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지주의 나라'로 가고 있던 대한민국을 어떤 나라로 인도하고 있을까? 봉건 사회로 더 깊이 내몰고 있을까? 현실로 맞아야 할 현대적 나라로 운전하고 있을까? 그 답은 이즈음 신조어가 된 '벼락 거지'가 대신할 것이다. 이 정부 들어 서울과 수도권 주요 도시의 아파트 가격이 100~300% 상승한 것은 단순한 상승에 그치지 않는다. 어떤 죄도 짓지 않은 50%의 무주택자들에게 피눈물이기 때문이다. 3~10억 선인 아파트 가격 상승분은 보통사람들이 10~100년 정도 저축해도 손에 쥐기 어렵다. 따라서 내 집 마련은 하늘의 별 따기다. 폭등하는 전월세 비용 마련도 쉽지 않다. 그들에게 부동산 폭등은 삶이 뿌리째 뽑힘 그 자체인 것이다. 그들의 박탈감은 70년 대 산업화의 기념비적 소설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소환한다. '낙원구 행복..
이것은 밀물이다 이것은 썰물이다 나는 발목이 바쁜 시녀 지금 묻어오는 달빛을 허락한다 어깨가 당겨지면 손마디를 푼다 팔꿈치를 조금 늘어뜨리고 만나는 사람마다에게 절을 한다 개를 끌고 가다 목줄을 놓고 안쪽으로 돌아도 바깥으로 돌아도 공주는 공주 시녀는 시녀 달빛 계단에 무릎이 꺾인다 주저앉을 때마다 주저 없이 일으켜 세워진다 나를 가둔 이는 등 뒤에 서 있다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는, 어쩌면 나를 닮은 모습으로 내가 만들어놓은 신 정해진 줄 위에서 나는 나를 겪어낸다 ▶약력 ▶전북 남원 출생. ▶서정시학(2010년)으로 등단. ▶시집 「『케냐의 장미』, 『꽃의 좌표』, 『눈송이에 방을 들였다』 ▶최치원신인문학상(2005년)수상.
교육의 기초는 삶의 의의와 그 사명을 명백히 하는 일이 아니면 안 된다. 사람들은 법정에서의 거짓말을 범죄로 생각하고, 같은 성인들끼리 잘못된 말을 하는 것을 한심한 일로 생각하지만, 어린이들에 대해서는 아무리 허황된 말을 지껄이고 아무리 거짓말을 하여도 잘못이 아니며 오히려 필요한 일처럼 생각하고 있다. 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가? 인생의 의의와 사명에 대해 설명하는 종교상의 가르침은, 천년 전의 사람들에게는 만족을 주었지만 현대인들은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어린이들에게 천년 전의 사람들에게 가르쳤던 것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 이것은 무서운 잘못이다. “어린이를 교육할 때,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는 것은, 어린이들에게도 모르는 것으로 가르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리히텐베르크) 이 말은 흔히 세상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넘어섰다. 코로나19 최다 확진·사망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던 미국이 마스크를 벗어도 되는 상황에 이르렀고, 1분기 GDP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6.4%라는 높은 성적표가 나왔다. S&P500지수는 1월 20일 취임후 100일간 8.6% 상승해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백신과 경기부양책이 견인했다. 그러나 우리가 더 주목하는 것은 바이든 행정부가 보여준 국정운영과 조치들이 갖고 있는 의미다. 첫 조각을 보자. 최초의 흑인·여성 해리스 부통령을 비롯해 첫 흑인 국방장관, 첫 원주민 내무장관 등 유색인종 출신이 26명의 장관급 가운데 절반인 13명, 여성은 12명이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유색인종 장관급은 13%에 불과했다. ‘무지개’ 내각이 선악이나 능력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언론학자와 저널리스트들은 진실보도를 강조하면서 객관보도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뉴스의 취사선택 등 취재보도의 과정에서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든다. 객관보도를 부정하면서 관점이나 다양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진실은 보편적이어서 주관이 개입될 수 없는 영역에 있다. 인간의 주관적 의식에서 독립되어 있는 객관의 영역에 있다는 뜻이다. 불가피하게 주관이 개입되기 때문에 객관보도가 불가능하다면 객관의 영역에 있는 진실을 무슨 방법으로 확인해서 보도할까? 이것도 불가능하지 않나? 객관성이라는 것은 저널리즘 이전에 철학의 문제다. 철학에서 실재론은 인간의 의식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를 인정하고 있다. 학문이라는 게 진리를 추구하는 건데, 진리 인식이 불가능하다면 학문 자체가 성립할 수도 없다. 철학은..
2018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2045년의 메타버스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줄거리는 이렇다. 영화 속 대부분의 사람들은 VR 기계를 끼고 특정 게임에 로그인해서 하루를 살아간다. 게임 속에서 아이템을 채굴해서 판매하거나 대여하는 걸로 현실 수입을 얻는다. 평범하게 살던 주인공은 게임 회사가 내건 퀘스트에 도전하며 갖은 위험에 처한다. 결말에서 주인공과 친구들이 모든 퀘스트를 완료하고 악당이 물러나면서 가상공간 세계의 평화를 되찾는다는 다소 뻔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영화의 스토리가 뻔한 것과 별개로 메타버스를 주된 소재로 삼은 영화라서 무척 흥미로웠다. 메타버스는 가상을 뜻하는 '메타'와 현실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의 합성이다. 언제부턴가 자주 보이는 단어지만 생각보다 훨씬 예전부터 생활 깊숙한..
사람들이 자신의 사명과 행복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든, 학문은 바로 그 사명과 행복에 대해 배우는 것이다. 자혜로운 사람은 스스로 알기 위해 배우고 어리석은 사람은 남에게 알려지기 위해 배운다. (동양 금언) 인간은 자신의 힘이 허락하는 한, 또 사정이 허락하는 한, 자신과 이웃의 행복을 위해서 살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궁극적인 목적에 더 빨리 도달하기 위해서 그는 앞서간 사람들의 경험을 이용하고 배운다. 이러한 목적의식이 없이 남이 한 말을 그대로 말하는 학문은 가장 저급한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도서목록을 책이라고 부를 수 없듯 그런 사람을 진정한 학자라고 부를 수 없다. 진정한 사람은 앞서간 선배들의 학문을 배울 뿐만이 아니라 그와 같은 일을 뒤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실제로 행하는 사람이다. (리히텐베르크) 종종 미신이 오히려 진리와..
스페인의 코르도바(Cordoba)와 톨레도(Toledo)는 고색창연한 도시다. 중세의 역사가 그대로 숨 쉬고 있는 풍경은 그 자체로 이미 고전(古典)인데, 파리대학이 유럽 중세의 지적 탁월함을 이루기 전에는 바로 이 두 도시가 쌓아올린 학문에 기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랍어로 쓰여진 그리스 철학과 과학은 훗날 르네상스의 젖줄이 된다. 12~13세기 유럽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새삼 발견하게 된 것도 이런 과정을 통해서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걸까? 8세기 이후 15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스페인 남부는 이슬람의 영역이었다. 북부 아프리카에 접한 지중해를 거쳐 스페인에 이르는 지역은 한때 로마제국의 판도였으나 제국의 몰락으로 이슬람이 주도권을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주도권은 이미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있던 기독교, 유대교를 핍..
국토교통부가 GTX-D노선을 김포(장기)~부천종합운동장 구간만 반영하겠다고 발표하자 김포, 부천 등 경기도 서북부와 인천 지역 주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경기도와 인천시가 건의한 노선보다 대폭 축소된 것이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김포~부천~강남~하남’(68km)노선을, 인천시는 청라와 검단 두 노선이 서울로 이어지는 Y자 형태의 노선을 4차 국가철도망 계획에 반영해달라고 건의했다. 그러나 지난 22일 열린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안(2021~2030) 수립연구 공정회`에서 김포~부천 구간만 연결하겠다는 반쪽짜리 계획만 발표한 것이다. 물론 정부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통지옥에 시달리는 이 지역민들의 고통은 더 크다. 김포시의 경우 인구 50만의 도시지만 김포 골드라인이라고 하는 2칸짜리 경전철 노선 하나 밖에 없다..
지구환경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기후 온난화 및 대기와 수질오염의 심각성이 이슈화되면서, 공동재(common goods), 공공재(Public goods)와 함께 커먼즈(commons)라는 용어가 주목받고 있다. 커먼즈는 일반적으로 ‘공동으로 누리는 것’을 의미하며, 자연이나 지식을 포함한 공동의 ‘유·무형 재화’에 대한 권리를 일컫다. 커먼즈의 기원은 1225년 수정된 영국 대헌장 ‘마그나 카르타 (Magna Carta)’에서 출발한다. 당시 ‘산림헌장’에서 목초지와 숲에 대한 평민(commoners)들의 사용 권리를 명시한 것이 시발점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경쟁적 자본주의 체제는 합리적 이기주의를 빌미로 천연공동자원을 독점하였고 한정된 공유자원은 급감하고 파괴되었다. 1960년대 일부 사회 활동가와 과학자를 중심으로 천연자원 고갈과 인구증가에 위기감을 느끼면서 자연 공동재의 사회적·환경적 지속가능성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그러던 중 1968년 생물학자 개릿 하딘은 “어민이든 농민이든 자신의 개인적인 자원을 사용하기 전에 먼저 커먼즈를 소비하기 때문에 커먼즈는 지속될 수 없다.”는 내용의 「공유지의 비극」을 발표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어느 누구도 파괴를 원하진 않지만, 결국 소유권이 불분명하고 한정된 공유자원부터 파괴될 것이 자명하다는 충격적인 주장이었다.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하딘의 이론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노스웨스턴 대학교 법학교수인 캐럴 로즈의 《공유지의 희극》과 경제학자 엘리너 오스트롬 《공유의 비극을 넘어》가 대표적이다. 특히 오스트롬은 공유자원을 관리하는 데 있어 개인보다 공동체의 이익을 앞세우며 각자의 당면 상황보다 공유자원의 장기 보존을 더 중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경우에 따라 공동 소유의 커먼즈가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될 수 있음이 입증한 것이다. 커먼즈는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사회관계 혹은 인류 공동체의 삶에 핵심이 되는 다양한 요소와 과정, 그리고 집단적으로 관리하는 방식까지를 포함한다. 인류가 오랫동안 축적해 온 기술정보는 지식 커먼즈이고, 사회적 자본이라 할 수 있는 협동조합과 공제조합을 포함한 사회적경제 조직도 커먼즈이다. 협력적인 사회관계를 위한 ‘공동의 것을 공동체가 관리하는 모델’ 즉, 사적 또는 공적의 영역이 아닌 ‘제3의 공동체적 관리’ 방식도 커먼즈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돌봄, 먹거리, 재활용, 환경 등의 일부 분야에서 공동체적 관리 모델이 확산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경제를 포함한 비영리 영역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효과적인 공유자원 관리와 활용의 대안으로,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다양한 공공부문 민영화가 촉발시킨 부작용의 대안으로 쓸모도 다양하다. 공공정책의 새로운 모멘텀으로 사회적경제 조직 중심의 커먼즈를 확대할 수 있다면 행복하고 지속가능한 사회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