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 금융지주 회장들이 해외투자자들에게 한국 금융시장의 안전성과 일관된 밸류업(Value-up·기업가치 제고) 의지를 알리고 있다. 12·3 계엄 사태 등 대내외적인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환율이 치솟아 밸류업 정책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최근 해외 투자자들에게 서한을 보내며 지난해의 주요 성과를 알리고 밸류업 추진 의지를 드러냈다. 올해 그룹의 경영 목표와 전략도 제시했다.
임 회장은 “한국 경제의 견고한 펀더멘털(기초체력)과 높은 정치적 성숙도를 바탕으로 우리금융을 더욱 강하고 견실한 금융그룹으로 발전시키겠다”며 “우리금융을 비롯한 밸류업 공시 기업들의 강력한 이행 의지 등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의 밸류업 정책은 변함없이 일관되게 추진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2025년에는 해외 투자자들을 직접 찾아뵙고 우리금융의 비전과 전략을 설명하며,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는 기회를 확대하겠다”며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의 신뢰도를 높이고 저평가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약속했다.
양종희 KB금융그룹 회장도 이달 초 주요 투자자들에게 친필 서한을 보내며 지난해 10월 발표한 밸류업 계획을 차질없이 이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 회장은 “최근 대한민국을 둘러싼 여러가지 어려운 환경 속에서 금리·환율 등의 변동성 확대로 영업환경과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주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점을 깊이 공감하며 현재의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KB금융은 지난 10월 공시를 통해 주주들께 약속드린 그룹의 지속가능한 밸류업 방안을 흔들림 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지난 17일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베인캐피탈(Bain Capital) 경영진과 만났다. 그는 우리 경제의 굳건한 펀더멘탈과 성장 가능성을 강조하며 "하나금융은 최근 불확실성이 확대된 국내 금융·외환시장의 안정화를 도모하고, 기업이 경제활동을 안정적으로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양사는 전략적 협업의 범위를 확대해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기로 했다.
이처럼 금융그룹 회장들이 해외 투자자들과의 소통을 확대하며 밸류업 추진 의지를 피력하는 것은 환율이 고공행진하면서 금융지주들의 밸류업 정책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는 지난해 밸류업 계획을 공시하며 보통주자본비율(CET1) 13%를 초과한 자본을 활용해 오는 2027년까지 주주환원율을 5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다. CET1 비율은 보통주자본을 위험가중자산(RWA)으로 나눈 값으로, 주주환원의 기준점으로 활용돼 밸류업의 핵심 지표로 지목된다.
환율이 치솟으면 은행이 보유한 외화자산에 대한 위험가중치가 높아지면서 분모인 RWA가 늘어 CET1이 낮아진다. 금융권에서는 환율이 10원 오를 때 마다 금융지주의 CET1 비율이 0.01~0.03%포인트(p) 하락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4대 금융지주의 CET1 비율은 11.96~13.85%다. 다만 지난해 3분기 1300원대를 기록했던 원·달러 환율은 12·3 계엄 사태 등 정국 불안과 트럼프 정부 출범에 따른 강달러 현상으로 1400원대 후반까지 치솟았고, 이에 이들의 CET1 비율 관리 부담은 한층 커졌다.
금융당국도 금융지주를 향해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의 금융시장을 신뢰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 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12월 9일 금융지주 회장들과 만나 "금융지주사는 대외신인도 측면에서도 최전방에 있다고 할 수 있다"며 "외국계 금융사·투자자 등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각 지주사의 안정성은 물론 우리 금융시스템의 회복력에 대해서도 적극 소통해 달라"고 당부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