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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실려 가는 까치둥지를 보며

 

도서관 참고정간 실에서 책을 읽다 문 닫는 시간에 쫓겨 나왔다. 도서관 옆의 산길을 걷다 도로변 넓은 공터에 이르렀다. 그때다. 내 앞을 턱 가로막고 있는 화물차를 만난 것은. 처음 보는 트럭이었다. 차 뒤에는 적재량이 8900kg 이라고 적혀 있는데 화물차의 길이는 보통 차와는 다른 특장차(特長車) 같았다. 차는 화물을 싣는 공간이 매우 길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몇 십 미터가 되는 소나무는 뿌리를 껴안고 있던 흙을 새끼줄로 동여맨 채 운전수 좌석 위 지붕에 묶여 있었다. 반대 방향의 적재함으로는 긴 소나무가 실려 있었다. 소나무는 몇 백 년을 살아내고서, 지금은 뿌리는 북쪽을 향해 매어 있고 온몸과 함께 머리끝 우듬지는 나무 가지들과 같이 남쪽 적재함 밖으로 넘쳐나 묶여 있었다.

 

나뭇가지들은 그 순간에도 푸르고 싱싱하게 제 모습을 지켜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가지 사이로 ‘까치둥지’가 매달려 있다, 아! ‘까치둥지’가 있는 나무를? 마음속으로는 ‘벌 받겠구나’ 싶었다. 까치집이 있는 소나무 가지 앞에 서서 생각해 보았다. 이 나무의 까치들은 어디에서 밤을 새워야 할까… 안타까운 마음으로 돌아서서 걸으며 자연 훼손이 별것인가 이런 것이 자연의 재난이지- 하면서 어느 시인의 시가 생각났다.

 

낡은 재건축 아파트 철거작업이 끝나자/ 마지막으로 나무들이 철거되기 시작한다/ 아직 봄은 오지 않았는데/ 뿌리를 꼭 껴안고 있던 흙은 새끼줄로 동여매고/ 하늘을 우러러 보던 나뭇가지를 땅바닥에 질질 끌고/ 이삿짐 트럭에 실려 가는 힘없는 나무 뒤를/ 까치들이 따라 간다/ 울지도 않고/ 아슬아슬 아직 까치집이 그대로 남아 있는 나무 뒤를/ 울지도 않고.

 

세상살이 모든 것이 경쟁이요. 행복의 종류가 경제라는 것 하나뿐인 사회에서 소나무의 둥지를 잃어버린 까치 같은 사람도 있을 터인데 싶었다.

 

내가 이 땅에 와 철이 좀 든 뒤, 젊은 얼굴에 넥타이를 매고 고른 치아를 내보이며 총기 있는 눈동자를 고정시킨 뒤 미소 지으며 촬영한 사진이 있다. 1986년 9월 10일의 첫 수필집 사진이 그렇다. 책의 앞 뒤 표지는 그림 없이 전면을 군청색으로 했다. 책 이름만 '둥지 안의 까치 마음'이라고 금색으로 굵직하게 새겼다. 책 뒤표지 글이다.

 

“까치를 대할 때마다/ 둥지 안의 까치 마음을 헤아려 볼 때마다의 느낌은/ 내 가정과 둘레가 까치의 둥지 같을 수는 없을까/ 나의 말과 글이/ 까치소리와 같이 주위의 밝음일 수는 없을까!/ 아니 모든 이들의 생활이 둥지 안 까치의 삶일 수는 없을까…”

 

고향의 태생 집에는 뒤란으로 오동나무와 배나무와 감나무가 있었다. 까치는 감나무에 둥지를 틀어 살았다. 아침 일찍 까치가 소리를 하면 어머니는 ‘오늘 좋은 소식이나 귀한 손님이 오실 것 같다.’고 하셨다. 그리하여 나는 까치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전령사나 하나님의 소명(召命)을 전해주는 길조(吉鳥)라는 생각을 하면서 반기고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보곤 했다.

 

내가 좀 커서 읍내의 중학교에 다닐 때의 일이다. 고인이 된 희극배우 김희갑 씨나, 이름난 가수 김용만 씨에게 편지를 써 보낸 뒤에도 까치가 배나무 위에서 지저귀던 날 우체국 아저씨에게 답장을 전해 받았다. 그리고 우리 고향 사람들은 산과 밭의 감나무에서 감을 수확할 때도 ‘까치밥’이라고 해서 잘 익은 홍시 감 한두 개를 꼭 남겨 두었다.

 

까치는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 집을 짓는다고 한다. 강한 바람에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집을 짓기 위해서다. 태풍이 불어와도 나뭇가지가 꺾였으면 꺾였지 새들의 집이 부서지지 않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문학관으로 강의하러 다니면서 은행나무 가지 위의 까치 부부가 여린 부리로 단단한 나무 가지들을 물어다 둥지를 짓는 건축 공사를 눈여겨보았다. 그런데 까치는 집을 지을 때 지붕을 만들지 않았다. 나뭇가지 윗부분에 집을 짓고서도 지붕을 만들지 않는 까닭은 밤하늘과 별을 바라보기 위한 것이요.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안고 있다 이른 아침 전달하기 위해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주도에서는 까치가 별로 서식하지 않는다 하여 1989년에는 육지의 까치를 잡아다 제주도에서 풀어줘 서식하게 했다. 그랬는데 지금 그 많았던 길조는 다 어디로 갔는지! 길조의 희소식을 전하는 음성이 서서히 사라져 가는 것 같다. 기후 위기네, 지구 온난화네 하는 세상이 되어 여름밤에는 잠 못 이루는 게 일상이 되었다. 글머리에서 말했듯 실려 가는 소나무 둥지의 까치 부부는 둥지를 잃고 그 어느 곳에서 우리에게 “지구를 생각해” “지구를 생각해”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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