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이후 270여 년 간 방치되었던 경복궁이 다시 우리의 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고종시기이다.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은 인플레이션 유발과 같은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덕분에 지금 우리는 경복궁이라는 문화유산을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고종과 흥선 대원군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운현궁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보통 궁궐은 왕이 살면서 정치를 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운현궁은 ‘궁’으로 불리고 있지만 궁궐은 아니다. 그렇다면 운현궁은 왜 ‘궁’으로 불리는 것일까? 이는 고종이 26대 임금으로 즉위하면서 왕의 잠저, 즉 왕이 살았던 집이라는 이유로 ‘궁’의 명칭을 받게 된 것이다. 운현궁은 흥선 대원군의 집으로 그의 아들 고종이 태어나 12세까지 자란 곳이다. ‘운현’은 조선시대 기상관측소인 서운관 앞 고개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고개 너머에 흥선 대원군의 집이 있었다. 운현궁은 수직사, 노안당, 노락당, 이로당 등의 중심건물과 유물전시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운현궁으로 들어서자마자 처음 만나는 곳이 바로 수직사이다. 수직사는 지금의 경호실과 같은 곳이다. 즉 수직사는 경호원들이 운현궁의 경비와 관리를 위해 거처하던 곳이다. 운현궁으로 들
우리나라 자영업자 수는 대략 600만 명에 이른다. 자영업을 창업하는 경우 본인 혼자 하는 경우가 많지만 자금을 모으고 경험을 활용한 시너지 효과를 위하여 공동으로 사업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지인들 간에 주먹구구식으로 시작 할 경우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도 많은 것도 현실이다. 투자분배금, 업무의 한계, 이익분배금, 계약파기 시 책임의 한계 등을 동업계약서에 명시하고 수입·지출 현황을 기록하고 근거자료를 잘 보관하여야 분쟁을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다. 세무 상 처리에 있어서도 개인사업자와 다른 점이 많다. 공동사업의 법적성질은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상 ‘조합계약’이다. 조합 등 공동사업체가 소득을 얻은 경우 조합 등은 소득세 납세의무를 지지 않고, 조합단위로 산정한 과세소득금액을 그 손익분배비율에 따라 각 조합원에게 배분하여 각자에게 소득세 납세의무를 지운다. 우리 소득세법은 공동사업체를 공동사업자의 도관으로 보아 조합 등 공동사업체가 소득을 얻은 경우 사업체인 조합 등에 대해서는 소득세 납세의무를 지우지 않는다. 공동사업을 하는 경우 각 조합원 등에게 소득금액이 분산되어 초과누진소득세율 체계 하에서 세부담이…
이번 선거는 진짜 깜깜이 선거다. 여기서 깜깜이 선거라고 하는 이유는 도무지 예측이 안 되기 때문이다. 3당 체제에서 치러지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양당 체제로 치러지면, 대충은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도시 지역의 경우, 후보자를 보고 투표하기보다는 자신의 선호정당 후보자에게 투표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정당투표의 경우도 자신의 지지후보 소속 정당을 선택하는 줄 투표 현상이 많다. 이런 점을 감안해 정당 지지율과 총선 때 확보하는 의석 비율은 대체로 일치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무지 감이 안 잡힌다. 만일 지금 현재의 정당지지율 추세라면 새누리당 최대 145석, 더민주 최대 100석 국민의 당 최대 40석 그리고 무소속과 정의당이 20석 정도 확보할 것으로 예측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문제는 야당의 표가 갈라진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럴 경우 박빙 승부를 벌이는 곳 대부분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새누리당이 어부지리를 얻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예측이 상당히 어렵다. 그리고 여기에 투표율이라는 변수마저 등장한다. 지금의 상황으로 봐서는 투표율이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공천과정에서
보통·평등·비밀·직접투표라는 4대 원칙이 확립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유럽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난 18~19세기 이후이니 200년 남짓이다. 당시엔 여성은 제외됐다. 남녀가 동등한 투표권을 갖는 보통선거는 20세기 들어와서다. 1898년 뉴질랜드가 최초로 실시한 이래, 1902년 호주에 이어 영국이 1918년, 독일이 1919년, 미국이 1920년 각각 여성 투표권을 허용했다. 반면 유럽 혁명의 선두주자였던 프랑스는 정작 1946년에야 여성에게 투표권을 줬다. 평등투표 원칙은 1인1표, 즉 투표의 등가성 원칙을 의미한다. 하지만 20세기 초만 해도 납세액 등에 따라 투표권이 달라지는 불평등 투표가 적지 않았다. 독일에선 투표권자를 납세액에 따라 3등분해 투표하게 한 적도 있다. 총세수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고액납세자 1표가 소액납세자 그룹의 수많은 사람들 표와 동일하게 간주한 것이다. 비밀투표는 1858년 호주에서 처음 실시했고, 지금은 공산주의나 일부 독재국가를 제외하곤 세계 각국이 보편적 투표방식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런 투표의 기원은 2500년 전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민의 직접투표로 지도자를 선출했고 도자기 조각에 이
거다리 /김선태 거다리는 사전에도 없는 말. 걸다와 다리가 만나 생긴 사투리다 이 말 속에는 어린 시절 한쪽 다리를 어머니 다리에 떡 걸쳐놓아야만 잠이 들던 코흘리개가 있다 이 말 속에는 오래 등 돌려 누운 부부가 어느 날 서로에게 다리를 가만히 올려놓는 반전이 있다 단절과 불화의 벽을 일시에 허물고 소통과 화해의 다리로 함부로 건너가도 좋은 행여 거다리했다간 다리가 부러지는 세상에 더욱 간절히 그리워지는 아득히 사라진 말 거다리! 김선태 시인을 2월엔가 만났다. 여수 공항 쪽에서 목포까지 냅다 질주했다. 한 시간 남짓 걸려 도착했으니 얼마나 내 주위를 남도의 풍경이 휙휙 지나갔을까. 그와 만나 목포 앞바다가 다 보이는 온금동 언덕의 술집에서 막걸리 잔을 나누었다. 막걸리 잔 가득 채워지는 것은 목포의 눈물이고 목포의 사랑이고 목포에 대한 애달픈 막연한 그리움 같은 것이었다. 김선태 시인은 아무리 봐도 남도의 리듬을 가지고 남도의 정취를 길어 올리는 탁월한 능력이자 천부적 기질을 가지고 있다. 천상 시인이다. 그의 가슴에는 옛날에도 감탄했지만 남도의 리듬과 우직함과 남도의 가락이 있다. 그의 시에서 말하듯이 반전의 아름다움을 직시하는 눈이 있다. 거다리 알고
새누리당 총선 후보들이 길바닥에서 무릎을 끓는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들은 목표의석 수를 확보하지 못하면 의원직을 사퇴하거나, 대선 후보에 나서지도 않겠다고 선언한다.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과 대구에서 출마한 친박계 후보들이 엊그제 무릎을 꿇고 공천 파동에 대한 용서를 빌었다. 시민들의 마음을 상하게 한 점을 반성하고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읍소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는 107석 달성 실패 시 의원직 사퇴의사까지 밝혔다. 문재인 전 대표는 호남지역을 방문한 자리에서 호남에서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대통령 후보에 나서지 않음은 물론 정계를 은퇴하겠다는 배수진을 쳤다. 아무리 다급하다지만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일제히 비난하던 국민의당 지지율이 가파른 상승을 하는 것에 위기감을 느낀 거대 여야가 성난 민심을 끌어안기 위해 갖은 술수를 펼치고 있다. 새누리당은 ‘반성과 다짐의 노래’까지 만들어 온라인에 올렸다. 제식구 감싸기에만 여념이 없던 공천 갈등에 실망하고 있는 민심을 되돌리기 위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것이다. 뛰쳐나갔다며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비난하던 더불어민주당도 민심이반이 심상치 않자 하는 행동들이다. 민심을 이제서야 알았다는 것인
지난해까지 프로축구 챌린지(2부 리그)에 속해 있다가 올해 처음 클래식으로 승격한 수원FC가 국내 축구팬과 수원시민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수원FC는 실업팀 수원시청 축구단으로 출발해서 프로축구 2부 리그인 챌린지에서 뛰었다. 작년 챌린지 정규리그에서 4위의 성적을 거둔 후 승격 플레이오프까지 거침없이 승리, 축구판을 뜨겁게 달구면서 화제의 중심이 됐다. 그리고 1부로 승격, 올해 처음 클래식 무대에 당당히 선 팀이다. 현재 수원FC는 ‘무패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클래식으로 승격된 후 1승3무 승점 6점으로 클래식 12개 팀 가운데 5위에 올라있다. 근성도 보인다. 비록 1승밖에 거두지 못했고 3번의 무승부라고 하지만 점수를 후반에 낸 경우가 많고 끈질긴 공격으로 역전을 시키거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막판 동점골을 넣기도 했다. 그래서 상대팀은 마지막까지 안심을 하지 못한다. 이 초반 돌풍을 이어간다면 클래식 첫해 상위 스플릿 진입도 노려볼 만하다. 게다가 성남FC와의 ‘깃발 전쟁’도 흥미를 끈다. 진 팀의 경기장에 상대팀 깃발을 내걸기로 했고 진 팀 시장이 집무실에서 이긴 팀의 유니폼을 입고 근무한다든지 하는 새로운 더비의 탄생은 축구팬들 뿐 아니라…
“내가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는지 모르겠어. 난 전혀 내가 이렇게 나이를 먹지 않을 줄 알았는데” 한숨에다 시선마저 천정에다 주며 말하는 그는 아주 이상하다는 표정까지 지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투였다. 그러면서 답답하다는 듯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그러면서 천정을 바라보며 껌벅거리는 그의 눈이 좀 이상했다. 흰자위에 팥알만 한 크기의 붉은 점들이 여러 개가 박혀서 옆에서 보기에도 불편해 보였고, 심지어는 흉측하게도 느껴졌다. “눈이 왜 그러십니까? 좀 이상합니다.” 내가 궁금해서 물었다. 나와는 먼 친척으로 아저씨벌이 되었으므로 머뭇거리다가 공손하게 말을 건넸다. “아 이거? 몇 년 전에 백내장 수술을 하고부터 이래” “뭐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안과에 가보셔야 되겠습니다” “안과가 어디 있어. 여긴 안과가 없어” 그러고 보니 사는 곳이 시골동네에다, 거기서 산을 한 개쯤 넘은 지역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곳을 지나는 길이 있어 소문으로만 듣던 그를 오랜만에 보고 싶었던 것이다. 막상 찾아보니 진귀한 풍경 속에서 그는 살고 있었다. 뒤는 그리 높지 않은 야산으로 숲이 울창했고, 앞으로는 시퍼런 색채를 띤 개울이 소리 없이 흘렀다. 그야 말로 배산임
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 환공(桓公) 때의 일이다. 어느 해 봄, 환공은 군사를 일으켜 명재상 관중(管仲)과 하북성(河北城) 정벌에 나섰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혹한 속에 지름길을 찾아 귀국 하던중 길을 잃고 말았다. 전군이 진퇴양난에 빠져 떨고 있을 때 관중이 말했다. “老馬之智可用也(노마지지가용야·이런 때 늙은 말의 지혜가 필요하다)”며 즉시 늙은 말 한 마리를 풀어 놓았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행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큰길이 나타나 무사히 돌아왔다. 한비자(韓非子)설림(說林)편에 나오는 ‘노마지지(老馬之智)’의 고사다. 한비는 고사를 바탕으로 이렇게 쓰고 있다. “관중의 총명과 지혜로도 모르는 것은 늙은 말을 스승으로 삼아 배웠다. 그러나 그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이 어리석음에도 성현의 지혜를 스승으로 삼아 배우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잘못된 일이 아닌가.” 세상을 오래 산 노년의 지혜는 젊음의 패기와 열정만으론 풀어낼 수 없는 일들을 해결하는데 빛을 발 할 때가 많다. 아프리카 격언에 ‘노인 한 명이 사라지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말도 있다. 거친 세상을 살아오면서 얻은 지혜는 무엇보다도…
묘책-하멜서신 /신덕룡 저녁나절에 봄비가 왔다. 자자하니 비꽃들 피고 온 동네 길바닥들은 혀를 길게 빼물고 쩝쩝거렸다. 대책 없이 누워 있던 새카맣게 속이 타들어가던 어린모들도 겨우 눈을 떴다. 참는 김에 조금만 더 참으면 어디든 뿌리를 내리면 같은 하늘과 땅 아니겠냐는 따뜻한 실낱 같은 위로였다. 당분간 묘책이 없어도 좋겠다. ‘하멜’을 기억하시는가. 1653년 제주도에 표류한 이래 약 13년 동안 조선 땅에서 살다가 탈출하여 ‘하멜 표류기’를 쓴 네덜란드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7년 동안 강진 병영성에 살던 기록을 토대로 한 시집이 최근에 나왔다. 이른바 ‘하멜서신’이다. 이는 당시 이국땅에서 억류 생활하던 하멜의 처지에 시인 자신의 쓸쓸하고 막막한 내면세계를 겹쳐서 보여주는 매우 희귀하고 감동적인 시집이다. 위의 시에도 그러한 처지와 내면풍경이 잘 드러나 있다. ‘대책 없이 누워 있던’ 대지가 ‘봄비’로 하여 ‘따뜻한 실낱 같은 위로’가 되어 ‘묘책’을 잊게 한다. 특히 ‘자자하니 비꽃들 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