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데일리메일은 지난 14일 “시험이 주는 중압감을 나쁜 것으로 본다면, 잠시 한국 학생들을 동정하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전제하고, 일시에 수십만 명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둘러싼 우리 한국 사회의 모습을 분석했다. 먼저, 수험생에게 길을 양보하기 위해 정부와 공공기관, 기업들이 출근시각을 1시간 늦추고, 차량이 통제되며, 지각생을 위한 경찰차와 오토바이가 곳곳에 배치되는 모습을 전했다. 또 영어 듣기평가 때문에 항공기 이착륙이 금지되는 등 전국이 ‘침묵 상태(‘hush’ mode)’가 되는데, 이러한 ‘배려’는 사실은 어린 학생들에 대한 ‘압박’을 의미하는 것으로, 한국에서는 수능 점수가 좋으면 최상의 대학은 물론, 좋은 직장과 결혼 등 평생을 좌우할 열쇠가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에 대한 우리의 시각(視覺)이다. ‘수능현상’에 거의 익숙해져서 오히려 당연하게 여긴다. 그 기사를 ‘역수입’하여 전한 신문을 봤더니 마치 흥미로운 ‘해외토픽’을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조선22대 왕 정조 임금이 쓴 두종류의 편지첩이 소장되어 있다. 하나는 정조어필(正祖御筆)이라는 것으로 신하인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첩인데 모두 2첩으로 그 첩에는 36건의 정조 친필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외삼촌인 홍낙임에게 보낸 편지첩이다. 정조신한(正祖宸翰)이라 부르는 첩과 두루마리 30건이다. 이 두 종류의 편지들은 모두 다른 날짜의 편지들을 수신자쪽에서 받은 후 모아 두었다가 첩으로 만든 것이다. 정조가 4년동안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에는 정치현안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반면 외삼촌에게 보낸 편지에는 지나간 일에 대한 그리움을 말하기도 하고, 어머니의 환후에 대한 걱정과 문안 등 집안의 경사에 대해 안부를 묻는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편지는 왕뿐만이 아니라 세종 당시부터 궁중과 민간을 불문하고 정치와 생활상에 많이 오고 갔다. 가장 오래됐다는 정철(鄭澈)과 그의 어머니 안씨(安氏) 사이에 내왕한 편지를 비롯, 윤선도(尹善道)·송시열(宋時烈)·김정희(金正喜) 등을 비롯하여 남녀 귀천을 막론하고 조선조 말기에 이르기까지 약 400편이라는 한글편지가 현존하고 있다. 이렇듯 조선시대 편지는 왕부터 서민
온난화가 없었던 과거 겨울철은 매우 추워 난방을 위하여 지게를 짊어지고 산, 들판을 다니며 땔감을 구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무는 겨울 난방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여 북한의 민둥산처럼 나무를 베어내고 긁어내어 푸른 초목과 울창한 숲은 헐벗은 산이 되어 폐허가 되었다. 비가 조금와도 홍수가 범람했고 산사태가 일어나자 정부는 나무 채취를 법으로 엄격히 금지시키고 연탄을 유일한 대체 수단으로 삼았다. 연탄은 방을 따뜻하게 했고 언제나 밥과 국을 끓일 수 있기 때문에 도시와 농·어촌은 앞다투어 연탄 화덕과 보일러를 놓았다. 늘어난 수요를 위하여 서울 근교에 35만장 찍어내는 삼천리 공장을 비롯하여 전국 400여개 공장이 생겨 생활에 큰 혁명을 일궈냈지만 문제는 연탄가스였다. 연탄가스로 인하여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럼증에 시달렸고, 하룻밤 일가족을 사망시킬 정도로 무서운 존재가 되어 잠들기 전 동치미 국물을 머리맡에 떠다놓는 민간요법도 개발되었다. 연탄은 화력이 좋고 가격도 싼 편이지만 서민들에게 만만치 않은 가격으로 풍요와 빈곤의 기준이 되었다. 부잣집은 한 겨울을 지낼 수 있는 연탄을 창고에 쌓았지만 가난한 집은 돈이 생기는대로 서너장씩 구입할 수 밖에 없
축산업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고 굶주림에서 벗어나는 것이 목표였던 1960년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선진국처럼 충분한 우유를 먹이고 싶다는 희망을 주위에 자주 피력했다고 한다. 그런 박 전 대통령이 1964년 서독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선진낙농의 현주소를 목격한 고 박 전대통령은 당시 서독 뤼브케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한다, ‘우리 국민도 우유 한번 마음껏 마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국 낙농발전을 선도할 시범목장 건립지원을 간곡히 요청했다고 한다. 가난한 나라 대통령의 ‘진정성’ 있는 바람은 독일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이를 흔쾌히 받아들인 서독정부는 건물과 기계장비, 젖소 200여 마리를 지원키로 약속했다. 그로부터 4년후 탄생한 것이 한독 목장이었다, 고 박 대통령은 이 목장을 누구보다 사랑했다고 한다. 때문에 공사이전부터 지대한 관심을 보였는가 하면 아무런 예고도 없이 공사 중이던 목장을 4차례나 방문할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1969년 여름엔 17세 소녀였던 딸 박근혜 대통령을 데리고 육영수 여사와 함께 공사가 한창인 경기도 안성의 현장을 찾기도했다. 박 전 대통령은 방문 때마다 우사(牛舍)에 들러…
한 백령도 주민이 최근 텔레비전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신도시 같죠. 며칠 전부터 쫙 깔려있는데 내가 진짜 놀랐다니까요” 우리나라 서해5도 어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불법 조업 중국어선들 얘기다. 참 분통이 터진다. 도대체 우리나라에 주권이 있기는 한 건가? 서해5도는 중국 땅인가? 이런 실정에서 한-중 FTA 성과만 자랑하고 있는 정부가 참 한심하다. 일본의 눈치를 보느라 독도 입도시설 공사를 전격 중단한다는 발표를 한 이 정부는 ‘신도시 불빛’처럼 우리 바다에서 휘황찬란하게 불을 밝힌 중국어선 단속도 손을 놓고 있다. 이웃나라에 인심이 참 넉넉한 정부다. 물론 단속을 안 하는 건 아니다. 중국 어선들은 주로 늦은 밤에 불법 조업을 벌인다. 게다가 서해 5도 우리 어장은 북방한계선 NLL과 가까워 해경이 단속에 나서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이래서 남북관계가 중요한 거다. 남북이 힘을 합쳐 강력하게 중국어선을 단속하면 감히 침범하지 못한다. 이 시점에서 해경을 해체한다는 것도 문제가 있다. 참다못한 옹진군수가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해양경찰청 해체기를 틈타 중국 불법어선들이 서해에서 우리 어민들의 어족자원을 싹쓸이 한다고 하소연했다. 조윤길 옹진군수는…
다문화가족에 대한 국민들의 깊은 관심과 정부의 과감한 지원정책이 절실하다. 이제는 국민들이 다문화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그들 가족이 한국에서 적응하며 행복하게 살아 갈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주어야 할 때이다. 상이한 사회 환경에 따라서 고통받는 다문화가족을 위해서 시민단체와 지자체가 앞장서야 한다. 인천시가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내실 있는 다문화가족 지원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다문화가족 정책추진계획을 수립하는데 기대가 모아진다. 앞으로 결혼 이민자 한국어 심화교육, 학력신장사업, 위기가정가족치료 및 행복프로그램 등 6대 분야 19개 사업이 담길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지자체는 앞으로 한정된 재정여건을 고려하여 관련기관 간의 협력을 통해서 다문화가족에게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 주어야 할 것이다. 다문화사업에는 전문가를 참여시켜서 효율적인 사업추진을 해야 할 것이다. 2014년 1월 현재 인천시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은 8만2천523명으로 전체 인구의 2.9%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국제결혼으로 인한 결혼이민자는 1만4천564명으로 전년대비 5.6%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사회통합과 발전차원에서 이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다양한 체험과 교
최근 비정규직 노동 문제를 다룬 영화 ‘카트’의 열기가 뜨겁다. 블록버스터 ‘인터스텔라’에 이어 박스오피스 2위를 달리며 선전 중이다. 영화는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으로 인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량 해고되는 사태가 발생한 실제의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외환위기로 구제금융을 받을 당시에 노동유연성을 높이라는 IMF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비정규직은 급증하게 되었다. 기업은 당연히 고용과 해고가 손쉬운 비정규직을 선호하고, 구직난에 내몰린 사람들은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비정규직이라도 고마워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고용의 남용과 차별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결국,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 금지와 기간제 근로자의 총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비정규직 보호법’이 2006년 11월30일 국회에서 통과되고, 2007년 7월1일 30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었다. 그러나 이 법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을 해결하겠다는 좋은 취지와는 달리 역효과와 ‘변종’ 비정규직만 양산했다. 1년 단위로…
차가운 늦가을 바람이 산등성을 넘어가자 상수리나무가 즐비한 산비탈엔 상수리나무 낙엽들이 지천으로 많다. 윤이 반질반질한 낙엽들. 싱그러운 낙엽들이 쌓여있는 곳을 지나면 발바닥이 푹신하며 경쾌하다. 그 싱싱한 낙엽을 밟으면 바스락거리는 경쾌한 리듬 때문에 내 머릿속까지 상쾌하다. 나뭇가지들과 지금 막 이별을 고하고 땅을 비옥하게 하기 위하여 한없이 하강하는 숭고한 낙엽들. 머잖아 그 낙엽들은 눈비와 바람을 맞으며 얼었다가 녹았다가 반복하여 마지막 겨울을 통과한 다음엔 나무들의 거름인 부토가 되어 봄날 재생할 것이다. 낙엽을 밟으면 지난 시간들이 바스락거리며 다가온다. 상수리나무 그늘 아래서 작열하던 태양이 떠오른다. 불이 타오르는 듯한 하늘의 붉은 열기를 상수리나무의 잎들이 막아주었다. 그 작열하는 불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마치 어린 아기의 머리를 감싸 안은 어머니처럼... 별안간 한바탕 소나기가 뜬금없이 향연을 베푸는 동안 상수리나무 아래에 서면 사나운 빗줄기를 피할 수 있었다. 나긋한 비서처럼 혹은 호위무사처럼 아니 경호원처럼 빗줄기의 난폭한 세례를 막아준다. 그러나 그 상수리나무 잎새들이 지금은 이렇게 푸근하게 쓰러져 누워있다. 반질반질한 상수리나무…
태초 우주에 주인이 있었다면 그 주인은 조물주(하나님) 오직 한 분이셨을 것이다. 옛날 시골 땅은 무허가 건물에 맹지가 많았다. 옆집 안마당을 통해 건너 집을 다녔고 누구 소유인지 모를 논두렁길을 따라 구석에 있는 자기 논에 벼를 심고 추수를 했다. 그 누구도 내 길이라며 길을 막지 않았고 만약 그런 사태를 일으킨 자가 있다면 그것은 외지사람이 땅을 사서 인심 고약한 행세를 한 경우에 해당하였다. 지난달 이화여대 정문 앞에 작은 컨테이너 하나가 들어섰다. 소유주는 한걸음도 물러설 생각이 없다고 한다. 작은 부지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사실여부를 모르겠으나 이화여대 측에 평당 1억 원을 요구했다고 한다. 법적인 문제를 떠나서 소위 ‘알박기’ 하듯이 시세의 몇 배 이상의 큰돈을 요구하고 나선 것처럼 보인다. 지금도 대한민국은 도시개발 때문에 어떤 사람은 한 순간 졸부가 되거나 한 순간 거리에 나앉기도 한다. 운이 좋아 수용되지 않는 개발지역 주변에 있는 땅은 개발 덕분에 부지 가격이 상승하게 된다. 대한민국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평지보다 산이 많은 지세이다. 옛부터 농업국가 이었기 때문에 땅을 확보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인 요소였고 인구에 비해
해적의 역사는 길다. 기원전 8세기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등장할 정도다. 고대 지중해와 에게해에도 해상무역이 번성하며 해적들이 들끓었다.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조차 해적에게 붙잡히는 수모를 당할 정도였다고 한다. 로마제국이 붕괴하고 해상무역이 쇠퇴하면서 지중해 해적은 소멸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스칸디나비아의 반도를 중심으로한 해상에서 바이킹이라는 해적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바다 뿐 아니라 유럽의 연안 여러 지방으로 침입·상륙하여 교회·수도원·영주(領主)의 성관(城館)을 습격, 재보를 약탈하기도 했다. 해적들은 18세기 초까지 카리브해와 대서양을 중심으로 기승을 부리며 명성(?)을 높혔다. 그리고 그 중심엔 여자 해적도 있었다. ‘앤 보니’와 ‘메리 리드’라는 두 여자가 그들인데 1720년 해적 활동을 한 죄로 영국에서 재판을 받았다는 기록도 있다. 해적에 관한한 동양에선 일본이 대표적이다. 왜구라 불린 해적은 14세기 중엽 한반도를 비롯, 중국 산동지방까지 세력을 넓히면서 노략질을 일삼았다. 그러나 중국도 만만치 않다. 18세기들어 왕조 교체기에 해적의 창궐이 더욱 심했다. 그 중 대표적인 해적이 청나라시대에 장보(張保仔)인데 홍콩 근해를 근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