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쯤이면 시골 친구들과 마을 뒷산에 올라 만개한 진달래꽃을 따던 기억이 난다. 배고픈 시절이던 까닭에 탐스러운 꽃송이는 어느새 입으로 향하고 달콤함에 침이 가득 고였다. 한참을 먹다 보면 배고픔을 달래는 한 끼 식사로도 충분했다. 덕분에 손과 입술은 진달래꽃 색소로 붉게 물들고 그 손으로 이마난 땀을 훔치며 더 신이 나 꽤나 뛰어 놀았다. 그리고 어스름 저녁 무렵, 한 아름 가지를 꺾어 집으로 돌아올 때 들리던 두견새의 구슬픈 울음소리와 꺾어온 진달래를 장독 큰 항아리에 꽂아 두고 오래오래 감상하던 기억도 새롭다. 진달래꽃을 보며 어린 시절이 생각나는 건 나뿐만이 아닌가 보다. ‘울긋불긋 꽃대궐…’을 읊조리지 않아도 고향을 느낀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다. 진달래꽃은 우리나라 전역 어디서나 쉽사리 볼 수 있는 꽃이다. 해마다 봄이 오면 온통 앞·뒷산이 진달래꽃으로 뒤덮여 분홍으로 물들어서다. 고향을 떠나 있는 사람들이 고향 뒷동산에 아름답게 피어 있을 진달래꽃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곳에는 영락없이 어린 시절 이산 저산을 헤매며 진달래꽃을 꺾던 추억이 깃들어 있고. 따라서 진달래는 고향을
출세 /신미균 참깨과자 부스러기를 먹으려고 개미들이 기어가고 있다 줄은 문 앞에서 무서리를 따라 방 끝을 넘어 마루를 가로질러 땅바닥까지 이어져 있다 줄 맨 끝에 있는 개미 한 마리를 핀셋으로 집어 올려 과자 바로 앞까지 옮겨주었다 ― 신미균 시집 『웃기는 짬뽕』, 푸른사상 출세’라는 말에 우리는 목말라있다. 여기서의 출세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나 신분에 오르거나 유명하게 됨’을 이른다. 출세의 배경에는 ‘경쟁’이란 단어가 버티고 있다. 경쟁은 공정해야 한다. 누군가 핀셋으로 집어 앞자리에 옮겨준다면 이것은 올바른 경쟁인가? 진정한 출세인가? 그러나 세상엔 이러한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늘 시끄러운 사건이 발생한다. 출세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방식으로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기분’으로 규정하면 어떨까. 순간순간 출세하고 타인의 출세에 아낌없이 축하해주는 세상,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이미산 시인
결혼하기 딱 좋은 계절이다. 신록은 날로 푸르러가고 꽃들은 지천으로 피고 진다. 곳곳에서 크고 작은 웨딩페어를 열어 예비 신혼부부의 관심을 끌기 위한 각종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더욱이 올해는 입춘이 두번 있는 ‘쌍춘년’이라 하여 원하는 날짜에 결혼식장 구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결혼 적령기를 넘긴 자녀를 둔 보모는 그들대로 걱정이 있고, 예비 사위나 며느리를 둔 부모는 또 그들대로 살림집 마련, 예단, 혼수 등 결혼 비용 문제로 걱정이 많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삼포세대를 넘어,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해야 하는 오포세대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의례가 중시되던 전통시대, 관혼상제는 가문의 전통과 권위를 보여주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에 절차와 방법을 철저히 지켜왔다. 시대 변화에 따라 실용화·간소화되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혼인은 여전히 경제적 부담을 안고 있다. 치솟는 전세에 주변의 이목, 체면의식이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더구나 두 집안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통계청 사회조사 설문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8.9%가 결혼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
작년 4월 인천항에서 떠난 배는 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채 깊은 바다 속에 잠겨있다. 무책임한 세월호 선장·선원들, 해경의 부실 구조, 대통령의 7시간 부재 등으로 나타난 초기 구조의 매뉴얼과 리더십 부재는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남겼다. 그렇다면 세월호 사고 이후 남겨진 숙제를 현명하게 풀어가고 있는가. 정부는 세월호 사고를 반면교사로 삼기는커녕 하석상대의 자세로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구조 실패의 책임을 물어야 할 해경에게는 해경 하급 지휘관 한 명만 법적 책임을 물었을 뿐 고위 공직자에 대해서는 경징계로 처리했다. 이후 관대한 처벌에 대해 변명이라도 하는 듯이 ‘해경 해체’라는 카드를 제시하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작년 11월 출범한 ‘국민안전처’는 재난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표방했지만 예산 절반 가까이를 인력증원에 씀으로써 재난 예방·대응훈련, 관련 운영보다는 인력 증원에 노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재난 현장 대응 인력보다는 고위직과 일반 행정직을 늘려가면서 말이다. 이런 행보는 세월호 이후 발생한 사고에서 허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꼴이 됐다. 또 정부는 유가족을 한 번 더 벼랑 끝으로
이른 바 ‘성완종 리스트’에 국회와 정치가 올스톱되는 위기를 맞고 있다. 어차피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기다려야 하는 마당이지만 온 국민의 눈은 여기에 쏠려 있다. 국정을 막힘없이 수행하겠다고 하지만 이완구 총리는 총리대로 돈을 받았다는 의혹에 힘을 잃어버렸다. 야당은 또 총리에 대해 해임건의안을 내놓겠다고 정치공세를 계속 하고 있다. 어차피 ‘식물총리’가 된 마당에 그만두고 수사를 받으라는 얘기다. 가뜩이나 대통령이 부재 중인데 국정마저 올스톱 위기에 몰려서는 안 된다. 경제는 경제대로 안갯속을 헤매고 있다. 4·29 재보선은 며칠 남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관심 밖이다. 여야가 서로 ‘성완종 파문’의 손익계산서를 따지느라 골몰하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따가울 뿐이다. 성남중원 관악을 인천서구강화을 등 3곳의 선거구 모두 여야가 접전을 벌이고 있다. 이렇게 되면 부동층 유권자들의 표심은 ‘성완종 리스트’ 수사의 향방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재보선 자체가 오리무중이 될 공산이 크다. 국회는 각 상임위원회 별로 법안심의에 들어갔다. 산적한 민생법안처리보다는 오히려 ‘성완종 파문’과 재보선에 쏠린다. 야당은 ‘비리 게이트’ 공세에 총력전을…
송산그린시티 국제테마파크사업은 경기도 화성시 신외동 송산그린시티 동쪽 420만109㎡ 부지에 미국 유니버설스튜디오를 본뜬 5조1천억원 규모의 USKR(유니버설스튜디오 코리아리조트)라는 국제적 수준의 테마파크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2007년 경기도와 화성시, 한국수자원공사, USKR㈜간 MOU 체결 이후 8년 동안 추진됐지만 수자원공사가 공급가격을 높게 책정하는 등 문제점이 발생하면서 표류했다. 이에 정부는 이 사업을 의욕적으로 재추진키로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6차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주재, 송산그린시티 를 투자활성화 대책 주요 안건으로 채택하고, 공모방식을 도입하는 등의 방안을 발표했다. 이후 정부 관련 부서에서는 작년 10월부터 ▲개발 예정지 내 저밀도 공동주택 허용 ▲부동산 투자이민제 도입 ▲기반시설 설치비용 지원(정부 50%, 경기도 25%, 화성시 25%) ▲토지 무상임대 등 공급방안 ▲토지 현물출자 ▲토지 분할 매각 ▲테마파크 외 타 개발사업추진 가능성 검토 등 국제테마파크 투자 가치를 높이기 위해 화성시·경기도와 협의해왔다. 송산그린시티 조성사업 근거법인 산업입지법개정안도 국회본회의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좋은 소식이다. 화성
와글와글 끓어오르는 만개한 웃음. 웃음은 날개를 달고 풀풀 날아올라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지난밤을 기점으로 흐드러지게 핀 벚꽃, 축제가 시작된 것이다. 분홍 꽃잎에 하늘거리는 뭇 사람들의 감성도 벚꽃 사이 기웃거리는 꿀벌에 섞여 춤을 추는 시간. 밤이 되자 더 화사해지는 향기, 선을 넘은 유혹은 간혹 또 다른 흥분으로 이어져 고성방가로 떠들다 마침내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게도 한다. 벚꽃에 취한 사람들, 벌들에 취한 벚꽃들의 축제. 일 년 중 딱 한 철, 그 한 철의 며칠을 벚나무는 또 얼마나 기다려왔을까. 꽃을 피워내야 한다는 벚나무의 소명을 다 해내기 위해서 말이다. 막을 내린 축제의 끝은 늘 그리움이다. 뭇사람들이 거쳐 간 발자국과 더불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그 화려했던 꽃들의 기억. 사람들은 결코 돌아보지 않는다. 꽃이 떨어진 벚나무는 그저 가로수일 뿐 그에게 꽃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듯 무심코 지나칠 뿐이다. 이제 꽃을 기억하는 그리움은 벚나무 혼자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또 다시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참아내야 할 긴 담금질의 시간이 될 것이다. 마치 언젠가 빛날 생의 그날을 기다리며 매일을 참아내고 있는 뭇 사람들의 인고의 시간처럼 말이다. 사람
메좁쌀을 씻어 고슬고슬하게 밥을 짓고 무는 채 썰고 파는 5㎝ 길이로 자른다. 생강과 마늘을 곱게 다지고 고춧가루는 따뜻한 물에 불린다. 적당히 마른 갈치를 5㎝ 정도로 썬다. 조밥과 잘라둔 갈치, 생강, 마늘, 소금, 물에 불린 고춧가루를 넣고 버무려서 항아리에 담고 5~10일 정도 지난 뒤에 무채를 소금에 살짝 절인 다음 꼭 짜서 넣고, 다시 항아리에 담아 3~5일간 익힌다. 경상도 남해안 지방에서 즐겨 먹는 별미로, 예부터 밥반찬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는 갈치식혜 만드는 방법이다. 명태, 가자미 식혜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식혜로 불린다. 그러나 갈치가 유명한 것은 오랫동안 우리의 식탁을 풍요롭게 하고 있는 생선이기 때문일 것이다. 짭조름한 밥도둑 갈치조림을 비롯, 갈치구이, 갈치국, 김치 담글 때 부재료로서 널리 이용되고 있는 갈치속젓과 갈치통젓, 그리고 별미인 갈치회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입맛 돋우지 않는 것이 없어 더욱 그렇다. 갈치란 이름은 형태가 칼과 같이 생긴 데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칼’을 ‘갈’이라 했던 옛 신라 지역에서는 갈치라 부르지만 그 밖의 지역에서는 대부분 ‘칼치’라 부른다. 우리말 뿌리를 적은 조선시대 어
이 연장이 사는 법 /이향지 이 연장은 조금 안다 흙을 판다 흙을 덮는다 나는 파지 팔지 않는다 나는 흙이 조금 묻어서 돌아온다 나는 굳이 흙을 씻지 않는다 물이 마르면 흙은 알아서 떨어져 간다 흙을 파고 덮는 짧은 사이에 씨앗을 넣었다 흙은 알아서 길게 먹이고 재우고 키워 준다 씨앗은 알아서 일찍 죽거나 서리 내릴 때까지 산다 이 연장은 죽은 것을 캐거나 산 것을 옮길 때도 사용된다 흙은 알아서 가슴을 뜯어 주거나 엉덩이를 들어 준다 흙은 알아서 남몰래 삭이거나 뼈를 남겨 준다 흙이 문을 닫고 겨울로 떠나면 이 연장도 알아서 쉰다 이 연장의 끝은 놀고 있을 때 빛이 죽는다 ― 이향지시집 〈햇살 통조림/천년의 시작〉 이 연장은 정말 조금만 알까? 무엇을, 어떤 것을, 우리가 흙에 대해 아는 것처럼, 흙에 대해 모르는 것처럼, 그러나 파지 팔지 않는 연장이다. 모든 것을 사고파는 것에만 열중하는 세상에서 이 연장은 파지 팔지 않는다. 고집이다. 고귀함이다. 이 조금은 너무 깊은 조금이다. 흙에 대해서도 조금 묻어서 돌아온다. 깊이 묻히지 않는다. 그러나 이 연장은 죽은 것과 산 것 모두에 관여한다. 그래서 흙이 문을 닫고 겨울로 떠나면 알아서 쉬기로 한다. 마
빛과 색의 신비를 푸는데 평생을 바쳤던 위대한 철학자이고 과학자이며 대문호였던 독일의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대화(對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금으로 만든 왕이 뱀에게 묻는다. “금보다 찬란한 것이 무엇이냐?” 뱀이 “빛입니다.”라고 답했다. 왕이 다시 묻는다. “왜 빛이 금보다 좋으냐?” 뱀이, “금이란, 자기 자신만을 밝힐 수 있지만, 빛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물을 포함해서 만물을 비춰주기 때문입니다.” 왕이 다시, “빛보다 좋은 것은 무엇이냐?” 뱀은, “대화(對話)죠”, 라고 대답했다. 왕이 또 묻는다. “왜 대화가 빛보다 좋으냐?” 뱀이 답한다. “인간은 황금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 대화를 하지 않고서는 상대를 확인하고 자신을 발전시킬 수 없지만, 대화를 통하면 상승(相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했다. 인간은 대화를 통해서 서로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점에서 다른 동물과 구분된다. 인간은 서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