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푸틴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은 지난 해인 2025년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작 상영에 이어 올해인 지난 3월 15일 열린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장편 다큐 부문은 올해 유난히 경합이 심했다. 많은 이들이 넷플릭스에 올라 있는 ‘완벽한 이웃’의 수상을 예상했었다. ‘푸틴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푸틴만큼 잘못된 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자국의 트럼프를 생각한다면 이 영화에 표가 모이는 게 정치적으로 자칫 ‘민망한’ 선택일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남의 전쟁을 탓할 자격이 없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아카데미 회원들은 과감하게, 그렇기에 더욱더, 이 다큐멘터리에 승부수를 던지는 모양새를 보였다. 어떤 전쟁이라도 반대해야 한다는 의지를 선보인 것이다.
‘푸틴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의 원제는 ‘푸틴에 맞서는 미스터 노바디 (Mr. Nobody Against Putin)’이다. 여기서 미스터 노바디는 파벨 탈란킨이다. 탈란킨은 우랄산맥 기슭의 도시 카라바시의 슈콜라(초⦁중등교육기관)인 ‘카라바시 제1학교’의 교사이다. 카라바시는 타타르족, 바슈키르족 등 투르크 계열 무슬림들이 거주해 온 지역으로 탈란킨이라는 성도 그러한 역사적 맥락을 지닌다. 무슬림들 사이에 흔한 이름인 압둘에서 유래한 압둘마노프 같은 성을 가진 역사 교사도 있다. 카라바시는 구리제련업으로 살아가는 인구 1만의, 소수민족의 도시이다. 구리제련은 당연히 공장 주변과 노동자들을 극심한 중금속 오염에 시달리게 만든다. 주민들의 평균 수명이 45세라는 얘기가 있을 만큼 ‘세계 최고의 오염 도시’로 악명이 높다. 그럼에도 파벨 탈란킨은 평온하면서도 나름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던, 말 그대로 ‘미스터 노바디’였다. ‘존재감 없이’ 평범하게 살아가던 인물이었다는 얘기이다. 그런 그를 바꾼 것은 바로 푸틴이다. 푸틴이 ‘일으킨’ 우크라이나 전쟁이었다.
물론 러-우 전쟁은, 누가 도발했고 그 과정에서 양국 간 외교·정치·군사적 갈등이 어떤 지경에 이르렀었는지, 우크라이나 러시아 접경의 돈바스 지역에서 친러-친서방 주민 간 내전을 중지시키려던 민스크 협정(2014년)은 왜 이행되지 않았는지 등등 시각에 따라 전쟁 발발의 원인에 대해 나름 치열한 논쟁이 있을 수는 있다. 푸틴은 돈바스 지역 내의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에 가장 먼저 지상군을 파병했다. 따라서 전쟁은 명백히 푸틴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특히 푸틴은 러-우 전쟁을 자신의 독재 권력의 강화 기반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러시아 국내외의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파벨 탈란킨은 일종의 이벤트 과목 교사이다. 그는 교내 각종 행사를 기획하고 이를 동영상으로 기록한다. 탈란킨은 2022년 2월 22일 전쟁이 발발한 이후 자신이 점점 국가의 선전 선동 교육에 동원되고 있음을 알게 되고 깊은 회의에 빠지게 된다. 푸틴의 ‘독재 교육’은 점점 심각해지고 심지어 악랄해지기 시작한다. 일단 학교 내 교육과정에서 전쟁이라는 표현을 금지한다. ‘특별군사작전’일 뿐이라는 것이다. 전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가짜뉴스 처벌법’에 따라 처벌된다. 전쟁이 벌어졌으니 부분 동원령이 떨어진 것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한 일이었다. 카라바시에서도 젊은이들 뿐 아니라 남성들 상당수가 징집된다. 카라바시 외 타지역의 많은 남성이 나라 밖으로 이탈해갔고 푸틴은 이에 반역법으로 맞선다. 국가에 반역한 죄는 최고 종신형에 처한다는 것이다. (중견 군사 전문기자였던 이반 사프로노프는 2022년 9월 국가반역죄로 징역 22년 형을 선고받는다) 푸틴이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열을 올리며 길들이려 한 대상은 당연히 방송 등 언론이었다. 그러나 그가 그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학교 교육이었다. 이른바 러시아 모든 학교에서 자행된, 그리고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이른바 ‘애국 교육’이 시작된 이유이다. 전쟁과 독재를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인민 세뇌 교육이다. 푸틴은 방송에 나와 말한다. “교사는 국가가 전환점에 있을 때 중추적인 역할을 합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건 장군이 아니라 학교 선생님들입니다.”
교사 파벨 탈란킨은 의무적으로 이 모든 교육 현장을 영상으로 찍고 기록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 과정에서 러-우 전쟁의 부당성을 깨닫게 되고 전쟁 반대의 뜻을 굽히지 않게 된다. 그는 점점 위험해진다. 이 다큐멘터리는 파벨 탈란킨이 찍은 영상의 중요성을 간파한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 데이비드 보렌스타인이 그에게 접촉, 원격으로 비밀리에 진행해 완성된 작품이다. (탈란킨은 자신의 영상을 담은 하드 디스크를 벽 속에 숨겨 놓는다) 보렌스타인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활동하는 독립 다큐멘터리 작가로 코펜하겐에는 세계 주요 다큐멘터리영화제인 CPH:DOX (코펜하겐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있다. 영화 ‘푸틴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은 CPH:DOX의 제작 지원 플랫폼인 CPH:FORUM의 프로젝트로, 은밀하게 제작되었다.
아카데미는 2022년부터 2024년까지 2년여를 비밀리에, 그것도 원격으로, 전문 다큐 작가와 아마추어 간에 호흡을 이어 가며 작품을 완성한, 그 제작 과정 자체를 높이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내부자의 시선을 외부자들에게 피력해 내는 보편적 정치관, 인간주의적 측면의 성취가 돋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시리아 와드 알-카팁 감독의 ‘사마에게’(2019)와 같은 맥락에 있다. ‘사마에게’는 시리아 내전 및 학생운동의 거점이었던 시리아 북부 알레포의 함락 과정을, 흔들리는 홈 비디오 형식으로 카메라에 담아 외부로 반출(터키를 거쳐 영국 런던의 한 다큐멘터리 PD에게), 완성한 작품이다. 이 다큐는 같은 해 72회 칸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사마에게’와 ‘푸틴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은 정치적 올바름의 측면을 넘어 다큐멘터리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고 누구에 의해 만들어져야 하는지, 그 방식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실험 정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차대한 의미를 지닌다. 그 점이야말로 이 다큐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영화에서 가장 코믹한 동시에 소름 끼치도록 오싹한 장면은 이 카라바시 제1학교의 역사 교사 파벨 압둘마노프가 카라바시의 ‘가장 사랑받는 교사상’을 받는 장면이다. 압둘마노프가 숭앙하는 인물은 셋이다. 라브렌티 파블로비치 베리야, 빅토르 세묘노비치 아바쿠모프, 파벨 아나톨리예비치 수도플라토프 등이다. 베리야는 스탈린 시대 비밀경찰인 내부인민위원부(NKVD)의 수장이었고 고문 기술자였다. 아바쿠모프는 방첩대 역할을 한 국가보안부(MGB) 대장이었고 수많은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 처형시킨 장본인이다. 수도플라토프는 일종의 전문 킬러로 트로츠키를 등산용 곡괭이인 피켈로 암살했던 살인자이다. 이들을 역사적 인물이라고 추켜세우는 역사 교사 압둘마노프가 교사상을 받는 장면은 이 다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 세상의 전쟁은 전장이 아니라 학교와 같은 사회의 깊은 내면에서 더욱 치열하고 잔혹하게 치러지는 법이다.
다큐멘터리 ‘푸틴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은 국내 극장가에서 볼 수가 없다. 수입되지 않았다. 다만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진행 중인 전국 각지의 공동체 영화 상영 (도서관, 작은 극장, 문화회관 등)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상영 일정은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누리집에 소개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