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주들이 미등록 체류자의 신분을 악용해 고의로 이주노동자의 임금을 체불하는 사례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불법체류’의 약점을 이용해 체불을 일삼고, 강제 출국을 위협해 침묵을 강요하는 부조리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후진국형 고용문화를 반증하는 낯부끄러운 현상이다. 외국인에 대한 처우는 철저하게 상대적인 것이어서 재외 동포들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잠시도 방치해선 안 된다. 인권 의식을 높여야 진정한 선진국이 된다.
지난해 임금체불 피해자 중 미등록체류자 2만 3200여 명이 1108억여 원 규모의 임금체불 피해를 입고도 불안정한 신분을 악용한 사업주와 강제 출국 위협으로 권리 구제가 어려운 딱한 상황에 빠진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임금체불 신고조차 하기 힘든 구조적 문제 속에 방치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임금 보호와 노동의 공정성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임금체불 피해자 총 28만 3212명 중 미등록체류자는 8.2%인 2만 3254명으로 집계됐다. 이주노동자의 피해 임금체불액은 전체의 5.4%인 1108억 4100만 원으로 확인됐다. 미등록체류자의 임금체불액은 2019년 1217억 원을 기록한 이래 매년 1000억 원을 초과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피해를 신고했다가는 출입국법 위반으로 체포되거나 강제 출국당할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 4월 18일 임금체불로 진정서를 제출한 필리핀 국적의 한 외국인 노동자는 조사 후 귀가 도중 체류 기간 만료를 이유로 체포됐고, 현재 강제 출국 절차를 앞두고 있다. 이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 회수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같은 구조적 문제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임금체불 피해 이주노동자 실태 및 구제방안’ 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 이주노동자 중 90%가 임금체불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대부분 불법체류 신분 때문에 신고를 주저하거나, 신고하더라도 강제 출국으로 이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사업주들이 미등록 체류자의 신분을 악용해 고의로 임금을 체불하는 사례는 이어지고 있다. 천안의 한 음식점에서 1년간 근무한 태국인 수지 씨는 월급 800만 원과 퇴직금 220만 원을 체불 당했으며, 사업주는 “신고하면 출국 당한다”고 노골적으로 협박하기도 했다. 같은 미등록 체류자가 더 열악한 조건의 외국인들을 악용한 특이한 사례조차 있다.
이주노동자의 임금체불 문제는 체류 자격과 관계없이 근로기준법에 따라 보호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출입국법이 완강한 장벽이 되고 있다. 치명적인 약점을 노린 악덕업주의 마수에 걸리면 마치 거미줄에 걸린 딱한 벌레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문명국 대한민국에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참혹한 부조리들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미개한 현상은 하루빨리 개선돼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송은정 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은 이를 명백히 ‘인권침해’로 규정하고 “‘불법 체류’라는 용어도 유엔과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에 따라 ‘미등록 체류자’로 대체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한숙 이주와 인권연구소 소장 역시 “제도를 정비해 사업주의 악의적 체불을 막고, 노동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정형 한국이주인권 센터장은 “약자인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우선 보호하는 노동행정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주노동자의 인권 지표는 그 나라의 국제적 위상을 규정하는 중요한 바로미터다. 대한민국이 ‘미등록 체류자’의 개미지옥으로 인식되는 일은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 법과 제도의 정비는 물론, 이주노동자를 고용해 사업을 영위하는 모든 사업자들의 인식을 개선하는 사업 또한 대폭 강화돼야 한다.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국가사회의 세심한 노력이 더욱 절실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