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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연극 '재판' 김현호 연출가, “정의는 살아 있는가 묻고 싶었다”

김현호 레퍼토리 네 번째 창작극, 국내 최초 전막 법정극 시도
학교폭력으로 딸 잃은 아버지, 살인 혐의로 법정에 서는 이야기
판사·검사·변호사 시선 교차, 증거와 진술의 모순 드러내

 

“학교폭력에 대비한 제도가 있다고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체감되지 않습니다” 

 

지난 2일 서울 은평구 증산역 인근 카페에서 경기신문과 만난 김현호 연출가는 “피해자 가족이 무너지고, 때로는 피해자 부모가 가해자로 둔갑하기도 한다”며 연극 재판을 통해 학교폭력과 법정의 모순을 무대에 올린 이유를 밝혔다.

 

연극 '재판'은 학교폭력으로 딸을 잃은 아버지가 가해 학생의 죽음에 연루되면서 살인 혐의로 기소됨으로써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는 기막힌 상황을 그리고 있다. 

 

불완전한 증거와 상충하는 증언 가운데 판사, 검사, 변호사가 치열하게 맞선다. 법정 밖에서는 피해자 가족과 가해자 부모의 갈등이 교차하며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풍랑속으로 빠져든다.

 

진실은 사라지고 갈등만 증폭되는 현실이 지리멸렬하게 펼쳐지면서 피고인은 이렇게 절규한다.

 

 “대한민국의 정의는 죽었다”

 

이에 대해 김 연출은 “진실을 마주하고 싶어도 제대로 마주할 수 없는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사이다보다는 열린 결말로 끝내게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무대는 무죄 판결에도 남는 의심으로 이어지고, 가면을 쓴 범인의 웃음과 함께 암전되며 진실은 끝내 드러나지 않는다.

 

김 연출가는 이 재판극을 만들게 된 배경이 자신의 경험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몇 해 전 교사임에도 일진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위협을 당했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오히려 질책을 받았다“며 “그날 이후 학교폭력 영상을 찾아보며 현실의 민낯을 마주했고, 같은 날 극단적인 선택을 반복한 학생에 관한 기사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 폭력이 일어나면 피해자 가족 전체가 다 무너진다”라고 말하며 피해자 개인을 넘어 가족의 붕괴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는 피해자의 부모가 사건을 둘러싼 법적 공방 속에서 또 다른 상처를 입는 현실을 언급하며 이러한 문제의식은 주인공을 피해자 가족으로 설정하게 만든 직접적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번 작품은 국내에서도 드물게 전막을 재판으로 구성한 법정극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 연출은 “완전 처음부터 끝까지 재판극은 국내 처음인걸로 안다”며 말하며 형식적 실험의 의의를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일관된 진술 하나만으로도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는 말을 극을 준비하면서 들었다”며 “더 나아가 어떤 사건은 경찰 조사 단계부터 유죄 추정이라고 하더라”고 말하며 제도의 모순을 짚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작품 속에도 반영돼 피해자 가족의 분노가 가해 행위로 역전되는 모순이나 증거 부재 속에서 유죄가 추정되는 구조로 형상화됐다.

 

한편 무대 뒤에는 ‘김현호레퍼토리’라는 연극 '브랜드'가 있다. 그는 2022년부터 매년 한 편씩 창작극을 올리고, 대본을 공개해 대학·동호회·청소년 단체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그의 전작 경매, 경찰 등은 교육 현장에서 공연되며 창작극 확산에 기여했다.

 

김 연출은 공연 예술에도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김현호레퍼토리를 특색과 개성이 분명한 대한민국의 대표 브랜드로 만들 것“이라고 다짐했다.

 

연극 재판은 단순한 한 편의 무대를 넘어 법과 제도의 허점을 드러내고 한국 창작극의 가능성을 실험한 작품이다. 공연은 짧게 끝났지만 김현호 연출가가 던진 질문은 여전히 무겁게 남아 있다.

 

[ 경기신문 = 류초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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