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선거 벽보 훼손 범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공직선거법에 따른 처벌 수위는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벽보 훼손이 단순한 장난이 아닌 정치적 증오의 표출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처벌 강화를 통한 예방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선거 벽보는 유권자에게 후보자 정보를 전달하는 공적인 수단이지만, 선거철마다 훼손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던 해마다 선거 벽보 훼손으로 검거된 인원은 꾸준히 늘고 있다.
2012년 제18대 대선에서 141명이던 관련 사범은 2017년 645명, 2022년에는 850명으로 증가했으며, 지난 3일 치러진 제21대 대선에서는 무려 1619명이 검거됐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240조는 선거 벽보 및 선전시설 훼손에 대해 2년 이하 징역 또는 400만 원 이하 벌금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공직선거법상 다른 주요 선거 범죄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가령, 특정 후보자에게 이익을 제공하는 ‘매수 및 이해유도죄’(제230조)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 선거인을 폭행하거나 감금하는 ‘선거의 자유 방해죄’(제237조)는 10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된다.
또한, '공무원의 직권 남용으로 인한 선거 자유 방해'(제239조)는 7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
더욱이 선거 벽보를 훼손해 재판에 넘겨진 사례 중 실형이 선고된 경우는 사실상 전무하다. 제20대 대선 당시 벽보 훼손으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 중 처벌받은 이는 9명에 불과하며, 이들 모두 벌금형에 그쳤다. 그중 최고 금액은 330만 원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벽보 훼손 행위를 단순한 장난이나 기물 파손이 아닌 정치적 증오심에 기반한 폭력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사회적 갈등이 극대화된 계엄 논란, 탄핵 정국과 맞물려 이번 대선에서는 혐오 감정이 더욱 격화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A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의 얼굴이 부착된 벽보를 도구를 이용해 훼손하는 행위는 단순한 장난이 아닌 상징적 폭력 행위"라며 "정치인 지지자 간의 극단적 혐오 감정은 결국 현실 폭력으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선거 벽보 훼손 범죄의 양상이 단순한 선거법 위반을 넘어 증오 범죄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법적 처벌 수준을 현실에 맞게 재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선거 관련 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과 제도적 보완이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 경기신문 = 박진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