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간 상호 관세 부과 시한(8월 1일)이 나흘 앞으로 다가오면서 막판 협상이 분수령을 맞고 있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 농축산물 시장 추가 개방과 대미 대규모 투자, 조선업 협력 등 세 가지 사안을 핵심 의제로 제시한 상태다. 정부는 이들 요구가 국내 정치·경제적 파장과 직결되는 만큼, 실익 중심의 절충안을 모색하며 대응 수위를 조율 중이다.
가장 민감한 쟁점은 농축산물 시장 개방이다. 미국은 현재 30개월령 이하로 제한된 자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의 철폐와 함께, 쌀 수입 물량 확대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현재 저율관세할당(TRQ) 제도를 통해 미국을 포함한 5개국에 쌀 수입 물량을 배정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미 전체 40만 8700톤 중 13만 2304톤을 배정받고 있다. 미국에 추가 할당을 할 경우 전체 수입량 증가로 이어질 수 있어, 농가와 소비자 단체의 반발도 예상된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5일 “협상 품목 안에 농산물도 포함돼 있다”고 밝혀, 정부가 당초 ‘비협상 품목’으로 분류했던 농산물 문제를 테이블에 올린 사실을 사실상 인정했다. 이는 국내 정치적 부담이 적지 않은 사안으로, 여론의 향방에 따라 협상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 쟁점인 대미 투자 확대 요구 역시 쉽지 않은 과제다. 정부는 현재 1000억~2000억 달러 수준의 투자 계획을 검토 중이지만, 미국은 일본이 지난달 체결한 5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합의를 언급하며 한국에도 ‘유사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일본은 관세를 돈 주고 낮췄다”며 한국 등 다른 동맹국들에도 동일한 조건을 적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의 사례는 비공식 문서 수준이라 세부 조건을 분석 중”이라며 “단순 금액 비교보다는 실효성과 파급 효과가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국내 재계와의 조율, 재정 부담에 대한 검토도 병행되고 있어 협상 시한 내 결론을 내기 어려울 가능성도 제기된다.
상대적으로 국내 부담이 적은 조선업 협력은 이번 협상의 ‘완충 카드’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은 자국 조선업 부활을 위해 한국의 기술과 생산역량을 활용하는 방안을 요청하고 있으며, 한국 정부도 긍정적 검토에 나선 상태다. 위성락 대통령실 안보실장은 “나토 정상회의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미국의 강한 관심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미국 내 인프라 재건과 군수 조달 수요에 한국 조선업이 기여하는 방식으로 협력을 구체화할 방안을 모색 중이다. 조선업은 세계 시장에서 한국이 비교우위를 지닌 산업으로, 미국에 일정한 상징적 ‘성과’를 제공하면서도 국내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 절충안의 일환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실은 지난 25일과 26일 연이틀 통상 현안 관련 긴급회의를 열고 대응 전략을 점검했다. 회의에는 김용범 정책실장과 위성락 안보실장을 중심으로, 구윤철 경제부총리와 조현 외교장관이 참석했으며, 이번 주엔 구 부총리가 미국을 방문해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과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27일 공식 일정을 취소하고 청와대에 머무르며 협상 진행 상황을 직접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균형 잡힌 실용외교”를 원칙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일본의 선제적 합의가 사실상 ‘기준점’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한국이 실리를 지키며 절충안을 도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 통상 전문가는 “미국의 요구를 전면 수용하기엔 국내 정치적 부담이 크고, 무작정 거절하기엔 통상 보복 우려가 있다”며 “각 쟁점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다층적 협상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경기신문 = 오다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