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행권 예·적금 상품의 금리 매력도가 떨어지면서 시중 자금이 주식과 금 등으로 옮겨가고 있다. 본격적인 금리 인하기에 접어든 만큼 이러한 '머니무브' 속도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4일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에 공시된 국내 은행들의 12개월 만기 정기예금 기본 금리는 평균 연 2.64%다. 우대금리를 포함한 최고금리 평균치도 연 2.96%에 불과하며 최고금리가 연 3%대인 상품은 18개뿐이다.
은행들은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시장금리 하락분을 반영해 예적금 상품의 금리를 낮추고 있다. 지난달 말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하나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0.05%포인트(p) 떨어졌으며, 카카오뱅크도 지난달 28일부터 정기예금과 정기적금 등 수신상품 6종의 금리를 0.2~0.7%p 내렸다.
은행권보다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저축은행업계의 예금금리도 2%대에 머무르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79개 저축은행의 6개월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평균 연 2.84%로 전월 대비 0.18%p 낮다.
이처럼 예·적금 상품의 금리인하가 이어지면서 자금은 빠르게 이탈하고 있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수시입출금식 저축성예금을 포함한 요구불예금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604조 5994억 원으로 지난해 말(631조 2335억 원)보다 26조 6341억 원 줄었다. 요구불예금은 저축성예금과 달리 입·출금이 자유로워 '투자 대기성 자금'으로 분류된다.
이탈한 자금은 증시나 가상자산 등 투자처로 이동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투자자예탁금 잔액은 지난달 27일 기준 55조 2184억 원으로 한 주 동안 5960억 원 증가했으며, 월평균 잔액도 증가세를 보였다. 가상자산거래소 예치금도 1년 새 2배가량 급증했다.
특히 금이나 달러와 같은 안전자산으로 유입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달러화 예금 잔액은 883억 1000만 달러로 지난해 말(864억 3000만 달러)보다 13억 8000만 달러 늘었다.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하고 있음에도 달러를 팔아 차익을 실현하기보다는 사들이는 경우가 많았다는 뜻이다.
5대 은행의 지난달 1일부터 13일까지의 골드바 판매액은 406억 345만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20억 1823만 원)보다 20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일부 은행에서는 품귀 현상까지 벌어졌다. KB국민·신한·우리은행의 골드뱅킹 잔액도 지난달 13일 사상 최대치인 8969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달 25일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결정으로 기준금리가 2%대에 접어든 만큼,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다만 이 경우 은행들은 저렴한 가격에 자금을 조달하는 게 어려워져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 이에 은행들은 모임통장 등 새로운 저원가성 예금 상품을 개발하며 대응하고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기준금리가 떨어지면 예금 금리는 더 낮아져 자금 이동은 당분간 불가피할 것"이라며 "은행 입장에서는 수익성 악화를 막기 위해 저원가성 예금의 필요성이 커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