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할 때면 뉴스나 신문에는 단골처럼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거리의 시민들에게 “새해에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 모습이다. 저마다 건강, 취업, 주거 안정 같은 소망을 말한다. 소중한 질문이지만, 한편으론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노력하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만약 개인이 아무리 애를 써도 구조적 장벽에 그 소원이 가로막혀 있다면, 우리는 개인의 다짐 이전에 공동체가 무엇을 변화시켜야 하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마침 올해 연말,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지점들이 다시 확인되었다. 최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청년 삶의 질 2025’ 보고서를 보면 건강, 고용, 주거 등 62개 지표가 보내는 신호가 엄중하다. 지난해 청년 자살률은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열 명 중 세 명은 육체적·정신적 에너지가 소진된 ‘번아웃’ 상태다. 학업이나 취업으로부터 멈춰 선 ‘쉬었음’ 청년도 72만 명으로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았다. 특히 내년을 준비하며 눈여겨볼 대목은 바라는 미래에 대해 ‘전혀 실현할 수 없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7.6%에 달한다는 점이다. 이는 202
지난주 뉴욕 방문길에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를 보게 되었다. 이 공연은 우리나라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가 아시아인 최초로 뮤지컬 본고장인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리드 프로듀서를 맡아 기획부터 제작까지 주도한 작품이다. 2024년 3월에 브로드웨이를 시작으로, 올해 4월엔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그리고 지난 8월엔 서울에서도 공연하였다. 겨울밤 찬 공기에 비도 내렸는데, 공연을 보러 온 인파로 극장 안은 오히려 훈훈할 정도였다. 나처럼 여행 중에 극장을 찾은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근무를 마친 직장인들을 비롯해 크리스마스 시즌에 벼르고 뮤지컬을 보러 온 현지인들이 대부분인 듯했다. 멋지게 차려입고 칵테일 한 잔씩 들고 극장 안으로 들어오는 상기된 표정들이 그렇게 보였다. 공연이 끝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주인공 제이 개츠비 역을 맡은 국민 배우 제레미 조던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아낌없는 박수 소리를 들으며, ‘위대한 개츠비’가 미국민들에게 주는 감흥은 남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 소설 ‘위대한 개츠비’가 출간된 건 1925년이다. 당시 미국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산업 생산국이 되어 호황을 누렸지만, 과소비와
청계천을 복개해 도로로 만드는 공사가 일제강점기인 1937년에 시작됐지만 미완으로 끝난 채 광복을 맞이했다. 1958년 6월에 재개됐고, 도성 안의 구간이 1960년 4월에 끝나면서 원행을묘 백리길의 행차가 건넜던 광통교도 묻혔다. 40여 년 후인 2003년 7월에 이명박 서울시장의 주도로 청계천의 복원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2005년 10월에 완료하면서 광통교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많은 교통량을 감당할 수 없어 서쪽 150m 지점으로 옮겨 복원했다. 복원된 광통교의 길이가 지금의 청계천 폭보다 짧다. 청계천이 옛날보다 넓게 복원됐기 때문이다. 광통교의 밑으로는 청계천의 맑은 물이 사시사철 일정하게 흐르는데, 그 양이 생각보다 많다. 한강의 물을 24시간 일정하게 퍼 올려 흘려보내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옛날 청계천의 평상시 물은 지금보다 적었다. 자연 상태의 물을 그대로 유지하려 고집했다면 도심 속 휴식의 공간으로서는 좀 아쉬웠을 것 같다. 지금의 청계천 모습이 좋다. 광통교의 기둥 아래쪽에는 庚辰地平(경진지평), 癸巳更濬(계사갱준), 己巳大濬(기사대준) 세 개의 큰 글씨가 새겨져 있다. “경진년(1760)에 청계천의 바닥을 평평하게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다(歲月如流水)’고 하더니, 소설가 김용성 선생을 저 먼 나라로 떠나 보낸 지 벌써 14년이 지났다. 중앙대학교 병원에 누워 급작스럽게 필자를 호출하시기에 그동 안 좋지 않았던 허리 수술 때문이겠거니 했는데, 이미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었다. 병상의 선생은 필자의 손을 붙잡고 세 가지 부탁을 했다. 하나는 젊은 날의 역작 ‘한국현대문 학사탐방’을 재출간하는 일, 다른 하나는 그동안 쓴 에세이를 책으로 묶는 일, 그리고 마지막 으로 다른 비평가나 연구자들이 쓴 김용성론을 책으로 출간하는 일이었다. 다른 논의가 필요 없었다. 즉시 서두르겠다고 대답했다. 정말 급하게 서둘렀다. 그래도 6개월이 족히 걸렸다. 마지막 교정을 마칠 즈음에 연락을 받았다. 떠나셨다는 비보였다. 혼자 앉아서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오래 울었다. 누구보다도 필자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해준 선배였다. 내게 남긴 유언이 있었다. 세 권의 책을 진행하여 ‘한국현대문학사탐방’ 복원판과 에세이집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및 작가연구 총서 ‘김용성론’을 간행하고, 그 이듬해 문학의집서울에서 추모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행사를 마치면서 다시 또 서럽게 울었
경기도의 현 학교폭력 대응 시스템이 ‘교육적 개입’보다는 ‘법적 절차 이행’과 ‘응보적 처벌’ 등에 치중되면서 본연의 교육적 기능이 상실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경기도와 경기의회가 개최한 ‘도내 학교폭력 실태와 제도 개선’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최근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그 수법이 다양화되고 있는 학교폭력에 대한 대응 시스템의 전면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학교가 고작 학폭 사후 대처에 허둥대기만 하는 현실은 하루빨리 혁신돼야 한다. 지난 19일 파주시 다누림 노인복지관 대강당에서 열린 ‘2025 경기도 정책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최근 5년 간 학교폭력의 형태가 사이버폭력·성폭력 등으로 다양해지고 폭력 피해·가해 응답률도 증가하면서 현행 대응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토론회에서 이근영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은 “학교는 사법기관이 아닌 교육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있다”며 “교사들은 (학교폭력 대응에 있어) 교육적 전문가가 아닌 법적 절차 관리자로 전락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연구위원은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학생의 성장을 돕는 회복적 정의 관점을 도입하고 갈등 초기 개입을 의무화하는 ‘교육적 기능 회복’, 교육 전문가 참여
[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 ]
그 신통함을 깨닫지 못하고 무심히 대하는 것 중에, ‘오감(五感)의 작용’이 있다. 인간은 ‘듣다’, ‘보다’, ‘냄새 맡다’, ‘맛보다’, ‘만지다’ 등 오감을 통해서 바깥 세계의 외물과 교감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앎을 쌓아간다. 개인의 앎도 그러하고 인류의 지혜도 이를 바탕으로 쌓아 올린 것이다. 이렇듯 ‘느껴서 알고 깨닫는’, 인간의 지각(知覺) 작용은 오묘하다. 오감의 지각 작용은 인간이 자신을 존재론 차원에서 이해하려고 할 때, 의미 있게 다가온다. 가령 신화 이야기에 등장함 직한 가정을 적용하여 이런 물음을 던져보자. 금방 오감에 대한 존재론적 자각이 온다. 오감 중에 어느 하나에 특별히 초능력을 부여받을 수 있다면 당신은 어느 감각이 강화되기를 청하겠는가? 반대로 당신이 어떤 징벌로 이 중 어느 하나를 소멸해야 한다면 당신은 어느 감각을 포기하겠는가? 이런 물음에 내 답을 구해 보는 일은, 나의 존재됨에 대해서, 그리고 내 존재됨의 조건에 대해서, 상당히 실존적이고 현상학적인 깨달음으로 우리를 나아가게 할 수 있다. 순정한 상상력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은 ‘청각’의 시·공간을 중시한다. 독일의 예술성 드라마가 라디오 드라마에서 발원하여 현대적 진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이 결연한 목적을 내세워 입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번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고의 또는 과실로 불법정보, 허위정보, 허위조작정보를 유포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힐 경우 손해액의 최대 5배에 달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도대체 허위란 무엇인가? 1960년, 뉴욕타임스는 앨라배마에서 일어난 민권 운동 현장의 참혹함을 담은 광고, “그들의 높아지는 목소리를 들어라”를 실었다. 민권 운동에 앞장서고 있었던 남부 흑인 목사들의 연서로 큰 울림을 준 이 광고에는 거짓이 섞여 있었다. 진실과 허위가 뒤섞인 문제의 광고를 두고 앨라배마 몽고메리의 경찰을 감독하는 공공업무위원 설리번은 명예훼손 소송을 걸었다. 그 유명한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의 시작이다. 일부 광고 문구가 부정확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이 광고의 전반적인 내용을 바꾸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앨라배마주 법원은 뉴욕타임스가 설리번에게 50만 달러를 배상하도록 했다. 앨라배마주 역사상 가장 높은 금액이었다. 이후 유사한 소송이 줄지어 이어졌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이를 “인종 분리주의자들의 무기고에 입고된 새로운 무기”라고 불렀다. 뉴욕타임
아라뱃길의 시작은 방수로(放水路) 건설사업이었다. 1987년 굴포천이 대홍수를 겪은 이후 물난리를 방지하기 위한 공사였다. 이때 방수로를 한강과 연결하면 서울~인천이 이어지는 운하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판단, 1995년부터 민자로 경인운하사업이 시작됐다. 그러나 경제성 등의 논란이 일면서 사업은 진전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른바 ‘한반도 대운하’를 외친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공공사업으로 본격 추진됐다. 2008년 국가정책조정회의는 한국수자원공사(현 K-Water)에 사업을 맡겼고 2009년 착공해서 2012년 개통됐다. ‘아라뱃길’이라는 이름은 이때 지어졌다. 애초에는 수로 화물 운송이 초점이 맞춰졌지만 물류 실적은 저조했다. 2012~2019년 아라김포터미널과 아라인천터미널의 화물 실적은 당초 계획의 10%도 못 미칠 정도였다. ‘실패한 아라뱃길’이란 비난이 쏟아졌다. 지난 2023년 우원식 의원(현 국회의장)이 한국수자원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경인 아라뱃길의 10년간 물동량은 예측치의 0.9%인 24만8000 톤에 불과했다. 사실상 물류 기능을 하지 못한 것이다. 우 의원은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선도사업으로 밀어붙여 수자원공사가 2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