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에미상 토크쇼 부문 최우수상은 스티븐 콜베어(Stephen Colbert)가 진행하는 CBS의 ‘더 레이트 쇼(The Late Show)’가 차지했다. 무대 위에서 수상 소감을 전하면서 스티븐 콜베어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10년 전, 어떤 쇼를 만들고 싶냐는 물음에 나는 ‘사랑에 관한 코미디 쇼를 만들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언제부턴가, 어느 시점인지 여러분도 짐작하시겠지만, 우리가 사실 상실에 관한 쇼를 만들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상실은 사랑과 맞닿아 있는데, 무언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 때 비로소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두 달 전인 지난 7월, CBS는 ‘더 레이트 쇼’를 폐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2024년 미국 대선에서 CBS가 카멀라 해리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인터뷰를 편집했다며 트럼프가 200억달러 규모 소송을 제기하자 CBS는 1600만 달러 규모의 합의금을 전달했는데, 콜베어가 이를 “크고 두툼한 뇌물”이라고 비판했기 때문이었다. CBS의 토크쇼 폐지 계획은 이로부터 불과 사흘 뒤에 발표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스티븐 콜베어가 잘려서 정말 좋다는 ‘소회’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다음 타겟으로 지미 킴멜(Jimmy Kimmel)을 지목하면서.
‘더 레이트 쇼’의 시한부 인생이 이어지고 있던 지난 17일, ABC는 간판 토크쇼 ‘지미 킴멜 라이브!’를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보수 활동가 찰리 커크의 피살을 두고 “트럼프 지지자들은 커크를 죽인 용의자가 같은 진영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필사적이며 이 사건으로부터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해 애쓰고 있다”라고 말한 지 이틀만이었다. 시민들의 거센 반발 속에 ‘지미 킴멜 라이브!’는 돌아왔지만, 사태가 완전히 진정된 것은 아니다. 이번 사건으로 FCC를 비롯한 트럼프 행정부가 정치적 발언에 민감하며, 적극 행동할 의사가 있다는 사실이 재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방송사가 FCC의 눈치를 보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CBS의 소유주 파라마운트는 스카이댄스와의 합병을 앞두고 있으며, ABC의 소유주 디즈니는 NFL과의 합병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들 합병은 감독기관인 FCC가 승인해야만 가능하다. FCC의 위원장 버렌던 카(Brendan Carr)는 한 팟캐스트에서 “방송 허가(license)를 받으려면 공익에 부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찰리 커크 피살 사건을 둘러싼 정치권의 움직임을 꼬집거나, 방송사가 대통령에게 전한 수백억 원의 합의금을 뇌물이라 비판하는 것이 공익이 아니라면, 방송 허가와 합병 승인을 빌미로 언론사를 압박하는 정부의 행위는 어째서 공익인가.
방송 허가와 합병 승인, 혹은 대통령의 불편한 기색만으로도 민주주의의 숨 쉴 공간, 표현의 자유는 사라질 듯하다. 그러나 입을 막을수록 커지는 열망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스티븐 콜베어의 수상 소감은 이렇게 이어진다. “이토록 내 나라를 간절히 사랑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가 상실한 것은 자유로운 표현의 나라다. 권력이 입을 막을수록 민주주의에 대한 사랑은 자라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