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에 도취돼 오로지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면서 국민의 참사마저 정쟁의 도구로 악용하고 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한 말이다. 이 언급으로 김 대표는 국회 윤리위에 제소당했다. 민주당의 말들도 만만치 않다. “X를 먹을지언정 후쿠시마 오염수를 먹을 수 없다”는 말을 하는가 하면,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웨이드 앨리슨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명예교수를 두고 ‘돌팔이 과학자’라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석학이, 대한민국 제1야당 대표에 의해 한순간에 돌팔이가 된 것이다. 정치권은 지금 누가 막말을 잘하나를 두고 경쟁에 돌입한 듯 보인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정치권이 막말 경쟁에 돌입하면, 무당층의 수는 늘어나게 마련이고, 이렇게 되면 무당층의 지지를 받기는 더욱 어려워지는데, 이런 것을 모를 리 없는 정치권은 도대체 왜 이런 막말 경쟁에 돌입했을까 하는 점이 그것이다. 무당층이 늘어날 가능성을 보여주는 여론조사가 있다. 지난 7일 공개된 한국갤럽의 정례 여론조사(7월 4일부터 6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 응답률은 13.8%, 표본오차는 95% 신회수준에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안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지난 6월 중순 모 중앙일간지의 단독보도로 널리 회자된 국정원의 인사파동은 찜찜함과 윤 정부 내내 국정원이 제 갈 길을 제대로 갈 수 있을지에 대한 커다란 의문을 던져주었다. 윤 정부 출범 초기 새로운 국정원 지도부가 잡은 방향은 대체로 맞았다. 올해 연말로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이관됨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의 고유기능이자 국가 수호의 근간인 대공수사에 박차를 가한 것은 올바른 선택이고 방향잡기였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원훈을 되살린 것도 가상한 결단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방향설정이 구체화되고 조직에 내재화되기 위해서는 3급 이상 간부들의 역할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정부 출범 초기 인사철학과 인사 방향이 대단히 긴요했지만, 기조실장이 조기에 낙마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데 이어 또다시 인사문제가 불거진 것은 지도부의 인사철학과 의지가 결여된 때문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국정원은 인사와 조직 운영에 있어 일반 부처와 달리 지도부에 상당한 자율성이 위임되어 있다.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정세환경과 국가적 위협이 돌출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인사와 조직 운영에 대한 자율성을 대폭 위임한 것이다. 그러기에 지도부의 인사 및 조직 운영 철학과
2년 전쯤 들은 아름다운 이야기. 무대는 세르비아의 군용 무기 고물상이다. ‘니콜라 막수라’라는 한 예술가가, 매주 이곳을 방문해 예술 재료를 찾는다. 고물 무기더미에서 예술재료? 그것도, 가급적 전쟁의 최일선에 섰던 무기들, 또 가급적 전장의 핏자국이 얼룩진(물론 은유다. 살상무기를 선호한다는 뜻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 무기들을 고른다. 그 섬뜩한 살인무기들은 이 예술가의 손을 통해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로 탈바꿈한다. 이를테면 M70소총과 군용 헬멧으로 만든 기타, 바주카포와 군용 가스통으로 만든 첼로, 탱크로 만든 타악기.......등이다. 막수라의 꿈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참전용사들로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연주하고 싶습니다.” ‘처치 못해 쌓여있는 무기 고물더미’는 세르비아의 상흔을 말해준다. 그 ‘상흔’이란 유고슬라비아 분열 과정에서 발생한 피비린내 나는 내전의 상처일 것이다. 세르비아 얘기 나오다 갑자기 왜 유고슬라비아? 라고 묻는 이들도 있을 듯 하다. MZ세대 중에는, 지구상에서 사라진 유고슬라비아란 국명이 금시초문인 이들도 있을 듯 하고. 요즘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음울한 지구촌에 세르비아-코스보 사이의 전운이 연일 토픽이던데, 이를…
100년 전, 일제 치하, 경상도 진주에 국채보상운동, 3.1 만세 운동, 학교설립, 백정 해방운동을 앞장서서 주도했던 젊고 의로운 인물이 있었다. 백촌 강상호(1887년생) 선생이다. 국채보상운동 경남 책임을 맡았을 때, 스물 한 살이었다. 진주공립보통학교(진주초)의 학무위원이 된 건 스물 아홉. 그 무렵, 긴 가뭄과 대홍수가 지역사회를 초토화시켰다. 이웃들은 쌀독이 비어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백촌은 양친과 함께 곳간을 열었다. 그리고 동네의 가가호호에 부과되는 호세ㅡ주민세와 유사한ㅡ10년치를 대신 냈다. 거금이었다. 서른 살이었다. 4-50대 중견인사들 가운데서도 극히 일부나 할 수 있는 일들을 그 나이에 농부들 벼 베듯 해낸 거다. 훗날 주민들이 백촌의 자당을 기려서 시덕불망비(施德不忘碑)를 세웠다. '베풀어주신 은혜 잊지 않겠다'는 착하고 아름다운 합창이다. "부족한 곳 누추한 마을 복전을 돌보아 농사짓게 해주시고, 천금을 바르게 쓰시어 많은 집이 돈을 얻으니 그 혜택이 산과 바다와 같으매 은덕이 높고 넓음을 돌에 새겨 잊지 않고 백세에 전하리라 1917년 가좌리 주민 일동" *복전(福田:복을 거두는 밭이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가난한 사
지난 5월 말부터 6월 초에는 여자야구 아시안컵 대회가 있었다. 아시아 12개 나라가 출전한 이 대회에서 한국 야구 여자대표팀이 동메달을 획득했다. 덕분에 월드컵 그룹 예선에 출전할 자격을 얻었다. 남자 프로야구의 엄청난 인기를 생각하면, 야구 국가대표 대항전이라 꽤 화제가 될 법했다. 예상 외로 조용하게 지나갔다. 여자야구 아시안컵 1위는 압도적인 기량 차이를 보인 일본이었다. 세계 랭킹 1위의 벽은 높았다. 일본의 야구 수준이 한국보다 높은 걸로 정평이 나 있으니 이 정도 차이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으나 아쉬웠다. 언젠가부터 일본은 야구를 포함해서 다른 대부분의 구기 종목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국보다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모든 종목에서 말이다. 축구 월드컵에서 한국이 16강 진출을 목표로 할 때, 일본은 16강은 기본이고 8강을 목표로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 남자배구는 올림픽 본선 진출권을 확보하지 못했을 때 일본은 올림픽 8강에 진출했다. 많은 종목에서 한국과 일본의 기량 차이가 보인다. 우리는 옆 나라와 이렇게까지 차이 나게 된 이유를 알고 있다. 일본은 방과 후 동아리 활동이 잘 구성되어 있다. 일본 중학생의 64%가, 고등학생
오래 전의 일이다. 분당에서 책모임 할 때 당시 대학생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들은 이른바 운동권 선배들을 좌파 꼰대로 지칭했다. 그들에게는 좌파나 우파나 한물 간 ‘올드 보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의 시각 앞에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화 운동 세대라는 자부심이 무너져 내리면서 아리고 쓰라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수긍하게 되었다. 몇 가지로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 80년대의 획일주의와는 정반대의 다원주의 사회가 들어섰다. 둘째, 어떤 현상이든 종합적으로 봐야하는 사회가 되었다. 민주주의나 정의 등 굵직한 개념도 사안별로 들여다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셋째, 지난 시절의 지식은 달라진 시대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회과학도 많이 깊어지거나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심리학과 물리학 등 인간과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지식이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그런데도 이른바 민주화 운동 시대의 산물인 586 정치인은 변화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 실용주의 시대에 걸 맞는 어젠다 설정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살인적 양극화에 따른 불평등 해소에도 속수무책이었다. 케케묵은 민주 대 반민주 논리로만 일관한 것이다. 독
이기적 염세주의로 유명한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는 칸트 사상을 왜곡하여 사이비 이론을 펼친다며 당대의 인기 철학자들을 모조리 인정하지 않았지요. 특히 독일 관념론의 대표적 인물인 헤겔(Hegel)을 싫어했는데, “정신병자의 철학을 늘어놓는 추악한 남자”라며 신랄하게 비판했어요. 그가 푸들 강아지 한 마리를 사서 이름을 ‘헤겔’이라고 짓고는 “이 멍청한 헤겔 새끼!”라고 구박하다가 화가 날 때면 개의 배를 걷어차기도 했다는 얘기는 놀라운 에피소드예요. 그런데, 극적 반전이 일어나지요. 쇼펜하우어는 그 개가 매우 충성스럽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름을 흰두교 경전 ‘우파니샤드’에 나오는 인간 내면에 숨겨진 진아(眞我)를 뜻하는 ‘아트만(atman)’으로 바꾸었어요. 사람보다 개를 더 높이 평가하게 된 그는 개의 눈을 바라보면서 “세계의 영혼을 본다”고 말했대요. 반면 인간을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고슴도치에 비유하며 서로를 찌르는 욕망덩어리이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고통에 늘 시달리는 존재라고 여기게 되지요.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는 그렇게 발전돼간 듯해요. 짐승의 세계에서도 자주 볼 수 없는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범죄들이 속속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놓고 정치권은 물론 우리사회의 분열상이 도를 넘는 느낌이다. 여야 정치권의 이해득실 계산이 앞서다 보니 상반된 결론이 나오고 이에 대한 합리적 해결책도 기대하기 어려운 듯하다. 생뚱맞게 후쿠시마 오염수와 북한 핵이 무슨 상관이 있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핵 오염 수 방류에 그렇게 불안해하면서 북이 갖고 있는 핵무기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태연한 정치지도자들의 태도에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북한핵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지는 않는지, 대응책에는 문제가 없는지를 살펴보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함을 기본적 책무로 하는 정부의 기능에서 북한핵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은 최상의 위치에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대통령의 발언이나 장차관인사에 임명되는 인물 성격 등을 볼 때 정부의 대북인식이나 정책에 문제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전임정부와의 차별성, 자신들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북한의 선의를 믿고 끌려 다니며 가짜평화로 국민들을 현혹시켰다’는 주장을 한다. 그럼 역으로 북이 악의를 품고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미국의 확장억제력, 전략자산으로 선제타격, 원점타격으로 북한을 붕괴시키면 된다고 주장할 것인가. 물론 한미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무대포로 나오는 배우가 “난 무조건 한 놈만 팬다.”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냈다. 비록 여러 상대에게 집단공격을 당할 수 있지만, 어느 놈이든지 걸리는 한 놈만 패면 누가 선택될지 몰라 여럿임에도 섣불리 공격하기가 어려워진다. 그게 무대포 정신이란다. 그런데 그 정신이 가장 잘 활용하는 곳이 최근의 우리 언론이다. 권력은 권력끼리 상호 견제와 균형(Check & balance)을 이루라는 삼권분립의 정신이 무너지자 국민으로부터 제4부로서의 권한을 위임받고 권력을 감시하라는 특권 속에서 언론은 탄생했다. 언론의 철저한 원칙은 공정 보도와 진실 찾기이다. 오늘의 민주주의가 실현되기까지 과(過)도 있었지만,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한 언론의 공도 크다. 그들이 감시할 권력은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로 나눠진 삼부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지나칠 정도로 권력 감시가 입법부에 집중되고 있다. 한 놈만 패고 나머지 권력과는 밀착하는 모습이다. 언론이 입법부의 구성원인 정치인들을 견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실질적으로 국민의 삶의 문제와 직결되는 곳은 행정부와 사법부의 권력이다. 그러나 언론은 이들의 권력 이탈과 남용에 대해서는 단편적이고 표피
개화기(開化期)에 우리가 만난 민주주의는 서양의 데모크라시(democracy)를 일본이 번역한 정치용어다. 먼저 해외 문물(文物)을 받아들인 그들의 노고의 결과인 것이다. 철학(哲學 philosophy) 과학(科學) 자아(自我 ego) 신문(新聞) 방송(放送) 등 개념어들의 ‘출생’의 내역과도 같다. ‘선거로 뽑은 사람에게 정치를 맡기는 제도’인 데모크라시는 그렇게 우리의 ‘민주주의’가 됐다. 번역자(일본)는 멋을 좀 부려 민주주의(民主主義) 즉 시민(백성)이 주인인 제도라고 이름 매겼다. 비슷한 말 같지만 뉘앙스(어감)를, 그 차이를 살필 일이다. 우리 마음속 민주주의와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데모크라시)에 대한 ‘뒤집어보기’겠다. 일부 신문이 정부발령 인사(人事)를 보며 ‘(모두) 윤심만 살피지 않겠나’고 지적한 것을 보고 ‘윤심민주주의’란 말을 떠올렸다. 정부 여당이 ‘윤심’만 좇는다면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자유’(의 실체)는 ‘윤심’이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민주주의나 정의를 세우기 위해 피땀 바친 선각(先覺)들의 그 ‘민주주의’는 앞에 ‘**’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비로소 의미가 되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아닌, 절대적인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