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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경의 사소한 발견] 숟가락이 하는 일

 

미니멀리즘의 유행으로 인테리어디자인과 상품디자인이 모던하고 심플한 것이 대세가 되었다. 사실 용도가 명확하고 단순한 것은 디자인도 모던하고 직관적이며 파워풀하다. 그런 컨셉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숟가락이다. 적어도 하루에 3번 우리는 숟가락과 마주친다. 너무나 자주 만나고 밥 먹는 도구라는 명확성 때문에 숟가락이 주는 심오한 메타포를 우리는 쉽게 간과한다. 그러나 그 생김새와 하는 일을 유심히 생각해보면 큰 감동이 밀려온다.

 

먼저 숟가락의 생김새를 보자. 치장 없이 빼빼한 몸매에 화장기 없는 커다란 얼굴 하나, 더 설명할 것이 없다. 게중에 밥먹는 일과 무관한 금수저, 은수저로 불리는 고가의 수저가 있기는 하다. 그렇다 해도 이 생김새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숟가락을 보며 문득 어머니를 떠올렸다.

 

숟가락의 용도는 밥을 먹기 위한 도구이다. 참 명확하다. 밥 먹기를 싫어하는 아이에게 엄마가 밥 한술 뜬 숟가락을 입으로 밀어넣는 모습, 우리들의 어릴 적 모습이 아닐까? 어머니의 단 하나의 소망은 아이의 배를 채우는 것이다. 밥을 벌어서 아이의 입으로 옮기는 일 외에는 다른 길을 걸어가 본 적이 없다. 아, 노래를 부르며 박자에 맞춰 상을 두들기거나 병 뚜껑을 따는 이차적인(?) 용도는 생각하지 말기로 하자.

 

그리고 숟가락의 지혜는 바로 한 숟가락이라는 양에 있다. 우리 앞에 아무리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더라고 숟가락은 딱 한 숟가락만큼만 퍼서 입으로 가져가는 것이 상식이다. 조금씩 부지런히 우리를 위하여 끊임없이 애쓰는 어머니 삶의 철칙처럼 한 숟가락, 한 숟가락씩만 배부를 때까지 가져간다. 어머니도 좀 드셔요! 자식의 빈말에 나는 많이 먹었어, 어여 먹어! 하는 어머니, 우리를 먹이느라 온몸이 더러워지는 숟가락처럼 우리의 어머니는 그렇게 늙어가셨다.

 

숟가락을 놓는다는 관용적인 표현이 ‘삶을 놓는다, 죽는다’의 완곡한 표현일 만큼 숟가락은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표현을 좀더 깊이 생각해보면 밥 먹는 이의 종말과 함께 더 이상 그 용도를 사용하지 않는 숟가락의 종말을 말한다는 것은 얼마나 의미심장한 것인가? 어린 우리를 잘 먹여 키우고 늙어가신 부모님이 더 이상은 숟가락 역할을 하지 못하는 즈음에 숟가락으로 밥 한 술 떠서 입으로 밀어넣고는 울컥 목이 메어온다.

 

이제 새로운 대통령이 국민에 의해 당선되었다. 나라의 수많은 조직들의 수장들이 차례로 정해지고 교체될 것이다. 이럴 때마다 우리는 일말의 희망을 가져본다. 이제 우리나라의 정치도 제대로 되겠지, 경제가 나아지겠지, 먹고 사는 일에 문제가 없어지겠지…라는. 따지고 보면 그들은 모두 국민의 입에 영양 많고 맛있는 밥을 떠먹이는 숟가락들이다. 그 일을 잘하기 위하여 그들이 존재하며, 그 역할을 잘 할 때 국민들은 평안하다. 그때 우리는 정치인(나라님)을 부모처럼 여기게 된다.

 

정치인들이 자신들을 숟가락으로 생각하고 국민에게 좋은 것을 먹이기 위하여 전략을 세우고, 전술을 쓴다면 그건 정말 파워풀하고 멋진 숟가락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단 하나의 주요 용도를 버리고 자기 몸을 치장하기만 하고, 스스로 먹으려고 한다면 어머니와 같이 숭고한 숟가락의 본질은 사라지고 그 숟가락을 놓아야 하는 결말에 이를 것이다. 부디 이번 정부는 국민들에게 좋은 것을 떠 먹이는 숟가락의 역할을 멋지게 해내길 간절히 기대한다. 숟가락에서 찾은 사소한 발견처럼 우리에게도 사소한 행복이 넘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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