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선포로 사회 각계각층이 혼란을 겪은 가운데 학교 교육 현장 역시 크고 작은 혼란에 휩싸였다. 특히 그간 정치적 중립의무를 이유로 보장되지 않았던 교사의 정치기본권 보장 여부가 '민주시민 양성'을 목표로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23일 경기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교육공무원의 경우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 정당법 등 현행 법률에 따라 정치 참여가 제한되고 있다.
교사는 정당 가입, 선거운동 등이 금지되며 근무시간 외에도 SNS 등을 통해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이 제한된다.
문제는 이처럼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교사의 특성으로 인해 학교에서 정치와 법률에 관련된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논쟁은 수차례 헌법소원으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헌법재판소는 위헌 소송에서 모두 합헌 결정을 내리며 교사가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킬 것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12·3 계엄 사태 이후 교사의 정치기본권 보장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지난 17일 한 포털사이트의 맘카페에는 "6학년 자녀의 교실에서 영화 '서울의 봄'을 시청하고 '계엄령이 발표됐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비상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등 생각하는 문제를 내줬다"는 글이 올라왔다.
게시자는 "정치적으로 편향되고 초등학생들에게 부적절한 과제"라고 주장했다. 교사가 수업 중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경기지역의 한 중등교사 A씨는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직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밤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예요?'였다"며 "'비상 상황이라 계엄이 선포된 것이냐'는 질문에는 대답을 못 골라 쩔쩔 매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에게 계엄이 정확히 무엇인지, 학생들이 어떤 민주시민으로 성장해야 하는지 지도하고 싶지만 정치적 중립 때문에 너무나도 조심스럽다"며 "민원이 들어올까 계엄 관련 얘기는 답변 자체를 못하겠다"고 토로했다.
실제 경기교사노조가 지난 7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 불성립 이후 발표한 논평에 따르면 현장 교사들은 '왜 지금 이 시기에 비상계엄이 선포됐는지', '국회는 왜 비상계엄령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했는지' 등의 질문을 학생들로부터 받았다고 한다.
민주시민을 양성해야 하는 교사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약받는 것은 정치기본권을 가진 학생에 대한 모순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법에 따르면 만 16세부터는 정당 가입이 가능해지며 18세부터는 투표권이 보장된다. 교사의 정치적 중립의 이유가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교사의 정치적 견해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우려된다는 것이라면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경기교사노동조합은 "중립을 핑계로 학교에서 정치를 가르치지 않으면 민주시민 양성이라는 공교육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며 "학교가 올바른 민주시민을 양성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역대 최연소 위원장으로 선출된 박영환 위원장 역시 언론을 통해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시민권이 없다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부끄러운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용인지역 학부모 B씨(39)는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아이들이 SNS, 유튜브를 통해 잘못된 지식을 얻는 것보다 학교에서 올바른 교육을 받는 것이 안심"이라며 학교가 민주시민 양성으로서의 역할을 하길 바란다는 의견을 전했다.
한편 경제협력개발기구(OECE) 38개국 중 교사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는 나라는 대한민국 1곳으로 알려졌다.
[ 경기신문 = 박민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