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 오랜 세월 근무하다가 보면 많은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술먹고 싸워서 다쳐온 환자, 음주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를 내고 온 환자, 암 진단받고 나서 모든 희망을 버리고 체념하면서 죽을 날만 바라보는 환자, 마약이나 술에 중독되어 고래고래 소리치는 환자 등 많은 환자를 보아 왔지만, 가장 마음을 아프게 하는 환자는 태어나서 인생 꽃피워 보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영아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죽은 영아를 안고 통곡하는 엄마를 볼 때 마치 내 자신이 살인을 저지른 것 같은 생각이 들곤한다. 내가 경험했던 일로 지금도 눈만 감으면 떠오르는 영아 엄마의 얼굴이 생각나 소개하고자 한다. 새벽 3시경, 2개월된 남아 환아를 이불보로 감싼 채 아이 엄마가 울면서 응급실로 내원하였다. 급히 이불보를 제치고 환아를 보니 이미 온 몸은 핏기가 전혀 없었다. 또한 청진상 호흡음이나 심박동은 들리지 않았으며, 맥박도 전혀 만져지지 않았고, 불빛에 의한 동공 반사도 전혀 없었다. 우는 엄마를 달래가며 아기의 상태에 대해 물어보니 그 전날 잠들 때까지 건강하였으며, 우유도 잘먹고 자서 아무 걱정없이 엄마도 깊게 잠들었다가, 깨어 아가를 보니 호흡이 없으면서 온몸에 핏기가 없어 응급실로
‘병치레 하지 말고 신바람 나게 사는 해가 되길….’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새해 덕담을 나눈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하고도 사흘이다. 만물이 얼어붙고 매서운 찬바람이 기승을 부린 깊은 겨울 한가운데에서 그 새 입춘을 맞았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다. 시일이 빨리 지나가며 계절 또한 한 발 앞서는 것 같아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라고 했던 속담이 요즘 같으면 실감난다. 연일 영하의 날씨가 계속되면서 봄빛은 보이지 않고 덩달아 마음속 겨울도 녹을 기미가 없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금세 녹아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세월이란 본디 멈춤을 허락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해서 조만간 ‘어느 틈엔가 마음속에 살포시 들어앉는 사랑’처럼 봄도 그렇게 우리 곁에 다가올 게 분명하다. 하지만 마음은 왠지 무겁다. 가슴속 묵은 먼지들을 훌훌 털어내고 새로운 시절을 맞으려 해도 쉽지 않아서다. 우선 코앞으로 다가온 설이 먼저 마음을 짓누른다. 매년 어김없이 찾아오는 연례행사인데도 다가오는 무게감이 영 가벼워지질 않는다. 모레부터 시작되는 연휴도 달갑지…
클라우디 /최세라 때로는 구름 아래 서 있고 가끔은 구름 없이 누웠다. 통이 점점 넓어지는 바지를 입는 날이 많았다. 인파 속에서 너를 찾듯이 까치발 섰다. 내일 질 꽃이 가장 아름다웠다. 바깥의 가식으로부터 안쪽의 가식으로 삶의 방향이 달라졌지만 볶은 콩과 날콩을 분리하는 일은 여전히 어려웠다. 눕히면 눈동자가 흔들리는 인형처럼 내가 모르는 사람이 나는 되고 싶었다. 어제의 기분이 엉겨 붙을 땐 홑청 같은 나비 떼를 날리라고 배웠다. 아무에게도 그날의 행방에 대해 묻지 말라고 배웠다 오늘의 기분은 4그램 한 근을 맞추기 위해 고깃덩이에서 떼어낸 자투리 구름 - 웹진 ‘시인광장’ 2015년 8월호 발췌 클라우디는 사전적 의미로 ‘흐린, 구름이 잔뜩 낀, 탁한’이고 와인에서 부유물이 많을 때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시에서 너무 지나친 상상력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안감을 주거나 불쾌감을 던져 준다. 시를 어렵게 하고 객관성과 보편성을 얻기 어려워 버려진 시가 된다. 그러나 클라우디 시는 상상력이 발랄하고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큼함을 느끼게 한다. 전혀 흐리거나 혼탁하지 않아 클라우디 대한 반어법 같아 더 큰 매력
루마니아의 베가강가에 티미소아라란 도시가 있다. 그 도시 중앙에 있는 산책로에 4개 국어로 된 팻말이 세워져 있다. “바로 이곳에서 한 독재자를 쓰러뜨린 위대한 혁명이 시작되었다.” 그 독재자는 차우세스큐를 말한다. 2차 세계대전 후 소련이 루마니아를 침공하엿을 때에 루마니아 안의 공산주의자는 일천명이 되지 못하였다. 그들 중에 구두 만드는 직공이었던 니콜 차우세스큐란 젊은이가 있었다. 전쟁 중에는 줄곧 교도소에 있다가 전쟁이 끝나자 석방되었고 이어 공산청년동맹의 비서로 임명되었다. 그때부터 소련을 등에 업은 그는 온갖 잔인한 방법으로 권력을 장악하였다. 그로 인하여 수백만의 지식인 학생 종교인들이 투옥되었고 그중 많은 수가 옥중에서 죽었다. 드디어 최고 권력자가 된 그는 평양을 방문하고 김일성의 통치술에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김일성과 의형제를 맺고 귀국 후 루마니아를 북한체제처럼 만들어 가는 데 전력을 다하였다. 그의 권력기반은 영구불변한 반석 위에 세워진 것처럼 보였다. 아무도 차우세스큐 정권이 무너지리란 것을 상상조차 못하였다. 그러나 1989년 12월 성탄절을 앞두고 차우세스큐 정권은 갑자기 허물어졌다. 그와 그의 부인은 분노한
신생아의 소두증(小頭症)을 유발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지카 바이러스가 무서운 속도로 퍼지고 있다. 지난해 메르스의 공포를 경험했던 우리로서는 이를 더욱 주시할 필요성이 있다. 보건복지부는 마침 선제적 대응을 위해 지난달 29일 지카 바이러스 감염증을 제4군 법정감염병으로 지정했다. 국내에서 환자가 발생하기도 전에 법정감염병 지정이 이뤄진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 잘한 일이다. 이에 따라 지카 바이러스 감염증 환자 및 의심환자를 진료한 의료진은 관할 보건소에 즉시 신고해야 하고, 위반시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지난해 11월 지카 바이러스가 소두증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는 브라질 정부의 발표가 나오면서 이 바이러스는 특히 임신부와 예비 임신부들에게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지카 바이러스 감염은 주로 중남미 지역에서 보고됐으나 최근 들어서는 급속히 세계 전역으로 퍼져 현재는 남북 아메리카와 아시아, 아프리카, 대양주 등의 23개국에서 발생 사례가 보고됐다고 한다. 발병지역의 하나인 브라질에서 우리나라로 1주일에 약 600명 정도가 들어온다. 더욱이 올 여름에는 브라질 리우에서 하계올림픽도 열린다. 신경이 바짝 써야 하는 이유다. 신종 및 변형된 바이러스는
수원시의회 새누리당 의원들이 지난달 29일 낸 성명을 두고 지역 사회가 시끄럽다. 새누리당 시의원들은 ‘염태영 수원시장은 국토부 시절 비리 의혹으로 징계를 받자 스스로 옷을 벗은 인물에 대한 부시장 임명을 철회하고 시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수원시가 신임 부시장을 선임하기 위해 비위공직자의 취업제한을 명시한 관련법률 조항을 삭제한 내용의 임용공고문을 냈다는 말까지 돌고 있다’ ‘청렴도시 수원의 120만 시민과 3천여 공직자의 명예에 먹칠을 한 것’이라고 공격했다. 이에 수원시가 발끈하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시는 ‘전형적인 흠집 내기이자 총선을 겨냥한 정치공세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시는 기본적인 사실 확인도 없이 일방적으로 도태호 수원시 제2부시장을 비리인물로 규정하고 임명을 철회하라는 새누리당 시의원들의 주장에 ‘도 제2부시장은 경징계 처분 뒤 후배들을 위해 스스로 용퇴했고, 정부의 인사검증을 통해 작년 7월부터 정부 출연기관인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했다’ ‘민생안정에 주력하고 있는 수원시정에 대한 근거 없는 정치공세를 당장 그만두라’고 촉구했다. 특히 임용 전 법제처와 경기도, 경찰서 등의 비위
서향각은 1776년 정조가 즉위하면서 창덕궁 후원에 규장각 등 왕실의 연구도서관 단지를 조성하면서 여러 시설의 중 하나로 포쇄(종이류의 책을 햇빛에 말리거나 바람을 쐬는 일)를 주관하는 건물로 건립되었다. 당시 이곳에 많은 건물이 건축되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이유로 인해 없어지고 주합루와 서향각만 남았다. 그리고 지금은 이 두 건물도 비공개 시설로 분류되어 인적이 닿지 않고 사진의 배경 장소로만 활용되고 있다. ‘책의 향기가 나는 곳’의 이름을 가진 서향각의 내력을 살펴보면, 창건 시기에는 왕실 관련 책들의 포쇄를 위한 건물로 건립되었지만 포쇄는 항상 하는 것이 아니므로 평상시에는 여러 용도로 사용하였던 것 같다. 규장각을 건립(1776년)한 후 정조는 자주 찾아와 규장각 각신들과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격려하였고 만나는 장소는 주로 서향각에서 이루어졌다. 그만큼 서향각이 편하게 느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규장각의 역할이 커져 1781년 금호문의 근처로 이전하게 된다. 규장각이 이전한 후 조용해진 후원의 이곳은 왕실연구기관 용도보다는 포쇄의 역할을 충실히 하였고 순조 3년(1803) 인정전의 화재 발생 시기에는 선원전의 어진을 이곳에…
공연한 질문을 한 것 같다. 국민들 십중팔구는 만족하지 않는다고 대답할 것이다. 경제가 어려운데 정치에 만족할 리 없다. 단순히 경제문제뿐만은 아니다. 요즘 정치권을 살펴보자. 각 정당들은 4월 총선을 앞두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여당은 공천관리위원회 구성 문제로 진통 중이고, 야당은 아예 판을 다시 짜고 있다. 총선승리가 각 당의 지상목표라는 점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민들이 피곤해 하는 것은 앞뒤가 바뀐 느낌 때문이다. 선거는 관문일 뿐 국회 본연의 업무는 입법과 국정통제인데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물론 통과된 법안도 많기 때문에 19대 국회가 최악의 국회라는 것은 과장된 표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급한 쟁점법안들은 꽉 막혀있다. 선거가 코앞인데 선거구 획정도 안 되어 있고, 지난 29일 여야 원내대표간 합의로 통과시키기로 했던 북한인권법과 기업활력제고법조차 아직 통과되지 못했다. 그러니 국민들이 요즘 정치에 만족할 리가 없다. 합의가 안 되면 다수결로 정하는 것이 민주주의 그렇다면 다가오는 총선에서 어느 정당, 어느 후보를 선택해야 할까? 물론 국민의 뜻을 잘 헤아려 입법과 국정통제를 잘 할 정당과 후보를 뽑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외래어 중 1위가 무엇일까? 스트레스라고 한다. 스트레스라는 개념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백 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어느덧 생활 깊숙이 자리 잡은 ‘공공의 관심사’가 된 것이다. 스트레스의 어원은 라틴어인 ‘stringer(팽팽히 죄다, 긴장)’이다. 이 용어는 원래 물리학·공학 분야에서 사용했으나 1936년 캐나다 생리학자 ‘한스 셀리’가 ‘개인에게 의미 있는 것으로 지각되는 외적, 내적 자극’을 스트레스로 정의함으로써 지금과 같은 의학계 용어가 됐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스트레스는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생명체가 외부의 환경이나 내부의 변화에 즉각적이고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싸울지 도망갈지를 빨리 결정하게 하는, 그야말로 객관적인 ‘생존 시스템’이라 할 수 있어 그렇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시스템이 잘 작동하면 각종 응급상황에 더욱 잘 대처할 수 있다고 한다. 심리학자 ‘라자루스’는 이를 두고 “인간은 학습능력을 사용해서, 전에 일어난 일과 비슷한 상황이 다시 벌어지면 전에 겪었던 경험을 되살려 미리 위험에 대비하려고 하는 이른바 ‘예측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다”고 했다. 예를 들어 불에 한 번 데
생각 /김명철 ‘나만’ 보고 있다가 불현듯 주변을 둘러본다 아무도 없다 생활도 없고 관계도 없고 빽빽하던 소리도 없다 이명조차 없다 집 앞 목재상에 지게차가 없다 숲길에 산책이 없고 운동장에 체육이 없다 차도에 자동차도 없고 그 흔하던 까치 한 마리 없다 사람이 없다 고양이를 밟은 바큇자국처럼 내가 납작해지고 있다 - 김명철 시집 ‘바람의 기원’ 마흔을 코앞에 둔 친구가 하늘을 언제 봤는지 어떻게 살아냈는지 정말 모르겠다고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콧물을 닦았다. 세상 속에 꼼짝없이 묶인 내게서 눈을 돌려 주변을 바라본다. 아무도 없다. 생활도 관계도 소리도 그 흔한 까치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내가 서 있는 이 두터운 시간은 오늘인가 천 년 전인가. 하늘의 허공화를 바라보듯 눈이 흐릿해진다. 젖은 눈이 흘러내릴까봐 눈을 치켜뜬다. 주변에서 눈을 돌려 다시 나를 보면 無와 空의 세계다. 나는 없고 너만 있다. /김명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