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건축 규제가 촘촘해진 사이, 대형 건설사들이 의외의 새로운 먹거리로 ‘준공 20년 차 아파트’에 주목하고 있다. 겉보기에 멀쩡하지만 최신 단지와 비교하면 커뮤니티·편의시설·인테리어가 낡은 아파트들을 대상으로,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잇따라 ‘리뉴얼 신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1263만 가구 중 약 47%가 준공 20년을 넘겼다. 이 가운데 380만 가구는 20~30년 차로, 법적 재건축 연한인 30년에 미치지 못해 제도권 정비사업 추진이 불가능하다. 건설사들이 이 시장을 ‘틈새’가 아닌 ‘기회의 장’으로 보고 있는 이유다.
재건축은 안전진단·조합 설립·분담금 문제 등으로 추진 자체가 쉽지 않고 인허가 과정만 5년 이상 소요된다. 리모델링 역시 구조적 제약이 많다. 반면 리뉴얼은 기존 골조를 유지한 채 외관·커뮤니티·세대 인테리어를 개선하는 방식으로 공사 기간이 2년 이내, 이주도 필요 없다.
삼성물산은 ‘넥스트 리모델링’을 앞세워 하이엔드급 주거 상품을 내놓는다는 전략이다. 스마트홈, 친환경 자재, 자동주차 등 첨단 기술을 결합해 준신축급 아파트로 재탄생시키는 개념이다.
지난달에는 서울·부산·대구·광주 등 12개 단지와 파트너십을 맺고, 한국건설기술연구원·LX하우시스 등과 협업 체계를 구축했다. 또 스타트업과 연계해 스마트홈·에너지 절감 기술을 확대 적용할 방침이다.
현대건설도 ‘주거환경 개선 신사업’을 내놨다. 지난 6월 삼성동 힐스테이트 2단지와 협약을 맺고, 준공 18년 차 단지를 신축급으로 탈바꿈시키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이 단지는 주차장 누수, 노후 설비, 부족한 커뮤니티 시설 등이 문제로 지적돼왔다. 현대건설은 외벽·조경·주차장·스마트 보안 시스템을 개선하고, 세대 내부에는 층간소음 저감 설비, 하이오티(HIoT) 기반 시스템, 에너지 절감 설비 등을 도입할 예정이다.
사업 절차도 간소하다. 기존 정비사업은 도시정비법·주택법 적용을 받지만, 리뉴얼은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라 추진 가능하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사업을 시행하고 현대건설이 설계부터 시공·사후관리까지 맡는다.
정비업계는 이번 흐름이 단순한 보수를 넘어 새로운 주거 상품군을 만들어낼 것으로 보고 있다. 브랜드 건설사가 외관·커뮤니티·스마트 기술을 업그레이드하면 자산 가치 상승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반포·압구정 등 주요 재건축 단지가 지연되면서 2000년대 초 강남 아파트 주민들이 대안으로 리뉴얼을 주목하고 있다”며 “이주 부담이 없고 기간이 짧아 실제 수요층 호응이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 경기신문 = 오다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