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30 (금)

  • 흐림동두천 -10.1℃
  • 구름조금강릉 -6.2℃
  • 구름조금서울 -9.0℃
  • 맑음대전 -8.6℃
  • 맑음대구 -4.9℃
  • 흐림울산 -4.0℃
  • 맑음광주 -5.6℃
  • 구름조금부산 -2.6℃
  • 구름조금고창 -6.2℃
  • 흐림제주 2.4℃
  • 흐림강화 -9.1℃
  • 흐림보은 -10.8℃
  • 흐림금산 -10.2℃
  • 흐림강진군 -3.4℃
  • 흐림경주시 -4.7℃
  • 구름많음거제 -1.7℃
기상청 제공

[최광범의 미디어 비평] 법조보도,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 1월 중순, 대한민국 사법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세 건의 재판 장면이 TV로 생중계됐다.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 지귀연) 심리로 진행된 내란 사건 결심 공판에서 특검(특별검사 조은석)은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16일 형사합의35부(부장 백대현)는 대통령경호처를 동원해 수사를 방해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그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21일에는 형사합의33부(재판장 이진관)가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구형량인 15년보다 무거운 징역 23년을 선고하며 법정 구속했다. 이 과정은 검사의 구형이 결론이 아니며, 최종 판단은 오직 법원에 있음을 상기시킨 귀중한 학습의 장이었다. 검사와 변호인은 주장을 펼치는 한 집단일 뿐, 종국에는 판사의 판결이 사건을 결정짓는다.


이 장면들은 한국 법조 보도의 고질적인 민낯을 드러내는 장이기도 했다. 현재 한국의 법조 기자는 사실상 ‘검찰 출입 기자’와 동의어로 쓰인다. 수사 단계에서 검찰이 흘리는 정보는 언론의 받아쓰기 관행을 통해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검찰의 구형은 마치 확정판결처럼 소비된다. 반면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거나 구형과 다른 결론을 내리면 언론은 판결의 논리를 분석하기보다 “법원이 잘못됐다”거나 “기소가 잘 된 것인데 판결이 무리하다”며 검찰의 입장을 강변한다. 언론이 권력기관인 검찰을 감시하기는커녕 스스로를 검찰과 동일시하는 기이한 행태다. 수사를 실시간 중계하듯 보도하는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며, 이는 결국 검찰의 여론재판을 돕는 결과를 초래한다.


법조 보도의 정쟁화와 선정성도 임계점을 넘었다. 한 전 총리 판결에서 “100세가 되어야 출소할 수 있다”는 식의 자극적인 기사가 대표적이다. 이는 판결의 법리적 타당성이나 내란죄의 구성 요건을 설명하기보다 독자의 감성을 자극해 사안을 대립 구도로 틀 짓는 행위다. 충남대 이승선 교수는 이를 두고 “핵심을 비켜간 사안에 초점을 맞춰 여론을 흐트러뜨리는 것은 좋은 저널리즘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 사법 전문기자 이범준 역시 언론이 판결 기사를 검찰 기사의 보조물로 취급하고 검찰 ‘수사 중계방송’으로 전락하면서 여론재판에 가담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제 한국 법조 보도에도 ‘그린하우스 효과(Greenhouse Effect)’가 필요하다. 전 뉴욕타임스의 법조 전문기자 린다 그린하우스는 수십 년간 연방대법원 판결문을 정확히 분석하여 사법 보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는 판결문과 변호사 의견서를 찾아 읽고, 법정 변론에 들어가 양측의 주장을 직접 들었다. 법조 기자의 진정한 능력은 판결문을 얼마나 정확하게 분석하고 평가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 언론도 이제 검찰 담당과 법원 담당을 엄격히 분리할 필요가 있다. 수사는 비판적으로 감시하되 재판은 독립적으로 분석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법조 보도는 특정 권력기관의 입장을 대변하는 도구가 아니라, 시민을 대신해 법치의 가치를 수호하는 일이다. 검찰의 구형이 아닌 법원의 판결이, 감정적인 선동이 아닌 냉철한 법리 분석이 보도의 중심에 설 때 한국 법조 보도는 비로소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검찰의 구형을 결론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중계 보도를 멈추고, 이제는 판결의 무게를 온전히 전달하는 사법 저널리즘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