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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일본 남자들이 노팬티 샤부샤부를 가지 않으려면

나미비아의 사막 - 야마나카 요코

 

도대체 나미비아는 어디인가. 일본 영화 ‘나미비아의 사막’ 제목을 들으면 응당 들게 되는 생각이다. 근데 나만 모르는 것일까. 사람들은 나미비아란 곳을 알고 거기에 사막이 있다는 것도 알까. 나미비아는 당연히 아프리카에 있는 국가이다. 보츠니아 왼쪽,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북서쪽에 위치한 국가이다. 영화 제목처럼 사막으로 유명한 곳이며 특히 해안가 사막(백사장이 아니고)이 특이한 나라인데 영화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조지 밀러 감독의 영화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가 촬영된 곳으로 유명하다. 

 

 

그렇다면 일본 영화 ‘나미비아의 사막’도 일종의 근미래 SF 액션 풍의 영화인가.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이 영화는 한 일본 여성이 하루 종일, 영화 내내 ‘어슬렁거리는’ 영화이다. 여주인공 카나(카와이 유미)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20대의 여성이다. (영화 중반이 지나 카나는 스물 한살이라는 것이 알려진다.) 그녀의 일상은 나이만큼이나 부정확하다. 하는 일이 무엇인지, 누구와 사는지, 주로 누구와 놀고 누구와 얘기를 하는지,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뭘 하고 싶어 하는 지가 불분명하다. 카나의 일상은 서서히 드러난다. 영화는 그 점이 궁금하도록 서사를 짰다. 도저히 궁금해서 영화를 끝까지 안 볼 수 없게 만든다. 도대체 나미비아의 사막은 어디 있는 것이며 이 영화의 여주인공 카나 같은 젊은 여자, 흔히들 얘기해서 요즘 젊은 (일본)여자애들, 여성들은 뭘 바라며 인생을 사는 것인가,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있는가를 궁금하게 만든다. ‘나미비아의 사막’을 만든 감독 야마나카 요코도 28살의 여성감독이다. 이 영화는 엄청난 걸작이거나 수작이어서 흥미로운 것이 아니라 기성의 세대로 하여금 새로운 세대의 삶을 엿볼 수 있게 해 주어서 관심을 기울이게 만든다. 지금의 20대들이 어떤 고민 속에서, 나름 얼마나 치열하고 다이내믹하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느끼게 해 준다.

 

영화의 첫 장면은 도쿄의 한 대형 버스 터미널을 롱 쇼트로 비교적 길게 보여 준 뒤 저 멀리서 종종 걸음으로 걸어 오는 여주인공 카나의 모습을 그려 나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철저한 익명 속에서, 아주 작은 일개인으로 살아가는 주인공의 정체성을 보여 준다. 카나는 카페에서 친구인 이치카를 만나는데 둘은 어릴 때 친구인 사노 치아키가 자살했다는 대화를 나눈다. 치아키는 컴퓨터 충전 케이블을 문손잡이에 걸고 스스로 목을 졸라 자살했다. 카나는 무심한 듯 그렇게도 죽을 수 있다더니 (결국 걔는 그걸 해냈네)라는 투로 말을 받는다. 카나의 뒤에는 그녀 또래나 그보다는 나이가 조금 많은 세 명의 남자들 대화가 큰 소리로 섞이고 있다. 한 남자가 말한다. 노팬티 샤부샤부 집이란 게 있어. 또 한 남자가 그게 뭐냐고 묻는다. 남자가 답한다. 샤부샤부 집인데 여자들이 노팬티로 서빙을 해. 근데 바닥이 거울이야, 라는 식의 대화이다. 영화 ‘나미비아의 사막’은 오프닝 시퀀스부터 꽤나 발칙한 분위기를 이어 갈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주인공 카나는 처음엔 혼다(칸 이치로)라는 착실하고 여성스러운 남자를 애인으로 사귄다. 혼다는 술 먹은 그녀를 챙기고 재워주고 아침밥을 해주고, 꼬박꼬박 피임약도 먹여 주는 착한 남자이다. 그는 직장인이다. 부동산 회사에 다닌다. 그러나 카나는 그런 혼다 몰래 다른 남자 하야시(카네코 다이치)를 만난다. 그러다 하야시에게 점점 빠지게 된다. 카나는 친구 이치카와 함께 호스트 바를 가기도 한다. 이치카 없이도 ‘호빠’를 가곤 한다. 그럼에도 카나의 가장 중요한 일상은 무료함이다. 영화는 그녀의 ‘혼자’를 가장 많이 보여 준다. 카나가 혼자 있을 때 그녀가 뭘 하는지, 뭘 하고 싶어 하는지를 그려 낸다. 카나는 어슬렁거린다. 혼다와 사는 집 근처 골목을 어슬렁거리고 그가 출근을 했을 때나, 출장을 갔을 때 그의 집안을 어슬렁거린다. 무료하기 그지없고 무심하고 무상하기 그지없다. 그녀의 삶은 지루한 것이 아니라 지리멸렬한 것인데 자신의 인생이 무엇을 향해 가야 하는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근데 20대들은, 20대의 감독들은, 20대들이 만든 영화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반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꼭 삶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해? 무엇을 향해 나아 가야만 해? 목적이나 목표가 꼭 필요해? 인생을 그냥 부유하면 안 돼? 떠돌면서 살면 안 돼, 라고 묻는다. 목적이나 목표는 당신들 거 아냐? 라고도 묻는다.

 

 

표면적으로 말하면 카나는 대책 없는 젊은이이다. 그녀가 일하는 곳은 제모 시술 에스테틱이다. 그녀는 시술 보조원이다. 그러나 열심히 일을 하지는 않는다. 맡은 시간에만 가벼운 화장기의 얼굴로 예의 바르게 손님들을 대할 뿐이다. 거기에 비하면 그녀의 다른 일상은 비교적 격렬하다. 혼다와의 동거를 끝내고 하야시와 살면서 둘은 말 그대로 무지하게 싸워 댄다. 젊은이들은 그것을 사랑 싸움이라고 생각하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다들 자신이 자신을 이기지 못해 그러는 것일 뿐 사실 뚜렷한 이유는 없다. 정밀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카나는 혼다와의 사이에서 임신을 한 적이 있고 혼자서 중절 수술을 받아 마음의 상처가 있었던 듯이 보이며 현재 동거 중인 남자 하야시가 과거의 여자 카나코(주인공 카나와 이름이 같다.)와의 사이에서 임신과 중절을 겪은 사실을 알게 되고 광분을 한다. 카나는 하야시에게 툭하면 시비를 건다. 뻑하면 그에게 손찌검을 하려고 한다. 그 와중에 전 남자 혼다는 카나에게 와서 울고 불며 한바탕 난리를 친다. 카나는 모든 것, 모든 일상에 다 질려한다. 카나는 에스테틱 일도 그만둔다. 

 

카나가 이유없이 화를 내는(것처럼 보이는) 것은 혼다가 됐든 하야시가 됐든 자신의 트라우마의 원인이 뭔지는 모른 채, 안다고 착각을 한 채, 상처를 줘서 미안해, 라고 얘기하기 때문이다. 미국 생활을 조금 하다 돌아온 하야시의 부모는 일본인들이 미안하다는 말을 습관처럼 하고 산다며 비웃는다. 카나가 느끼는 점도 바로 그런 것이다. 그건 마치 사람들이 끊임없이 제모를 하러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미안하다는 말로 자기의 행동을 ‘제모하지만’ 결코 마음속은 그렇게 ‘제모가 되지’ 않는다.

 

 

카나는 결국 인격성 장애이자 양극성 장애자이다. 이런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은 결국 조울증으로 발전한다. 경계성 장애란 옳고 그름의 판단의 경계에서 자신의 결정을 계속 유보하고 억누르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정신 장애이다. 예컨대 자신을 범하려 했던 아버지가 있고(카나의 아버지는 중국인이다. 카나에게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런 그를 최악의 남자라고 생각하며 많은 남자들 또한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지만 일상 속에서는 그런 남자(들)의 또 다른 면을 인간으로서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분노를 억제하게 되면 그 사람의 일상은 돌발적이고 돌출적이 되기 십상이다. 이런 사람의 행동을 두고 보통 그 앞에 ‘미친’이란 형용사를 쓴다. 카나의 행동이 점점 미친x 처럼 보이는 이유이다.

 

‘나미비아의 사막’은 결국 카나라는 이름의 한 개인의 삶을 통해 인격성 장애를 앓고 있는 일본 사회의 모습을 직시하는 작품이다. 이중인격이 고착화 되어 있는 사회가 각 인격체에게 강제하는 것, 그래서 그 고통이 무엇인지,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도 상실한 사회의 모습을 보여 주려 한다. 그러니 다들 이제는 나미비아를 찾아가야 한다. 나미비아의 사막 모래를 만져 봐야 한다. 영화의 제목이 암시하는 나미비아는 궁극적으로는 미지의 자신이다. 자신이 몰랐던 자신을 알아내는 것, 그것이 개인의 방황을 그치게 하고 사회가 지닌 정신병적 증후군(노팬티 샤부샤부 같은 일탈적인 성 취향)을 극복하는 길이다. 그런 생각이나 판단까지도 필요 없는 얘기이다. ‘나미비아의 사막’은 그런 생각까지 꼭 해야 해?,라고 묻는 20대 감독의 도발적 시선이 담겨져 있다. 그냥 겪어내고 어슬렁거리며 그 고통의 시간들을 경과시키면 된다고 얘기한다. 그런 식으로 20대들의 생각, 행동의 일단을 훔쳐볼 수 있게 해 준다. 이 영화에 대한 동의나 공감조차 그건 각자의 몫이다. 그 충돌의 정서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일본 영화는 요즘 꽤나 젊어지고 있다.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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