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에 동파가 됐는지 구정물만 나오니 물은 일절 마시지 못하고 고치는 건 엄두도 못 냅니다.”
26일 오전 11시쯤 광명시 가학동의 비닐하우촌. 옹기종기 밀집해 있는 이 곳 비닐하우스촌은 영하의 칼바람에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농업용 비닐하우스를 운영하는 사람들 외에 거주자라고는 다섯 세대가 전부인 한 비닐하우스는 외부인의 발길이 거의 끊겨 황량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 발길 끊긴 외지서 수십년 거주…광명 가학동 비닐하우스촌 주민들
이날 경기남부지역 아침 최저 기온이 영하 14도까지 떨어졌다. 이 곳 비닐하우스촌은 며칠 전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얼어버려 곳곳이 빙판길이었다.

A씨(81·여)는 한줄기의 빛도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비닐하우스 안에서 홀로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A씨는 20여 년 전부터 이 곳에서 비닐하우스를 거처로 살고 있다.
비닐하우스 한 동에는 어떠한 칸막이 없이 연탄, 선풍기, 책상 등 잡동사니가 널브러져 있었다. 매서운 바람과 살을 에는듯한 추위를 막아주는 건 조그마한 연탄 난로와 대문으로 사용하는 철판이 전부였다.
거동이 어려운 A씨는 하루 종일 이불을 싸매고 추위와 싸우고 있었다.
A씨에게 요즘 가장 큰 고민은 마실 물을 구하는 것이다. 최근 한파 탓에 지하수 수도관에 문제가 생기면서 이 마을에 마실 수 없는 구정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A씨는 “물을 멀리서 사서 마셔야 한다”며 “요즘처럼 눈이 쌓이면 물을 파는 사람도, 수도관을 고치는 사람들도 되돌아가 빨리 눈이 녹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다른 주민 B씨(74·여)는 30여년 전부터 이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일하게 A씨의 안부를 확인하는 이웃이기도 하다.

허리가 굽어 밭일도 힘든 B씨지만 매일 같이 A씨의 거처를 들리는 이유는 그의 건강상태 때문이다.
다만 자신의 건강이 위중할 때 안부를 확인하거나 방문할 사람이 없다는 점이 B씨의 걱정거리다. B씨는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이나 돌봐주는 주민들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B씨는 이 곳은 주거 여건이 매우 열악해 생활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씨는 이곳에 계속 거주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돈이 없어 이사할 생각은 아예 못한다"면서 "그렇다고 다른 거처가 있는 것도 아닌지라 그냥 버티고 사는 것"이라면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 지난해 화재 여파가 아직까지…대안 마련 없는 꿀벌마을
같은 날 과천 경마공원역 5번 출구 입구 인근에서는 미로처럼 들어선 비닐하우스를 찾아볼 수 있다. 100동이 넘는 빼곡한 비닐하우스 모습이 마치 칸칸이 붙어있는 벌집 같다고 해서 ‘꿀벌 마을’이라고 불린다.
지난해 3월 거주용 비닐하우스 수백 동이 밀집한 이곳에서 화재가 발생해 비닐하우스 22동이 전소되고 54세대 7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자칫 더 큰 재난으로 이어질 뻔한 상황에 각계각층의 우려와 대안 마련을 촉구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1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이곳은 법의 테두리 바깥에 있는 무허가 시설인 데다 소방시설 의무설치 대상이 아니란 이유로 여전히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다. 만약 지난번과 같은 화재가 발생할 경우 신속한 대응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전날 한파주의보 해제가 무색하게 거주자들이 떠난 비닐하우스 몇 동은 비닐이 뜯겨나가 바람에 맥없이 휘날렸다.
계속되는 강추위로 거리에는 꽁꽁 싸맨 차림의 노인 두어 명 외에 다른 주민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점심 시간이 돼서야 주민 몇몇이 추위를 딛고 비닐하우스로 만들어진 교회와 식당으로 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꿀벌마을 주민자치회관 역시 비닐하우스로 만들어져 있다. 회관 입구에 놓여 있는 연탄난로는 이곳 주민들의 추위를 달래줄 유일한 난방기구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소방시설은 난방기구만큼이나 부족한 실정이다. 100여 동의 비닐하우스로 이뤄진 꿀벌마을에 소방시설은 소화전 3개, 연결 송수구 4개가 전부다.
이밖에도 이곳 주민들의 고민거리는 과거 화제로 인한 주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3월, 꿀벌마을에 화재가 발상하면서 거주용 비닐하우스에 머물던 53세대가 거처를 잃었다.

조도원 과천 꿀벌마을 주민자치회장은 “지난해 3월 화재로 비닐하우스 24개동이 소실되면서 실제로 거처를 잃은 채 아직 남의 집에 얹혀 사는 주민들이 있다. 거처가 모두 불에 타버렸으니 갈 곳이 없어 이곳 주민회관에 머무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곳 주민들은 60대부터 80대까지 고령층이고 마을을 떠날 생각이 없는 분들이 많다”며 “이분들 대부분이 생활형편이 좋지 않다. 현재 여기에서 전기세를 내는 것까지는 감당을 할 수 있지만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 공과금을 모두 감당하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했다.
◆ 지자체·소방당국 제도적 한계에 난색…전문가들은 법령 개정 촉구
각 비닐하우스촌 관할 지자체는 현장 방문을 통한 실태조사, 마을에 설치된 소방시설·장치 점검 등 자체적으로 구호 활동에 나서고 있지만 주민 불편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소방당국도 취약계층에 화재경보기 등을 배부하고 있으나 주거용 비닐하우스와 같은 주택 이외의 거처에 대한 대책 마련은 한계가 있다.
또 지자체와 소방당국이 비닐하우스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한 지원사업을 펼칠 수 없는 데에는 법적인 요인이 있다. 거주용 비닐하우스는 무허가 시설로 분류되고 별도 등록 절차도 이뤄지지 않아 지자체 차원의 현황 파악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주거용 비닐하우스·판잣집·컨테이너 등을 임시 거처로 규정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이같은 법적 요인으로 인해 실현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자체에서 별도 등록 절차를 거치지 않는 거주용 비닐하우스 현황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며 “직원이 현장을 직접 방문하는 방식으로 거주 유무룰 파악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비닐하우스 거주자들에게 한시적으로 소방·복지 지원 대상으로 포함하는 등 안전사고 위험에 노출되는 일이 없도록 관련 법령에 대한 보완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문현철 호남대 교수는 “단속과 규제가 아닌 정확한 실태 조사를 통해 거주용 비닐하우스 외에 다른 거처가 없는 거주자에 대한 복지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조건에 부합하는 비닐하우스 거주자들을 임시 거주자로 분류하고 그에 맞는 지원이 이뤄지도록 관련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안전과 관련해서도 임시 거주 공간으로 인정된 비닐하우스 내 소방시설 설치 등 안전 조치가 실시될 수 있도록 법령 개정 등 대책이 강구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경기신문 = 나규항·이상범·김원규 기자·마예린 수습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