긴다. 사과에 방점을 둔 보도였다.
’어리둥절 했던 기자회견’이라는 동아일보나 ‘어찌됐든 사과’라는 중앙일보의 비판적인 반응과는 사뭇 달랐다. 보수신문이 조선과 동아·중앙으로 양분되는 양상이다. 보수언론조차 윤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