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불 /한영숙 때 아닌 늦장마로 운동꾼들이 휴식에 들어가자 신록은 모처럼 본색을 드러낸다. 웅크렸던 어깨를 활짝 펴고 속잎 부풀려 여기저기서 구애를 한다. 검은 늑골 사이로 가로등 불빛이 풋풋한 살 찧는 소리를 낸다. 한 바퀴 두 바퀴 그 빗속을 걷다보면 한잔 들이킨 낯익은 건장한 사내를 만난다. 늘 핫팬츠 차림이다. 모가지 길게 뺀 위엄서린 수탉 훼치는 울대를 꼭 빼닮은 뒤태의 근육이 어제처럼 뇌리에 스캔되고. 눈 코 입 가늠할 수 없지만 보폭이 재빠르게 바뀔 때마다 빗근이 불룩거린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질주하는 나는 반사적으로 옴찔한다. 그 옛날 습기에 강하다던 아리랑성냥불로 筋肉質에 확 그어댄다면 내 젖은 몸 한 벌 뒤틀리며 서서히 타오를 수 있을까! 대 학 1학년 철없던 새내기 시절에 친구 셋이서 야간열차를 타고 부산역전에 내린 적이 있다. 버스도 안다니는 이른 시각이라 딱히 어디 갈 곳도 없는 우리는 멈칫거리다 해장국을 파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해장국을 시키고 막 자리에 앉았을 때 기름때가 묻어있는 시커먼 작업복을 입은 두 남자가 들어섰다. 노동의 뒤 끝, 작업복 위로도 느껴지는 탄탄하게 뭉쳐진 한 젊은 남자의 근육! 둥그런 탁자를 앞에 두고
기부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을 돕는 인도적 행위이며, 시장경제 체제하에서 복지 실현과 부의 재분배를 촉진하는 보완적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기부가 확대되어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이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해 현행 3천원 이하 15%, 3천만원 초과 25%인 기부금 세액공제율을 38~50%로 상향조정하고, 고액기부의 기준도 600만원으로 낮추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내는 후원금 전액이 어려운 이웃과 해외아동 등에 직접 전달되어 이들을 돕는데 쓰이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업운영을 위한 행정비와 시설 마련에 소요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국내 한 언론사가 지난해 말 기부금 받는 단체들의 투명성과 효율성 검증을 시도했는데, 공시의무가 있는 3천991개 공익법인·단체 중 검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재정정보를 공개한 단체는 큰 기관을 중심으로 19개에 불과하였고, 공개한 단체 중에서도 8개는 효율성(총경비 중 순수사업비 비중)이 70% 이하였으며, 효율성이 50%에 못 미치는 단체도 5개나 되었다. 우리가 낸 기부금이 순수 구호사업이 아닌 단체의 인건비, 시설비 등 간접비에 상당부분 충당되고…
박근혜 정부가 역사의 국정교과서 확정고시 방침을 당초 계획보다 앞당겨 발표할 예정이다. 2일, 이승복 교육부 대변인이 정례브리핑에서 지난달 12일 행정예고된 역사국정교과서 계획을 오는 5일 확정 고시할 예정이었지만 그 예정일을 하루 내지 이틀 당겨질 가능성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를 둘러싸고 현재 우리 사회는 끝없는 ‘역사전쟁’의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 속에서 역사국정교과서 당위와 관련해 우리 학생들이 북한의 ‘주체사상’을 배우고 있으며, 그동안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학자 및 전문가들을 ‘종북’ 내지 ‘좌파’로 매도 내지 호도하고 있다. 역사국정교과서의 반대가 북한교과서의 일부를 보는 듯한 것, 북한의 지령에 의한 것, 북한의 적화통일을 위한 것이라는 등의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북한도 대남매체들을 통해 우리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문제에 맹비난을 퍼붓고 있다. 따라서 문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역사전쟁, 역사국정교과서문제의 쟁점 중에 하나가 ‘북한’의 요인이라는 점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국정교과서의 채택 국가는 북한을 비롯해 베트
태초의 인류는 다른 동물들처럼 사지로 기어 다녔다. 그리고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직립보행으로 진화를 펼치며 인간만의 ‘몸’을 만들었다. 선사시대 인간 ‘몸’은 생존의 최고 가치관이자 삶의 의미였다. 그러나 역사시대로 접어들어 인간이 문화를 만든 이래 지금까지 수 백년 동안 인간의 철학은 오직 ‘정신’만을 위해 존재하여 왔다. ‘몸’은 그저 욕망과 배설의 대상일 뿐이며 철학의 주제에도 끼지 못하는 천박한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최고의 위치에 있던 ‘몸’은 철저하게 ‘정신’이라는 보이지 않는 절대강자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의 머릿속을 지배했던 고대 그리스 철학을 시작으로 서양 철학은 끊임없이 ‘몸’을 고문하고 유배 보냈다. 서양철학의 근원이라 불리는 플라톤의 형이상학을 건너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절대적 코기토에 심취해 철학의 역사는 오직 정신만을 위한 공간으로 자리매김 되어왔다. 그러나 정신이라는 것이…
닭은 울음소리로 여명을 노래 한다고 해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성시 했다. 중국에선 태양을 불러내는 신비의 새라 여겼고 페르시아에서도 아침을 알린다며 빛의 심벌로 삼았다. 이런 상징성으로 인해 닭은 예부터 절대 신에게 바쳐지는 제물의 하나였다. 야생 닭이 언제부터 사육되었는지는 정확치 않으나 전문가들은 대략 6-7 세기경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도 비슷한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시조 설화등이 근거다. 우리의 닭은 맛과 영양, 외모에서 그 명성이 매우 높았다. 중국의 후한서에는 마한의 장미계(長尾鷄)는 꼬리가 5척이나 돼 아름답고, 맛 또한 좋다며 극찬한 기록이 있다. 특히 중국의 의학서인 초본류(草本類) 에는 약용으로선 백제 닭이 최고라 적고 있다. 닭고기는 타 육류에 비해 지방이 적고 소화도 잘된다고 해서 보양 음식재료로 많이 사용됐다. 찜, 적, 탕등 종류도 다양하다. 어린 닭의 뱃속에 여러 가지 고명과 향신료를 채우고 백숙한 후 기름을 넣고 다시 삶아 낸 ‘연계찜’을 비롯 궁중의 잔치 기록에 나오는 ‘승기아탕(勝只雅湯)’도 그것중 하나다. 규합총서에는 ‘승기악탕(勝妓樂湯)’이라 적은 이 음식은 ‘노래나 기생보다 좋은 탕’이라는 뜻의 이름이니 맛과
못 /권덕하 옥탑 다시 환하다 어느 이주자 불 들인 모양인데 웃풍에 설핏 잠 깨면 하얀 입김에 낮은 천장 꽃무늬 실려 있어 처음엔 낯설 것이다 시린 햇살의 국경 넘어 와 벽지에 이울던 남십자성 별빛, 막막할 때 눈길 머물던 그 자리 벽 먼지가 그려놓은 사진틀이 숨표로 변한 못 자국에 걸려 생의 얼개만 남았는데 실 평수에 들지 못한 꿈에 박혀 한 땀 한 땀 십자수 놓아갈 형틀 파인 몸, 몇 바퀴 더 틀면 가족사진 걸 힘도 생길 것이다 - 권덕하 시집 ‘생강 발가락’ 전세난이 심각하다. 전셋값이 상승하면서 깡통전세에 대한 우려도 커지는 추세다. 이에 생활고를 겪는 사람들이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집을 구하기란 쉽지 않다. 어느 이주자가 옥탑에 불을 들였다. 누군가 잠시 살다 이사를 한 방, 잠을 자다 웃풍에 설핏 잠 깨면 하얀 입김에 낮은 천장 실려 있는 꽃무늬와 마주한다. 그 낯선 벽에 먼지가 그려놓은 사진틀이 있고 숨표로 변한 못 자국에는 누군가의 생의 얼개만 남아있다. 이내 어둠은 그 두께를 알 수 없이 몰려오고 나는 어쩌다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했는가, 저 수많은 빌딩 속 아파트 한 채 내 집이 아닌가, 온통 마음 시릴 것이다. 막막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꼭 10일 남았다. 한번의 평가로 인생의 앞날을 판가름한다는 게 불합리하지만 이것도 경쟁인 만큼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학부모들의 노심초사하는 마음도 수험생 못지않아 전국의 사찰과 기도처, 교회 등에서 자녀들의 고득점을 위해 기도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12일 수능시험일까지 남은 열흘동안의 기간은 참 중요하다. 이 기간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마무리하는가에 따라 자칫 운명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10점 이상은 가감이 가능하기에 마무리 전략은 더욱 필요하다. 먼저 수험생들은 수능시험 모드로 일상을 전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남은 열흘 간 수능시간에 맞추어 생활하고, 기상과 취침도 훈련하도록 함으로써 적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각 과목을 공부하는 시간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해오던 공부패턴의 변화를 급격하게 바꾸는 것은 곤란하다. 새로운 것을 공부하기보다는 평소 자주 틀렸던 문제에 대해 오답노트를 만들어 반복적으로 학습하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마음이 조급한 나머지 욕심을 부리는 것은 쉬운 문제를 실수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사교육 방지를 위해 출제경향이 해매다 ‘쉬운 수능’을 지향하고 있어 만점자가…
일부 국민들은 인도적 대북지원을 ‘퍼주기’라고 비난한다. 또 지원물품이 실제 북한주민에게 지원되기보다는 군수용 등으로 쓰일 것이란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이에 통일부는 지난 7월27일 열린 정례 브리핑을 통해 대북지원 구조를 단순지원이 아닌, 남북협력사업을 지원하는 개념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금처럼 단순히 식량, 비료 등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보건의료’ ‘농축산’ ‘산림환경’ 등에서 남북협력 사업을 해야 지원하는 형태로 바꿀 것이라는 것이다. 또 남북교류협력법 상의 대북지원사업 지침에도 ‘민생협력사업 제도’를 신설, 관련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과거의 구호·지원 차원의 대북지원이 개발·협력 차원으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추진해 온 모자 보건사업, 복합 농촌단지 사업 등이 대표적인 사례가 된다. 대북 협력사업을 모범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지자체는 경기도다. 경기도는 북한 내에서 심각한 다제내성 결핵환자 치료지원, 개성한옥 보존사업, 국제양궁대회, 국제 유소년 축구대회 등 지자체 최대 규모의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북 지원문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고, 광역지자체 남북교류협력 거버넌스 구축을 주도하는 등
10월만 되면 괜히 초조하고 곤혹스러워집니다. 온갖 연례행사가 이어지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조용해지던 ‘독서의 계절’이 아예 ‘노벨상의 달’ ‘노벨상의 계절’로 바뀐 것 같습니다. 받아야 할 상을 받지 못했다는 듯, 때가 됐는데도 받지 못했다는 듯 너무나 섭섭해 합니다. 무슨 일만 일어나면(노벨상의 경우에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일자리를 늘리거나 돈을 더 들이게 되는 현상도 이어집니다. 올해도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투자가 늘어난다는 계획이 발표되었습니다. 지난해만도 18조원의 정부예산을 연구개발(R&D)에 투입하여 정부·민간을 합친 우리나라 총 연구개발 투자율은 OECD 국가 중 1위였답니다. 이렇게 하다가 성급한 사람들로부터 그 돈 다 어떻게 했느냐는 원망이 일게 될까봐 초조해지기도 합니다. 선생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왜 아무 말씀이 없습니까? “여러분! 이제 그만 조용히 기다립시다!” 교실에서처럼 그러실 수는 없겠지요. 하기야 이젠 용어조차 거의 소멸된 ‘치맛바람’ ‘지나친 교육열’도 긍정적으
10월29일은 ‘지방자치의 날’이다. 지난 2012년 지방자치 시행의 계기가 된 1987년 헌법 개정일인 10월29일로 제정된 올해 지방자치의 날에 정종섭 행자부 장관은 “지방의 발전 없이는 국가의 발전 또한 불가능하다는 신념으로 중앙과 지방이 지방자치 발전을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며 “지방자치 20년의 성과를 토대로 이제 국민행복 100년을 위해 손을 맞잡고 나가자”고 당부했다. 구구절절이 맞는 얘기다. 지방자치 20년을 지나면서 나온 주무장관의 말처럼 사실 지방과 국가는 떼어놓고 생각할래야 생각할 수 없는 관계다. 지금이야 다양한 이유로 다민족사회와 노령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준비가 언급되고는 있지만 지역과 종교, 민족 등의 뿌리깊은 이질감으로 주구장창 분리 독립 얘기가 나오는 다른 나라들과의 비교조차 어줍잖은게 대한민국이다. 지방자치 시행 이후 지방은 정말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서울도 아닌 수도권이라는 명분 아래 경기와 인천을 서울의 일개 변방으로 묶어 온갖 규제의 족쇄로 채워 서슬퍼런 ‘역차별’로도 막지 못할 만큼 치고 올라온 도시의 성장과 시민의 성숙함은 경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