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은 언제나 나의 계획이나 예상을 한참 벗어나 전혀 엉뚱한 곳에 나를 데려다 놓는다. 내가 네덜란드에서 살게 된 것은 2009년 여름 무렵이었다. 주재원 발령을 받은 남편을 따라나선 것이니 4년 혹은 길어야 5년 후엔 돌아올 것이라 예상하고 한국을 떠났다. 그러나 벌써 나는 16년째 네덜란드에서 클라라로 살고 있다.
내가 네덜란드에 산다고 하면,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내게 그곳은 산양이 뛰어다니는 곳이 아니냐 묻고, 지인들은 뉴질랜드는 요즘 어떠냐고 묻는다. 뉴질랜드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 네덜란드의 탐험가 아벌 타스만이었고 이름 또한 비슷하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나, 실제로 두 나라는 전혀 다른 나라이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네덜란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아마 대부분은 튤립과 풍차, 히딩크 감독 정도를 떠올릴 것이다. 더하여 하멜표류기, 고흐와 안네 프랑크를 생각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네덜란드인들의 생활이나 생각, 그리고 시스템에 대해서는 실제 살아보기 전에는 알 길이 없다. 네덜란드는 늘 행복지수 5위 안에 드는 나라이며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사람들이 네덜란드인들이다.
네덜란드 집으로 이사왔을 때 욕실 거울 앞에 서니 내 얼굴이 윗쪽 절반만 보였다. 싱크대가 높아서 설거지를 하거나 음식을 만들 때면 어깨가 저절로 솟는다. 생전 변비에 걸린 적이 없던 지인이 네덜란드에 와서 변비에 걸렸다고 했다. 호텔의 변기가 너무 높아서 앉았을 때 발이 땅에 닿지 않아 힘을 줄 수가 없었다며 그 까닭을 말 해 주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오히려 네덜란드 집이 익숙해져서 한국에 와서 화장실을 이용할 때면 변기에 푹썩 주저앉게 되어 당황한다.
네덜란드인들이 키가 큰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속설이 있다. 그 중에, 어려서부터 자전거를 타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꽤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네덜란드인들은 자전거를 탈 때 두 발을 땅에 딛고 타는 것이 아니라 페달에 한 발을 올리고 다른 쪽 발로 자전거를 밀면서 타기 때문에 자전거가 자기 허리보다 높고 자전거를 탈 때면 다리를 쭉쭉 뻗어야 한다. 차도와 인도 사이엔 어김없이 자전거 도로가 있으며 네덜란드인들이 자전거를 타는 것은 걷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처음 네덜란드에 왔을 때 우리 아이들은 둘 다 초등학생이었고, 나는 모임에 갔다가도 아이들의 하교 시간에 비가 오면 아이들을 데리러 나섰다. 어느 비오는 날, 학부형 모임에 갔다가 비가 와서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겠다고 나서는 나에게 누가 말했다. “클라라! 너희 아이들은 설탕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어. 그러니 비가 와도 녹지 않을 거야”라고 말이다. 두둥!하고 나의 머리가 울렸다.
그 이후 네덜란드에서 우리 아이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를 했다. 아이들도 나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날씨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가끔 한 손에 꽃을 들고 경쾌하게 자전거를 타는 할아버지들을 목격한다 . 하교 시간 이후엔 아이들을 학원에 데려다주는 학부모들의 차로 북적대는 한국의 차도와 달리, 페달을 밟으며 건강하게 맑은 공기를 호흡하는 네덜란드인들의 자전거 도로는 생각이 생활을 바꾸는 좋은 예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