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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물’…가지만 앙성한 어느 고사목 이야기

가좌동 건지사거리 흉물
300년 역사, 더이상 보존 어렵워 지난해 제거 결정
봄 맞아 오는 30일까지 새 나무로 식재

 

“300년 마을을 지키고 있던 나무를 다시 보고 싶어요.”

 

8일 오후 인천 서구 가좌동 492-6번지 건지사거리.

 

수많은 자동차들이 오가는 교차로 횡단보도에 얼핏 흉물 같아 보이는 무언가가 초라하게 버티고 있다.

 

오래전 죽어 베어나간 나무 주위에는 서구 마스코트가 새겨진 울타리가 쳐 있다.

 

하지만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라는 현수막만 붙어 있을 뿐 자세한 설명은 없다.

 

생명을 잃은 지 오래돼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이 흉물의 정체는 바로 엄나무다.

 

일반적인 나무가 아니라 300년이라는 오랜 기간 굳건하게 뿌리를 내리며 자리를 지켜온 마을의 역사다.

 

이제는 앙상한 가지만 남았지만 이 나무는 한때 보호수였다. 

 

적어도 100년 이상 된 나무들 중에서 크기가 20m 이상, 굵기가 1m인 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돼 국가 차원에서 관리한다.

 

이 나무는 오랜 역사와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1982년 9월 보호수로 지정됐다.

 

반복되는 사계절을 수도 없이 견디며 조선시대에서부터 그 명맥을 이어온 한 그루의 나무는 10여 년 전인 2012년 9월 숨을 거뒀다.

 

보호수 지정 30년 만의 일이었다.

 

구는 그동안 능수화를 올려 꺼진 생명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능수화는 한번 피고 지는 꽃이 아니라 계속해서 꽃을 피우고 또 피운다.

 

역사적 가치와 상징성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 곧바로 처분하지 않고 고사도 지내며 예우를 다했다.

 

그렇게 12년이 지났다.

 

이제는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구는 지난해 9월 고사목 처분을 두고 회의를 열었다.

 

구 산림정원과 관계자 4명과 지역주민 15명이 모여 어떻게 할지 논의를 펼쳤다.

 

그 결과 고사목을 제거하고 대체 수목을 식재하기로 했다.

 

대체 수목은 300년 간 자리를 지켜온 엄나무와 같은 수종으로 정했다.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주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큰 수종으로 식재하지는 않는다.

 

주변 울타리도 철거하고 새로 설치해 편의를 확보하면서도 자리 역사를 지킨다는 계획이다.

 

구는 날씨가 풀리기를 기다렸다가 오는 30일까지 식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300년 숨결만 간직한 나무는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갈 나무에 그 자리를 내어 주고, 비로소 편히 누울 수 있게 됐다.

 

구 관계자는 “주민들이 그래도 엄나무 상징성이 있는 만큼 자리는 유지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며 “그동안 300년 자리를 지켜준 엄나무에 고맙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인천 = 이현도 수습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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