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면 가득 낯선 땅이 채워집니다.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땅입니다. 버려진 계곡과 능선과 봉우리가 그 땅 위로 누웠습니다. 저런 것도 산이랄 수 있을까요. 숲은커녕 변변한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습니다. 하늘을 덮은 먹구름 그늘 밑에서, 누렇게 드러누운 산이 기지개를 켭니다. 흙먼지를 거죽 삼아 모로 누운 산의 모양새는 살쾡이를 닮았습니다. 산의 거죽을 뚫고 삐져나온 바위가 서로 부대끼며 기둥처럼 섰습니다. 샘물은, 돌의 기둥과 기둥이 부딪치고 갈라선 틈에서 솟구칩니다. 쏟아지지 못하고 찔끔거리는 꼴이, 꼭 살쾡이가 지리는 오줌발 같습니다. 그래도 샘물이랍시고, 자갈 틈을 비집고 흘러 실개천을 이룹니다. 산길은, 실개천을 따라 흐릅니다. 오름이든 내림이든, 나란히 흘러간다는 점에서 산길과 실개천은 서로 닮았습니다.
사내가 산을 오릅니다. 덥수룩한 수염으로 나이를 가린 사내입니다. 삽을 쥐고 배낭을 등에 업은 사내가 실개천 따라 산을 오릅니다. 등에 업은 배낭 주둥아리로 밀려 나온 곡괭이 자루가 보입니다. 산을 오르던 사내가 살쾡이 같은 능선을 가리키며 읊조립니다. 사내가 읊조리는 말을 나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런 말을 아랍어(Arabic)라고 하던가요. 사내의 말이, 그러니까 내게는 모르는 말이, 실개천을 따라 둥둥 떠내려갑니다. 말을 떠나보낸 사내는 실개천을 거스르며 산을 오릅니다. 사내의 발길이 멈춘 곳은 산의 허리와 등이 교차하는 어디쯤입니다. 멈춘 발길 저편으로 1인용 작은 텐트가 보입니다. 산에서 눈비를 만났을 때, 피할 용도로 쓰는 텐트입니다. 사내의 발기척에 텐트 안에서 지퍼가 열립니다.
여인이 고개를 내밉니다. 히잡으로 얼굴을 가린 여인입니다. 가렸어도 경계심까지 가려지지는 않습니다. 사내와 여인이 무어라 말을 주고받습니다. 여전히 내게는 모를 말입니다. 화면 밑으로 흐르는 자막 또한 까막눈입니다. 텐트의 지퍼가 완전히 열리고 세 명의 아이가 걸어 나옵니다. 열 살, 일곱 살, 세 살쯤 되었을까요. 여인의 치마 뒤로 얼굴을 감추지만, 영락없는 여인의 아들과 딸입니다. 사내를 따라 여인과 아이들이 산길을 오릅니다. 살림이라고 해야 이불 보따리 하나에 냄비 두어 개가 전부입니다. 사내가 여인의 가족을 인솔한 곳은 높은 바위 밑입니다. 비와 바람을 피하기 좋아설까요. 사내는 넓은 바위를 지붕 삼아 그 밑에 돌로 집을 짓습니다. 삽으로 땅을 파고 괭이와 망치로 돌과 나무를 다듬습니다.
집이라기엔 어설픕니다. 커다란 바위 밑에 돌로 벽을 두른 피난처랄까요. 여인과 아이들이 사내의 일손을 거듭니다. 돌과 나무를 주워 나르고, 삽으로 퍼낸 흙에 물을 붓습니다. 사내는 흙 반죽에 지푸라기를 섞어 돌벽 위에 바릅니다. 틈을 메꿔 습기와 바람을 막고, 불을 지필 아궁이도 뚝딱 만듭니다. 얼기설기 엮은 방문을 문틀에 달자 여인이 양탄자를 흙바닥에 깝니다. 장판을 대신하는 용도입니다. 세 아이가 양탄자 위에서 다리를 뻗습니다. 그러자, 사내가 카메라를 향해 말합니다. 여전히 모를 말입니다. 하지만 이번엔 아랍어 자막 밑에 영어 자막도 함께 보입니다. “집이 없어서 산을 떠도는 이 가족에게 음식과 옷을 부탁합니다.” 사내는 오늘도, 집을 잃고 떠도는 가족의 피신처를 지어주고 있습니다.
예수는 도시에 있지 않고 버려진 땅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