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제는 미국의 발명품이다. 미국은 영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해 독립을 쟁취했지만 제대로 된 정부 조직조차 없었다. 정부 조직을 갖춰야 했지만, 영국과 같은 왕정국가는 피하고 싶었다. 그렇게 도입된 것이 대통령(president)이다. 미국은 초대 대통령으로 독립전쟁의 영웅 조지 워싱턴이 선출했다. 주변국은 사실상 조지 워싱턴을 대통령이 아닌 왕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조지 워싱턴은 자신을 삼인칭으로 호칭하는 등 왕과 같이 행동하기도 했다. 마음만 먹으면 영구집권도 가능했다. 하지만 그는 재선 후 스스로 임기를 마쳤다. 이후 미국 대통령의 삼선 금지는 불문율이 되었다.
건국 과정 대한민국은 내각제 국가를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 유학파 이승만의 고집으로 대통령제가 선택되었다.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사사건건 국회와 대립했다. 국회 프락치사건이 대표적이다. 이후 대한민국은 4.19 민주혁명 이후 3차 개헌을 통한 제2공화국의 장면내각의 짧은 기간 외 계속하여 대통령제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조지 워싱턴과 같은 건국의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
5.16 군사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는 1962년 4차 개헌을 통해 더욱 강화된 대통령중심제를 도입했다. 1969년 6차 개헌에서는 국회의원의 국무총리 및 국무위원의 겸임을 허용하고 대통령의 임기를 3선까지 연장한다. 대통령을 견제해야 할 국회의원의 대통령의 지휘를 받는 각료가 되는 요상한 제도는 박정희의 3선 개헌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박정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1972년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반면 국회의 권한은 대폭 축소하는 내용의 7차 개헌을 단행한다. 특히 대통령의 임기 제한 규정을 폐지해 영구집권의 길을 만들었다. 유신개헌이다. 영구집권을 꿈꾼 박정희지만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졌다. 하지만 12.12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 신군부는 서울의 봄을 짓밟고 1980년 8차 개헌을 통해 대통령 간선제로 도입하며 또다시 강력한 대통령제를 이어갔다.
박정희와 전두환으로 이어진 군부독재도 1986년 인천 5.3 항쟁에 이은 1987년 6월 항쟁의 민주화 열기를 버티지는 못했다. 결국 전두환은 6.29 항복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해야 했다. 현재 헌법을 만든 9차 개헌이다.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하고 임기를 5년 단임으로 제한 것, 대통령의 비상조치권 및 국회 해산권을 폐지한 것은 상당한 성과였다. 하지만 수 십년에 걸친 여덟 차례의 개헌을 통해 켜켜히 쌓여있던 강화된 대통령제의 본질은 건드리지는 못했다. 그리고 이후 우리는 40년 가까이 헌법을 개정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바뀌었지만 통치구조만은 소위 87체제에 갇혀 있던 것이다.
지난 12.3. 군사 쿠데타는 세상이 바뀐 것을 모른 채 87체제가 개혁하지 못한 제왕적 대통령제의 단맛에 빠진 미련한 왕의 무모한 반란이었을까? 그나마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이 폐지되었기에 윤석열의 12.3. 군사 쿠데타를 막아 세울수는 있었던 것일까? 내란 세력은 어떻게 처단할 수 있을까? 87체제를 극복하는 것이 진정한 쿠데타의 진압이지 않을까? 많은 질문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