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빗물에 젖은 낙엽이 사람들 발길에 밟혀 형체를 잃어가고 있다. 생각 없이 아침 산길에 나섰다 낙엽의 가는 길을 생각하게 된다. 생명의 끝인 허(虛)와 공(空)과 무(無)를 떠올리게 된다. 공부하고 기도한다는 게 결국은 얼마나 부끄러움을 알고 살다 가는가? 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헸다. 산길을 돌아 동물원 뒷산 숲 속 휴식공간에 이르렀다. 운동기구와 함께 장의자 세 개가 나란히 설치되어 있는 곳이다. “여기 앉으세요. 스티로폼을 놓아두어 젖지 않고 온기가 남아 있네요.”하고서 의자에 앉아 있던 분이 내게 자리를 양보하고 서서히 갈 길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나는 은연중 그분 뒷모습에 시선을 주고 한동안 서 있었다. 회색 점퍼에 검은 바지, 반백 머리스타일과 하얀 운동화에서 노인의 온유함이 깊게 느껴졌다. 노인이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았다. 가로 50c..
몇 달 전 야당 대표가 평화적 흡수통일이 자신의 통일방안이란 발언에 대해 많은 언론에서 비판이 쏟아지자 큰 혼란 없이 유야무야로 끝난 해프닝이 있었다. 근래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의외로 평화적으로 북한을 받아들여(흡수하여) 통일하겠다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 독일도 그렇게 통일하지 않았느냐는 반문을 하는 분들이 있었다. 오해가 너무 크기에 바른 사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먼저 ‘평화적’이라는 말과 ‘흡수통일’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흡수통일은 무력에 의한, 또는 북한자체의 혼란, 붕괴 등을 전제하는 개념이다. 전혀 평화적이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함이 우리 정책의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한반도 평화가 최상의 국익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북한정권이 오래지 않아 붕괴..
코로나19(COVID19)로 인한 팬데믹(전 세계적 전염병 확산)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욱 악화하고 있다. 낯선 숫자인 하루 5000명대의 확진자가 연일 계속되고 있으며 경기도에서만도 지난 토요일 1400명대에 이르렀다. 방역당국은 이번 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했고 경기회복을 간절히 기대했던 수많은 자영업자 절망의 한숨이 커지고 있다. 더욱이 아프리카발 오미크론이라는 변이 바이러스의 발생은 우리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오미크론 바이러스는 그동안 발견되었던 코로나 변이종인 알파. 베타, 감마, 델타 바이러스의 특성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며 WHO(세계보건기구)에서 사상 유례가 없는 변이 바이러스라고 발표했다. 더욱이 그 확산 속도가 엄청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최초로 발견되어 보고되는 그 순간에 이미 캐..
코로나19가 다시금 우리 사회의 절체절명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하루에 수 천 명의 확진자가 쏟아지고 있는 현실을 보면, 코로나는 내년 대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그동안 현 정권은 이른바 K 방역의 우수성을 홍보하면서 그나마 일정 수준의 지지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을 보면, 이것도 더 이상 먹히기 힘들 것 같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K방역이란 것은, 우리 국민들의 높은 민도와 의료진들의 헌신적 노력에 의한 것이지, 정부 덕분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현 정부의 코로나 초기 대응을 돌이켜 생각하면, 이에 어렵지 않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백신 도입이 늦었고, 마스크 부족 사태 등을 생각하면, 정부의 초기 대응도 칭찬받을 수준은 아니었음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의 접종..
우리 현대사는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민주주의자들이 해방된 조국에서 오히려 반역자들로부터 갖은 고문과 심지어 암살까지 당했던 뒤틀린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민주주의는 분단이라는 냉혹한 현실과 불가분의 관련성을 지닌다. 76년 동안 민족국가 건설(nation-state building)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민주주의는 분단체제의 제한을 받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민주주의를 탄압한 자들이 다름 아닌, 분단에 기생해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가로막는 자들인 상황에서 더 무슨 말을 하랴! 여기서 우리는 민주화 운동과 민중 생존권 투쟁을,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큰 틀의 독립운동에 포함시키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 등 강대국에 의한 한반도의 강제 분할이 만든 현실에서 민주화 운동은 앞으로 여전히 독립운동의 연장선에 있을..
5일은 1985년 UN이 제정한 ‘세계자원봉사자의 날’(12월 5일)이었다. 이에 앞서 지난 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6회 자원봉사자의 날’ 기념식에서 수원시가 2021 대한민국 자원봉사 대상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자원봉사 등 민간협력을 통해 코로나19 대응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수원시는 이에 앞서 2일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자원봉사자의 날 기념식’을 열고, 헌신적인 활동을 한 자원봉사자들에게 표창과 감사패를 수여하기도 했다. 수원시공유냉장고 시민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전복례 씨와 수원시다문화협회에서 활동하는 이상란 씨, 수원공군전우회시민봉사단 등이 표창을 받았으며, 예방접종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한 나눔사랑민들레, 나눔·봉사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션킴모터스 등 단체는 감사패를 받았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불륜과 혼외자. 드러나는 순간 사회적 인간으로서 종신형에 처해진다는 것을 또 한 번 확인했다. 더불어 민주당이 대선 영입 인재 1호로 내세운 조동연 씨가 전국에서 날아든 돌팔매를 못 견디고 결국 사흘 만에 자진 사퇴했다. 조 씨 사퇴 후 ‘선출직 공직 후보자도 아닌데 과거의 사생활로 전 국민 앞에서 공격받고 망신당하는 게 온당한가’라는 질문을 곱씹는다. 정치와 국민정서의 냉엄한 현실이라고 하자. 이제 그 현실에 손절한 이후의 조 씨와 아들의 삶은 어찌할 것인가. 사회적 사건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게 문학과 예술이다. 삶은 수학처럼 공식과 정답이 있을 수 없고 모든 문제는 시대, 문화에 따라 달리 해석되며 인간의 죄 역시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이주일 이상 걷지 않고서는 그 인간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인디언 속담처럼 속단하지 말라는 게 문학과..
한뎃잠을 경험한 사람은 안다. 노숙(露宿)이라고 해야 쉬 이해하려나. 덮을 신문지 한 장 없이 겨울밤을 견딜 때, 한 방향의 바람이라도 막아줄 벽이 있다면 얼마나 고마운지. 열아홉 살 때였을까. 혼자서 서울행 완행열차를 탔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비둘기호 열차였다. 비둘기호 열차는 한반도의 평화만큼이나 느리고 굼떴다. 반나절이 걸려 영등포역에 도착했을 때, 혼자라는 사실에 덜컥 겁이 났다. 갓 상경한 촌놈에게 서울은 빠져나오기 힘든 미로 같았다. 눈보라 치는 밤, 의지할 것이라곤 편지봉투에 적힌 친구의 자취방 주소뿐이었다. 그 시절에는 방위산업체에서 근무하면 병역이 면제되었다. 5년을 근무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지만 마다하지 않았다. 실업계 고등학교에 다니던 친구는 자격증을 따기 무섭게 방위산업체에 취업했다. 철이 바뀔 무렵이면 편지를..
초등학교는 담임교사가 반 아이들과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낸다. 중, 고등학교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조례, 종례 시간과 특정 과목 수업 시간에만 만나는 것과 다르게 초등은 전담 과목 시간을 제외한 하루 대부분을 아이들과 한 공간에서 지낸다. 단순히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온종일 소통을 해야 하기에 아이들과 담임교사의 합이 얼마나 잘 맞는지가 한 해 교육 농사의 관건이다. 담임교사가 반을 정하는 방식은 매년 2월 중순쯤 교사들의 학년 구성이 끝나면 반 아이들 명부를 앞에 놓고 랜덤으로 뽑는다. 특별한 이유로 먼저 명부를 확인하고 반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웬만하면 명부 봉투를 앞에 놓고 선택한다. 한 해의 명운이 반 아이들 명부 뽑기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별하게 좋은 반, 나쁜 반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나와 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가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에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라는 동요가 1948년 남북한에 각기 다른 정부가 수립된 이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우리 모두는 지난 7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1945년 해방과 동시에 우리에게 불쑥 나타난 분단을 없애고 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노력을 줄기차게 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남북한 분단과 갈등 상황은 지속되고 강화되는 미중 갈등 속에서 대화보다는 새로운 무기개발 등 군비경쟁 모습을 보이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내년에 출범하는 새로운 정부에게도 부담이 되는 이러한 상황이 초래된 원인은 무엇일까? 우리의 통일 노력은 이승만 정부의 북진통일, 박정희 정부의 선 건설 후 통일,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과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