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노동, 연금, 교육 부문을 개혁하겠다고 공언했다. 말이 좋아 개혁이지, 적자 핑계로 공공부문 민영화, 법인세는 내리겠지만 복지는 축소할 것이며, 노동 시간은 주당 69시간까지 늘리겠다는 거다. 교육 자치도 폐지해서 교육감 선거는 지자체장과 러닝메이트 식으로 뽑겠다고 한다. 야당이 입법부를 장악하고 있으니만큼 최악은 막아주길 바라지만, 이재명 보위가 최대 과제가 된 민주당을 보면 기대난망이다. 게다가 세계 경제는 악화일로라 하고, 금리는 치솟을 것이니, 서민 살림살이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이제 며칠 지나면 새해인데, 도무지 희망을 찾아보기 어렵다. 우울한 세밑이다. 작년 6월 조국이 쓴 책이 무려 10만 권이나 나갔다는 뉴스를 접하고, 정권은 넘어갔구나 싶었다. 조국 가족이 가혹한 처벌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조국으로 상징되는 586들의 체제 안주와 또 다른 기득권 되기,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이 피폐해지는 대신 우리 월급이 늘어나는 것에 안도하기, 집도 결혼도 취직도 포기한 젊은이들에게 노력을 하라고 다그친 우리가 아니었나. 정권은 문재인 대통령 집권 5년 내내 넘어가 있었다. 우리가 증오했던 수구 기득권 세력은 아직 그대로인데, 그…
여행이란 ‘자신이 사는 곳을 떠나 유람을 목적으로 객지를 두루 돌아다니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시대의 여행은 최대한 많은 여행지를 돌아보는 것이 최고의 여행이던 예전과 달리 호캉스나 촌캉스처럼 한곳에 오래 머무르며 휴식을 취하는 등의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다. 결국 현대의 여행이란 ‘객지를 두루 돌아다닌다’는 의미보다 ‘자신이 사는 곳’, 즉 생활에서 ‘떠난다’에 중점을 둬야 한다. 익숙한 곳에서는 일정한 틀이 생긴다. 반복되는 삶 속에서 사람들은 안정감과 효율성을 얻지만 쳇바퀴를 돌리듯 재미없는 생활에 쉽게 피로해진다. 인류가 삶의 터전을 바꾸며 떠돌아다니던 유목역사가 600만 년, 농경사회에 접어들며 정착한 역사가 6,000년임을 감안할 때 유목민 시절을 기억하는 인류의 유전자는 주기적으로 간절히 떠나고 싶어 하는 걸지도 모른다. 현재의 삶보다 더 좋은 삶을 누리기 위해. 하지만 익숙한 장소와 생활을 벗어나는 순간, 고통이 시작된다. 걸어본 적 없는 길을 걷다 보면 혼란스럽고 다리도 더 아프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운전을 해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잠자리가 바뀌면 잠들기 어렵고, 화장실을 찾기도 쉽지 않으며, 먹거리로 인해 탈이 나거나 위태로운 상
문득 돌아보니 한 해가 저물고 있다. 2022년은 호랑이 해였다. 대외적으로는 2월에 발발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날 줄 모르고 있고, 미국에서는 자국내 물가 안정 정책에 따라 고금리로 가고 있다. 기후 위기에 따른 국제 환경 이슈도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대내적으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연일 뉴스에 오르고, 고금리와 고환율의 경제도 한국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여야 간에 소통은 부재하고 나아가 정치인들과 유권자 사이도 불통인 듯하여 답답한 심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해가 가고 있다. 조직이든 가정이든 개인이든 한 해를 돌아보며 정리하는 시간이다. 개인의 차원에서 사자성어로 2022년 올해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우선 송무백열이다. 松茂栢悅. “소나무가 잘 자라서 무성하면 주변에 있는 잣나무도 좋아한다”는 말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의 반대 의미이다. 평범한 인간의 욕심의 발로일까. 남이 잘 되면 함께 좋아해 주고 칭찬해 주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이 사자성어는 친구들이 경쟁자들이 잘 되고 성과를 내며 명성을 얻으면 자기도 그 옆에서 잘 난 친구, 경쟁자와 함께 빛나는 것이다. 3월에 대통령…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 세계 어느 나라든 마음만 먹으면 다닐 수 있고 또 원하면 체류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딱 한 지역인 38선 이북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70여년 간 체류는커녕 이산가족들조차 자유롭게 서신교환을 할 수 없는 기가 막힌 현실을 살아오고 있다. 과거 우리 민족은 외침을 받았더라도 분단된 적이 한번도 없었다. 남북으로 국토가 두 동강 나고 거기에 미-소의 냉전정책이 겹치면서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지닌 민족끼리 관계 단절은 물론, 서로 적대적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우리 민족은 일제 강점기 일본의 제국주의자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한 피나는 투쟁을 벌였다. 일제 강점기 내내 독립투쟁을 벌였고 일제 패망 직전에는 임시정부와 광복군, 그리고 만주의 무장투쟁 세력을 중심으로 조국의 해방과 광복을 위해 전쟁도 선포했다. 그러나 일제 패망을 눈앞에 두고 갑작스런 해방이 찾아오고 이어 미-소 양국군 주둔으로 인해 민족은 분단을 맞고 말았다. 미국은 전범 국가인 일본 대신 한반도를 분할해 남한 땅을 소련의 남하를 저지할 군사적 정치적 최전방 교두보 노릇을 우리 민족에게 강요한 것이다. 이런 적대관계는 국제법적으로 유례없는 ‘비정상 상태’ 일뿐 아니라 연합국
나는 드라마(응답하라1994)에서 소환되었던 94학번이다. 첫 번째 실시된 수능을 보았던 세대. 그해는 X-세대마케팅의 시작인 태평양의 트윈엑스의 광고가 시작되던 해였다. 대학생활이 자유로왔는지 그때 누리는 게 특별한지 그 당시는 몰랐다. 마치 충분한 산소가 있는 공기의 가치는 없어졌을 때 비로소 알 수 있듯이. 대학생활을 마치고 사회생활을 처음시작한 병원생활이 그랬다. 인턴시절은 놀라웠다. 레지던트가 오더를 내리면 인턴은 기계처럼 수행해야 했다. 8명이었던 인턴 중 한 명이 실수하면 단체로 기합을 받았다. 한 번은 담당레지던트한테 엄청나게 혼났었는데.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하라면 하지 무슨 질문으로 토를 다느냐는 논조였다. 바로 윗년차 레지던트 중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그는 병원이 군대보다 더 빡세다고 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렇게 경험했던 문화가 한국조직사회 전반에 스며들어있다는 걸 후에 알게 되었다. 남녀의 차이는 없었다. 병동에 주치의로서 근무를 할 때는 오히려 환자들이 나를 더 따랐다. 오히려 더 꼼꼼하게 진료를 잘 봐준다고 다른 주치의를 거부해 나를 커버해준 남자선배가 무안해진 일도 있었다. 대학교 때는 여학생회
“연말 대목 썰렁한 호프집…” 얼어붙은 소비 동향이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중앙, 12.26자). 다행인 것은 정부안에서 전액 삭감됐던 지역화폐 예산이 국회에서 3525억 증액됐다는 전언이다. 김동연 경기지사는 “경제 어려움 속에서 민생과 취약계층을 지키는데 더욱 힘을 기울이겠다. 지역화폐는 이미 내년도 예산에 반영했지만, 앞으로 추경 등을 통해 수요에 맞춰 추가 편성하겠다”고 밝혔다(경기신문, 12.26자). 지역의 소상공인 자영업자는 목하 매출 부진과 부채 상환에 정신 줄을 놓고 있는 중이다. 그렇기에 그들에겐 너무나 반가운 소식이다. 물론 경제가 잘 돌아가고, 대·중소기업이 함께 발전하면, 국민의 소비가 늘면서 자영업자도 덩달아 신바람이 날 것이다. 그러나 경기 전망은 매우 부정적이다. 긴장해야 한다. 지역화폐로 지역 내 소비를 활성화하지 못하면 종국엔 국가를 지킬 수 없게 된다. 통화량은 정해져 있는데 지역주민이 대기업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 쇼핑을 하게 되면, 지역의 돈은 중앙으로 갈 수밖에 없다. 자영업자의 눈물은 마를 겨를이 없다. 이런 것 막아보자는 게 지역화폐다. 우리나라엔 편의성이 좋은 화폐 지불 시스템이 많다. 그럼에도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지난 23일은 내가 30년 철도기관사생활을 끝내고 마지막 열차를 운행하는 날이었다. 이제 연말까지 일주일 남짓한 시간이 내게 주어진 유일한 유급휴일이다. 퇴근하며 주변사람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는데 후배인 모팀장이 잔뜩 미안한 얼굴로 말을 건넨다. “형님, 저.. 내일 혹시 승무가능하십니까?” 사연인즉 며칠전 사무소에 코로나환자가 5명이나 발생하여 인력이 태부족이란다. “아무리 짜내도 탈 사람이 형님밖에 없습니다” 애원하는 후배의 말에 차라리 웃으며 답했다. “그래, 퇴직하면 실컷 놀건데 뭐..”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저녁, 나는 부산신항만으로 출근해 33량 컨테이너열차를 경부선으로 끌고 나갔다. 등뒤에서 쿵쿵거리는 디젤기관차의 엔진소리가 정겹다. 기관차위에서 흰머리소년이 될 때까지 보낸 지난 세월처럼 남성현터널 주변에는 흰 눈이 쌓여있다. 돌아보면 대한민국의 역사만큼 철도도 격변의 시기였다. 124년의 철도역사를 거슬러 100년 동안 바뀐 것보다 최근 20년 동안 바뀐게 더 크다고 할 정도였으니.. 처음 입사했을 때는 한 달에 온전한 휴일 하루를 구경하기 힘들었다. 군대막사 같은 곳에서 잠시 눈 붙이고 근무 나가기 일쑤였던 처지에서 지금은 매월 8~10일의
사회구조의 개선을 방해하는 가장 큰 원인은, 그것을 사회의 외면적 형식의 변경을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한 잘못된 생각은 사람들의 활동을 엉뚱한 곳으로 끌어들이고 만다. 사회생활은 사람들의 의식 위에 구축되는 것이지 학문 위에 구축되는 것이 아니다. 문명은 무엇보다 먼저 도덕적인 문제이다. 만약 성실함이 없으면, 또 인간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존경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다시 말해 사람들에게 선덕이 없으면, 모든 것이 위험해지고,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이다. 학문도 예술도 영화도 산업도 미사여구도 경찰도 세관도, 토대가 없는 국가는 추악하고 불안정한 구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대중의 도덕성만이 모든 문명의 견고한 기초를 이룬다. 그리고 그 건물 네 귀퉁이의 주춧돌 구실을 하는 것이 의무이다. 조용히 나의 의무를 다하면서 사람들에게 좋은 모범을 보여주는 사람이야말로, 미래의 빛나는 세계를 구원하고 이를 지탱하는 사람이다. 아홉 명의 의인이 더 있었으면 소돔을 구할 수 있었겠지만, 민중을 타락과 멸망에서 구하기 위해서는 수천 명의 선인이 필요하다. (아미엘) 문제는 결코 그리스도교인가 사회주의인가 하는 선택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양자
1964년,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절해의 고도 로벤섬 감옥에 투옥되었다. 감옥은 다리 뻗고 제대로 누울 수조차 없을 정도로 좁았으며, 변기로 사용되는 찌그러진 양동이 하나만이 감방 구석에 있었을 뿐이었다. 면회와 편지는 6개월에 한 번 허락되었고 교도관들은 그의 전향을 강요하기 위해 견딜 수 없는 모욕과 강제노역 그리고 고문을 가하는 등 폭력은 일상적으로 가해졌다. 사회에서 변호사로서 받았던 인간의 품격은 상실된 지 오래되었다. 그가 감옥에 갇히자 가족들은 살던 집을 빼앗기고 흑인들이 모여 사는 변두리 지역으로 쫓겨났다. 수감 중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큰아들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장례식 참석은 허락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결혼한 큰딸이 자신의 아기를 데리고 면회를 와서 아기 이름을 지어 달라고 했다. 그때 그가 손자에게 지어준 이름이 ‘아즈위(Azwie)’였다. ‘희망’이라는 글자였다. 로벤섬에서의 27년의 감옥생활을 마치고 석방되어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희망없이 살아가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들에게 희망이 무엇인지를 심어주었다. 그리고 보복이 시작될 것이라며 공포에 떨던 백인들에게도 오히려 흑인과 함께 사는 아름다운 세상의 희망을…
미국 미네소타주가 영하 48도라는 뉴스가 전해진다.. 미네소타라면 미시간 5대호 옆에 붙어 있는 미국 최북단 도시이다. 워낙 추운 곳이긴 해도 영하 48도는 아무래도 정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롤랜드 에머리히의 영화 ‘투모로우’가 현실화됐다는 얘기다. 물론 ‘투모로우’가 기후변화에 의한 재난을 그린 내용만은 아니다. 내 기억엔 이 영화는 부상(父性)의 가치,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얘기를 그린 작품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들이 메릴랜드 워싱턴D.C. 밑으로 밑으로 피난을 가려할 때 아버지 잭(데니스 퀘이드)은 아들 샘(제니크 질렌할)을 구하기 위해 뉴욕주의 뉴욕인지(컬럼비아 대학이었는지) 매사츄세츠의 보스턴인지(보스턴 대학이었는지)로, 그러니까 북으로 북으로 향한다는 이야기이다. 잭의 아내인 의사 루시(셀라 워드)는 그의 북상이 죽으러 가는 길일 수 있음을 알면서도 남편을 떠나보낸다. 아들을 꼭 구해 올 것을 믿는다면서. (가서 우리 아들 구해와!, 하는 것 같았다.) 난 그 옛날 이 영화를 처음 볼 때 그 장면이 꽤나 의미심장하게 보였다. 당시 2004년은 9·11 테러 여파가 심했을 때였다. 롤랜드 에머리히는 이 '얼척(어처구니)없는' 상업재난영화를 통해 놀랍