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대다수의 부모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젊을 때는 살 집을 아이들이 다닐 학교의 학군이 좋거나 혹은 학원이 밀집해있는 곳을 우선으로 고려해 선택했었다. 그래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전세살이를 하며 지내왔다. 이러한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인지는 몰라도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내가 원하는 집에서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이제는 평소 꿈꾸던 형태의 집을 장만하거나 혹은 스스로 집을 지어보려는 마음이 꿀떡 같고, 특히 전원주택 생활에 대한 커다란 환상과 동경에 빠져들게 된다.
전원주택의 위치는 물론 도심을 벗어난 한적한 곳이 좋을 것 같다. 강이 내려다보이거나 숲속 풍경을 볼 수 있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리고 강이나 숲 쪽으로 창을 내고 싶다. 창문을 통유리로 한다면 한눈에 풍광이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천장도 언제든지 열어젖힐 수 있도록 개폐식으로 하거나, 여의치 않으면 투명한 통유리로 만들고 싶다. 그러면 별을 보며 잠자리에 들 수 있을 것 같다. 또 날씨가 따뜻해지면 맑은 공기를 방안에 가득 채울 수 있게 천장을 활짝 열어젖힐 것이다.
집 구조는 2층으로 하고 방은 서너 개 정도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층에는 출가한 아이들이 가끔 찾아오거나, 멀리서 찾아올 손님을 위한 방을 예비로 마련해 둔다. 그리고 2층은 안방과 서재로 사용한다. 때로는 서재 겸 음악실인 그 방안에서 여러 날을 지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면 턴테이블 볼륨을 최대로 높여두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이리저리 뒹굴며 여유를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폐인처럼...
봄이 오면 집 앞쪽으로 위치한 정원은 심어둔 화초와 유실수에서 연초록의 물이 오르며 화사한 동산으로 단장될 것이다. 뜰 안 가득한 싱그러운 라일락 향기는 봄의 서정을 더해 줄 것이다. 여름이면 반딧불이가 앞마당에 모여들어 한여름의 밤을 꿈처럼 아름답게 밝혀줄 것이다. 이때 곁들어진 한잔의 썸머와인(summer wine)은 한껏 더 느긋하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해 줄 것이다.
가을이면 수북이 쌓인 낙엽을 뒷마당에서 태우며 낙엽 타는 냄새를 즐길 것이다. 빨갛게 익어가는 홍시는 호젓한 가을의 서정과 풍광을 더욱 깊게 만들어 주게 된다. 겨울이면 벽난로를 피울 것이다. 장작개비가 탁탁 소리를 내며 시뻘겋게 타오르는 벽난로 곁에 앉아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으며, 진한 커피의 향과 싸한 그 맛도 즐기고 싶다.
친구 중 하나가 용인 끝자락에 전원주택을 마련하여 20년째 살고 있다. 그 역시 전원주택 생활에 대한 낭만과 로망을 지니고 1년 이상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재원을 투자하여 2층 양옥집을 지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주택을 설계하여 공사도 진두지휘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자신의 꿈을 투영시켜 만든 집에서 전원생활의 낭만을 제대로 누리고 있다. 그는 자랑도 할 겸 가끔 자신의 집으로 친구들을 초청하는데, 사실 나는 그때마다 부러운 생각이 꿈틀거렸다. 이는 전원주택 생활에 대한 로망이 여전히 나의 뇌리에 깊이 남아있다는 증표인 것 같다.
그런데 전원주택의 삶에 대한 꿈이 현실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전제조건이 붙어있다. 다름 아니라 아내의 동의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새로 지을 집은 혼자 살집이 아니라, 아내와 함께 살 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여자들의 경우 잔손이 많이 들어가서 귀찮고 불편한 전원주택 생활보다는, 편리하고 관리비 부담도 적은 아파트 생활을 더 선호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나는 전원주택 마련의 꿈을 가진지 꽤 오랜 세월이 되었건만, 아직도 여전히 집사람을 설득하며 아파트에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